[헤럴드경제=김지헌·김민지 기자] “30년 전 ‘신경영 선언’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이라는 기술전환 타이밍에 맞춰 삼성 내부의 조직원에게 정신적인 깨달음을 줬다. 이 선언 이후 전자 전(全) 분야에서 1, 2위를 하는 세계적인 플레이어가 됐다. 일류가 되는 걸 즐기는 사람들을 적극 채용하고 ‘새로운 신경영’으로 현재의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전 삼성전자 사장 출신 A씨)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한 계기가 된 이건희 선대회장의 ‘신경영 선언(프랑크푸르트 선언)’이 7일로 30주년을 맞았다. 국내 1위를 넘어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한 삼성이 사회공헌을 통해 사회에 더 넓게 기여하고, 유연한 조직문화와 미래 기술 확보를 바탕으로 초일류 기업으로 입지를 공고히 하며 ‘경영 유산’이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향후 30년을 위한 ‘새로운 신경영’의 방향을 구체화할 필요성도 제기한다.
삼성의 ‘사회공헌 DNA’ 지속
초일류 기업으로서의 기틀을 다진 이건희 선대회장은 사후 기부금을 통해 사회공헌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 선대회장의 유족은 2021년 유산의 약 60%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사회 환원을 실천했다. 이른바 ‘이건희(KH) 유산’으로, 문화재와 미술품 2만3000여점이 국가기관 등에 기증됐다.
감염병 극복(7000억원)과 소아암·희귀질환 지원(3000억원) 등 의료 공헌에도 1조원이 전달됐다. 이 가운데 5000억원은 한국 최초의 감염병 전문병원인 ‘중앙감염병전문병원’ 건립에 사용된다. 첨단 설비를 갖춘 세계적 수준의 이 병원은 오는 2027년께 완공될 예정이다. 또 서울대병원은 기부금을 지난 5월부터 전국의 소아·청소년 백혈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정밀 의료에 사용하기로 했다.
이 같은 사회 공헌의 뜻을 이어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상생’을 내걸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중소기업 제조 현장을 스마트공장으로 탈바꿈시키고, 삼성 내 ‘기부 일상화’를 지속하며 사회 전반에 대한 삼성의 선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카리스마적 리더십에서 ‘유연하고 수평적인 소통’으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 이 선대회장은 깊은 사고의 시간을 바탕으로 한두 마디 말로 그룹의 경영 전반을 움직이던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표본이었다.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캠핀스키호텔에서 수백명에 달하는 삼성 임원을 불러모은 이 선대회장의 충격적인 혁신 주문을 아직도 기억하는 삼성의 임직원이 많다.
현재 이재용 회장의 삼성은 선대의 강력한 혁신 DNA를 바탕으로 더 고도화되고 창의성이 요구되는 시대에 부응하는 기업으로서 경쟁력 확보를 지속 중이다. 끊임없이 삼성의 리더들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토대를 구축하는 한편 임직원의 유연한 조직문화를 통한 성과 창출을 다독이는 분위기다. 지난 2월 초 삼성전자는 직원 간에만 적용하던 ‘수평 호칭’을 경영진과 임원으로 넓히며 조직 전반의 문화 쇄신에 몰두하는 분위기다.
파운드리·바이오·AI 등 미래 먹거리 사업 ‘가속’
이 선대회장의 추진력은 항상 ‘패스트 팔로워(빠른 추격자)’에 머물렀던 한국 전자산업을 세계 1위로 등극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삼성전자는 그의 리더십으로 중심으로 ▷스마트폰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 ▷낸드플래시 ▷D램 등에서 세계 시장을 이끌었다.
이를 발판으로 삼성은 글로벌 시장 다변화에 따른 복합적인 도전에 맞서고 있다. 이 회장은 메모리반도체 세계 정상을 넘어 파운드리(반도체 칩 위탁생산)와 시스템반도체 사업 분야 1위를 거머쥐기 위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제2의 반도체’인 바이오와 로봇 신사업을 키우기 위한 움직임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동시에 배터리(2차전지)·6G(6세대 이동통신)·인공지능(AI) 등에 대한 투자 확대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한편 30년간 삼성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자산 규모는 약 10배, 매출은 약 11배 늘었다. 재계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연내 ‘제2의 신경영’ 선언을 통해 향후 삼성의 비전을 제시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