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끈끈한(sticky)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의 압력이 글로벌 증시를 짓누르고 있다.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 물가가 오히려 반등세를 보이며 피벗(pivot, 금리 인하) 개시에 대한 기대감이 사그라들었고, 이 때문에 미국 증시가 약세를 보이면서 향후 국내 증시의 흐름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다.
‘깜짝 물가’에 美 증시 일제히 ‘뚝’…美 국채 금리 ↑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422.16포인트(-1.09%) 내린 38,461.51에 마감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전장보다 49.27포인트(-0.95%) 내린 5,160.64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전장보다 136.28포인트(-0.84%) 내린 16,170.36에 각각 마감했다.
이날 발표된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 중반으로 반등하며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 ‘더 늦게, 더 적게(later and fewer)’ 금리를 내릴 것이란 기대가 커진 영향을 받았다.
미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3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5%, 전월 대비 0.4% 상승했다. 2월(3.2%)보다 상승률이 더 높아진 데다 전문가 예상치까지 웃돌면서 투자심리 약화에 영향을 미쳤다.
‘깜짝 물가’ 발표 여파로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은 이날 미 증시 마감 무렵 4.55%로 전날 같은 시간보다 대비 19bp(1bp=0.01%포인트)나 급등하며 5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웰스얼라이언스의 에릭 디튼 대표는 “시장이 1∼2월 뜨거운 물가 지표를 겨우 떨쳐냈지만 이날도 높은 물가 지속을 시사하는 지표가 나오면서 약세를 유발했다”면서 “강세장의 끝이라기보다는 많은 사람이 차익실현에 나서는 핑계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6월 피벗 물 건너가는 분위기…연중 인하 수준도 ↓
증시에 가장 큰 충격은 연준의 피벗 속도가 확연히 느려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미국 연방기금 선물시장의 기대치를 나타내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의 기준금리 전망에서 한국 시간으로 11일 오전 8시 20분 현재 연준이 6월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 5.25~5.50%로 동결할 확률은 81.3%에 달했다. 하루 전만 해도 이 확률은 42.6%였다.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 금리를 동결할 확률도 56.1%로 하루 전 25%에서 2배 이상 올랐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미 연준의 금리) 최초 인하 시점이 6월에서 9월로 후퇴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기준금리 조기 인하에 대한 기대가 점차 위축되면서 주요 투자은행(IB)도 기존 전망을 속속 변경하고 있다.
이날 한국은행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 10곳 중 4곳은 이달 들어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 전망을 한 달씩 뒤로 미뤘다. 웰스파고와 TD는 올해 5월에서 6월로, JP모건과 노무라는 6월에서 7월로 각각 변경했다. 나머지 6곳의 IB들은 기존 전망(6월)을 유지했다.
연준의 올해 연중 기준금리 인하 횟수 전망은 웰스파고가 5회에서 4회로, 골드만삭스가 4회에서 3회로, 노무라가 3회에서 2회로 각각 조정했다. 바클레이즈, 뱅크오브아메리카, 모건스탠리, JP모건 등은 각 3회, 도이치뱅크, TD 등은 각 4회, 씨티는 5회의 기존 전망을 유지했다.
미국 경제는 통화 긴축 영향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견조한 소비와 산업생산 등에 힘입어 향후 성장세가 완만하게 둔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JP모건은 미국의 3월 비농업 부문 취업자 수가 예상치를 크게 상회하는 등 노동시장이 매우 강한 모습을 나타낸 데 주목하며, 연준의 금리 인하 시급성이 줄었다고 평가했다.
바클레이즈 역시 최근 미국의 노동시장과 경제활동 데이터가 인플레이션 둔화 확신을 약화하고 있다며, 연준이 첫 번째 금리 인하 시기를 연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지난 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의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양호한 모습을 보이면서 금리 인하 기대가 위축됐다”며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높은 수준을 지속할 경우 통화정책 전환 지연 우려가 재차 증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美 인플레 쇼크, 국내 증시엔 부담…총선 결과 밸류업 영향 두고 시선 갈려
미국발(發) 인플레이션 쇼크는 2700대 수성을 노리는 코스피 지수 등 국내 증시에도 압력을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9일 종가 기준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0.46% 하락한 2705.16에 장을 마친 바 있다.
코스피 지수는 인공지능(AI) 반도체 랠리가 호재로 작용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시가총액 1-2위 반도체 대표주의 강세에 힘입어 지난달 26일 종가 기준 2757.09까지 오른 바 있다. 하지만, 최근들어 상승분을 반납하며 2700선이 위협 받고 있는 상황이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11일 코스피 지수가 1% 내외의 하락세로 출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미국의 3월 CPI 쇼크로 인한 국채 수익률 급등과 원/달러 환율 상승은 부담이 될 전망”이라며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화할 것으로 보이나, 정부의 반도체 부양 정책과 TSMC의 호실적에 따른 엔비디아의 선전은 일방적인 투심 위축을 제한시킬 전망"이라고 평가했다.
야권이 압승을 거둔 총선 결과가 국내 증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시선이 엇갈렸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의 모멘텀 상실이 불가피해 보인다. 5월 이후 정책은 예정대로 이어지겠지만 주가를 부양하길 어려울 것”이라며 “밸류에이션이 받쳐주는 자동차와 배당수익률이 높은 은행주는 기댈 구석이 있어 조정폭이 제한적이겠지만, 유틸리티·지주·보험 등 밸류업 기대감이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친 업종은 조정세가 더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총선 결과가 밸류업의 연속성을 훼손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한 연구원은 “유권자 내 주식투자자 비중이 늘고 있는 만큼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 정책은 초당파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판단한다”면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는 힘들더라도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비과세 혜택 강화, 일반주주 보호 강화 등 소액주주 권리 향상 정책 등 밸류업의 핵심 내용들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