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분야 정부 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은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설립 이래 지금까지 국가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인력·인프라 등 과학기술 연구역량을 꾸준히 축적해 국가경제와 산업발전에 지대하게 기여해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출연연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 않은 것도 사실이며, 여기에는 외적인 원인뿐 아니라 내적인 원인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전쟁이 끊이지 않고 사회의 예의와 윤리가 붕괴 직전의 상태였던 중국 춘추시대를 살았던 노자가 ‘도덕경’을 통해 전하는 가르침과 지혜로부터 출연연의 발전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공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이뤄지는 것, 즉 ‘성공’이 아니라 ‘공성(功成)의 가르침’이다. 성과가 있어도 뽐내지 않고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고 부득이 한 일로 보고 남 앞에 군림하지 말아야 한다고 노자는 일갈한다. 공성을 위해서는 출연연 간 협업과 연결이 절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배타적 독립성과 개별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각자도생이 존재론적 관점 대신 관계망으로서의 상호가치를 존중하는 관계론적 관점으로의 인식 전환이 요구된다.

두 번째는 다투지 말아야 한다는 ‘부쟁(不爭)의 가르침’이다. 노자는 다투지 않기 위해서는 현명함을 숭상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금의 언어로 표현하면 정량적 실적 등에 기반한 상대평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상대평가는 직원들로 하여금 개인주의적이고 단기적 목표에 집중하도록 하며,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배제한 채 부도덕한 행동을 취해 단기적 혜택을 얻으려는 유혹을 야기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 또한 성과에 다른 인센티브도 단기적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마이너스이며, 직원의 자율성 파괴, 창의성 상실, 나아가 일의 목적 자체가 사라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많은 연구와 실험 결과도 있다.

세 번째는 인위적이며 작위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 ‘무위(無爲)의 가르침’이다. 정책결정자가 연구에 대한 큰 주제를 정할 수 있지만 연구비와 연구에 대한 내용은 과학자가 정하는 영국의 할데인(Haldane) 원칙과 연구 수행에 관련된 모든 권한을 연구자가 가지며, 정부는 예산을 지원하지만 간섭하지 않는 독일의 하르나크(Harnack) 원칙 등과 같은 무위의 과학기술 육성철학이 왜 우리나라에서는 금과옥조로 자리 잡지 못하는지 안타까운 마음이다. 대다수 국민이 원하지 않는 법이나 제도가 마땅히 폐기돼야 하듯이 출연연에 여전히 적용되고 있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을 비롯해 대다수 과학기술인이 원하지 않는 법이나 연구과제 중심의 제반 제도들도 폐기돼야 할 것이다.

끝으로 세상에 나올 때 타고난 소명, 즉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섭리이며 이를 위해서는 뿌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귀근(歸根)의 가르침’이다. 귀근을 위해서는 고요해야 한다고 노자는 강조한다. 출연연은 보여주기 식의 성과 등을 내기 위한 부산함을 버리고 냉정한 성찰과 차분히 내실을 다져서 출연연 설립의 목적, 즉 과학기술을 통해 국가와 국민에 대해 보답해야 하는 존재 이유를 말이 아닌 성과로서 증명해야 한다.

복숭아와 자두나무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내뿜는 향기 때문에 그 밑에 저절로 오솔길이 생겨나듯이 출연연이 설립 목적에 맞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한다면 알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인재들이 모이고 출연연의 성과를 활용하려는 요구가 넘쳐날 것이다.

정정훈 한국기계연구원 국방기술연개발센터장


nbgko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