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곧바로 진도에 가서 사흘을 머물며 장터에도 가고 또 순종이 있다는 이 집 저 집을 찾아 30마리를 사왔다. 그리고 사육사와 하루종일 같이 연구하고, 외국의 전문가를 수소문해서 조언을 받아가며 (진돗개) 순종을 만들어내려고 애썼다.”(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의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의 일부)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남다른 ‘동물 사랑’이 주목받고 있다.
이 선대회장은 특히 개를 좋아했다. 그는 ▷한국의 국가 이미지 개선 ▷현대인의 정서 순화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 확산 ▷애견 문화 저변 확대를 통한 관련 산업 창출 등을 위해 애견 사업을 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영국 왕실이 이 선대회장의 ‘동물 사랑’과 애견 문화 확산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 개를 선물했을 정도다.
20일 삼성에 따르면 이 선대회장의 뜻은 삼성의 ▷진돗개 순종 보존 ▷시각장애인 안내견학교 ▷애견문화 전파 등으로 이어졌다.
이 선대회장의 첫 사업은 진돗개 순종을 보존하는 일이었다. 그는 세계적으로 내로라 하는 여러 종류의 개를 키워 보면서 진돗개를 세계 무대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개의 중요한 특성인 희생과 충성에 있어 진돗개를 따를 만한 품종도 드물었다.
그런데 진돗개는 한국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순종이 없다는 이유로 우수성이 세계에 잘 알려져 있지않았고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것도 인정받지 못했다. 이에, 이 선대회장은 순종 진돗개 보존에 직접 뛰어들었다.
이 선대회장은 1960년대 말 진도를 찾아 거의 멸종 단계였던 진돗개 30마리를 구입했다. 10여 년 노력 끝에 순종 한 쌍을 만들어냈고, 진돗개 300마리를 키우며 순종률을 80%까지 올려놓았다. 이 선대회장은 진돗개 품종 보종에 그치지 않고 진돗개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활동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그는 1979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견종종합전시대회’에 진돗개 암수 한 쌍을 직접 가져가서 선보였고, 이를 계기로 진돗개는 1982년 ‘세계견종협회’에 원산지를 등록할 수 있었다. 2005년에는 세계 최고 권위의 애견 협회인 영국 견종협회 켄넬클럽에 진돗개를 정식 품종으로 등록하는데 성공했다.
켄넬클럽(Kennel Club)은 1873년 품종 개선을 위해 설립됐으며 영국 왕실이 후원한다. 켄넬클럽은 심사 과정이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진돗개를 정식 품종으로 등록하며 ‘품종 및 혈통 보호가 잘 되어 있는 견종’으로 평가했다.
이 선대회장의 진돗개 순종 보존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진돗개의 켄넬클럽 등록은 진돗개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을 뿐만 아니라, 국내 애견 문화 저변 확대에도 기여했다.
이 선대회장의 진돗개에 대한 관심이 애견 사업으로 확장된 것은 ‘88 서울올림픽’ 무렵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우리나라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보신탕’ 문제로 연일 시끄러웠다. 올림픽 이후에도 유럽 언론은 한국을 ‘개를 잡아먹는 야만국’으로 소개하는 등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돼 갔다. 영국 동물보호협회는 대규모 항의시위를 계획하기도 했다.
이 선대회장은 항의 시위가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자칫 상품 불매운동으로 연결돼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민 끝에 동물보호협회 회원들을 서울로 초청해 집에서 개를 기르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고, 애완견 연구센터 등에 데리고 가 한국 ‘애견 문화’의 수준을 보여줬다. 이런 노력 덕분에 영국 동물보호협회의 시위는 취소됐고, 그 이후로는 더 이상 항의도 없었다.
이후 이 선대회장은 시각장애인 안내견학교 설립으로 사업을 구체화했다. 1993년 신경영 선언을 기념해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안내견 학교를 설립해 ‘초일류 삼성’을 향한 변화의 첫 걸음을 사회공헌으로 시작했다. 이 선대회장은 진정한 복지사회가 되려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배려하고,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는 사회 구성원들의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안내견 사업은 안내견을 통해 시각장애인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다가올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사업으로 평가된다. 이같은 이건희 선대회장의 뜻에 따라 삼성은 1993년 국내 최초의 체계적인 안내견 양성기관인 ‘삼성안내견학교’를 설립했다. 이후 삼성은 ▷인명구조견(1995년) ▷청각 도우미견(2002년) ▷흰개미 탐지견(2003년) 등 개를 통한 기업의사회적책임(CSR) 활동을 확대해 갔다.
이 선대회장은 세계 속에 한국의 애견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1993년부터는 영국 왕실이 후원하는 권위 있는 세계적인 애견대회인 크러프츠 도그쇼를 후원했고, 2013년 대회에는 진돗개 ‘체스니(Chesney)’가 최초로 출전해 입상을 하는 쾌거를 거뒀다. 삼성은 2008년에는 일본에 청각 도우미견 육성센터를 설립했고, 이건희 선대회장은 일본 명문 야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최고 선수로 꼽히는 나가시마 시게오 선수에게 진돗개 암수 한 쌍을 선물로 주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에버랜드 테마파크 안에서 진돗개의 장애물 경주 모습을 선보이며 국내 애견 문화 저변 확대에 나서기도 했다. 삼성은 시각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한 토대 마련을 돕기 위해 안내견 양성과 함께 안내견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노력도 병행했다.
안내견 사업이 갓 시작된 90년대 초반에는 안내견과 함께 식당을 찾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할 때 ‘개’라는 이유로 거부를 당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도 장애인 복지 향상을 위해 함께 나서면서 안내견을 동반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제도적인 변화가 이어졌으며, 안내견 양성을 위한 환경도 크게 개선됐다.
이건희 선대회장의 노력은 애견 관련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국 왕실은 이 선대회장의 ‘동물 사랑’과 애견 문화 확산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 이건희 선대회장에게 개를 선물하기도 했다.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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