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1384원…17개월 만에 최고
올해 달러比 원화 가치 절하 7.16%…G20 16개 통화 중 네 번째 커
이란-이스라엘 위기 완화에도 브렌트유 90弗대 유지
“환율·유가 급등 시 무역 적자 재전환 가능성”
美 장기국채 급등…“단기간 내 안정 실패 시 연내 피벗 불가능할지도”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국내 증시가 고(高)환율, 고유가, 고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고금리란 매크로(거시 경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진 모양새다. 지정학적 불안에 따른 유가 급등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는 상황 속에 피벗(pivot, 금리 인하) 개시 시점이 자꾸만 뒤로 밀리며 심화되고 있는 강(强)달러 현상에 원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무역수지 악화에 국내 증시 펀더멘털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위험 자산 투심 약화의 여파로 국내 증시에 대한 ‘외국인 엑소더스(Exodus, 대탈출)’가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더해지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원달러 환율 ‘17개월 만에 최고’ 1384원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8.6원 오른 1384.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종가 기준으로 지난 2022년 11월 8일(1384.9원) 이후 1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세계 주요국의 통화 가치와 비교했을 때도 원화 환율의 하락 속도는 상당히 빠른 수준이다. 헤럴드경제가 인베스팅닷컴 자료를 활용해 올해 연초 대비 전날 종가 기준 주요 20개국(G20)에서 사용하는 16개 통화의 미 달러화 대비 가치 변동률을 분석한 결과 원화 가치는 올 들어 7.16%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초(超)인플레이션에 따른 통화 가치 폭락을 경험하고 있는 튀르키예 리라화(1위, -10.05%), 아르헨티나 페소화(3위, -7.40%)를 비롯해 미·일 금리차 확대 전망에 따른 순매도세로 34년 만에 최저 수준을 경신하고 있는 일본 엔화(2위, -9.34%)에 이어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달러화 강세로 멕시코 페소화(+1.39%)를 제외한 15개 통화의 가치가 모두 절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2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원화가) 펀더멘털 대비 과도하게 절하된 면이 있는지 유심히 보고 있다”면서 “환율이 과도한 변동성을 보일 경우 시장 안정화 조치를 통해 환율을 안정시킬 여력이 있다.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선 올해 가파른 원화 가치 절하 현상 속에서도 통념과 달리 국내 증시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수세가 강력하게 나타난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 들어 원달러 환율이 7.45%(1288.9→1384.0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전날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수액은 18조9909억원으로 같은 기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1300원대 환율이 ‘뉴 노멀(new normal)’로 받아들여지며 환율 그 자체의 변화가 외국인 투자자의 투심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에 비해 작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90弗대 유지한 브렌트유…“환율·유가 급등 시 무역 적자 재전환 가능성”
증권가에선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향후 발생하게 될 원달러 환율 급등세에 대해선 그동안과 달리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란-이스라엘 전면전 위기’ 고조에 따른 국제 유가 급등이란 악재가 맞물려 진행될 경우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엔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고, 이 때문에 국내 증시에도 변동성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근월물인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유(WTI)는 전거래일 대비 0.25달러(0.29%) 하락한 배럴당 85.4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글로벌 벤치마크인 6월 인도분 브렌트유 가격은 0.35달러(0.4%) 하락한 배럴당 90.10달러에 거래됐다. 브렌트유 가격은 여전히 배럴당 90달러대를 유지했다.
이스라엘 본토 공격에 나섰던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이 방공망에 의해 대부분 격추되고 피해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난 데다, ‘고통스러운 방식을 선택할 것’이란 이스라엘의 공격이 다른 방식으로 시행될 것이란 소식에 소강상태로 접어들며 유가상승 압력이 낮아진 것이다.
연초와 비교했을 때 전날 종가 기준 WTI와 브렌트유는 각각 19.2%, 16.95% 상승한 수준이다.
국내외 증권가에선 아직 상황이 일단락된 것이 아닌 만큼 언제든 유가가 급등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는 평가에 힘이 실린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이란의 보복 작전 종료 선언 등을 볼 때 전면전 의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되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 등이 재차 부각될 경우 유가는 다시 상승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오가는 원유·액화천연가스(LNG) 물동량은 글로벌 전체 흐름의 20~21%를 차지한다. 특히,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전체 원유 수입량 중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중동산 원유의 비중은 작년 3분기 기준 76.3%에 이르는 만큼 중동발(發) 리스크는 국내 경제엔 에너지 비율 압력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신중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겨우 개선된 국내 무역수지가 환율·유가 급등 탓에 다시 적자 전환할 수 있고, 이는 비용 상승에 따른 개별 기업의 순익 급감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원달러 환율 1400원 돌파, WTI 90달러 돌파 여부가 국내 증시가 버텨낼 수 있는 일종의 저항선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美 장기국채 급등…“단기간 내 안정 실패 시 연내 피벗 불가능할지도”
국제 유가 급등세는 피벗 개시 시점에 대한 전망을 더 흐리게 할 가능성이 높다. 유가가 미국 내 인플레이션 압력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할 때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점도표를 통해 내놓았던 ‘연중 3회 금리 인하’ 의중 역시 조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국제유가가 2분기 중 85달러 수준을 유지한다면 전년비 유가상승률은 4월 7%, 5월 19%, 6월 21%에 이르며 헤드라인 소비자물가의 상승을 이끌 것”이라며 “이는 즉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까지 물가 안정에 대한 확신을 얻기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하나증권은 연준의 금리인하 시점을 올해 9월과 12월, 두 차례로 변경했다.
당장 10년물 미국채 수익률은 8bp(1bp=0.01%포인트) 이상 급등한 4.61%로 지난해 11월 중순 이후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금리 시대가 예상보다도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시장의 예측이 담긴 결과인 셈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이란-이스라엘 간의 갈등 상황이 단기간 내 안정화 단계로 넘어가지 못할 경우 첫 금리 인하 시점이 올해가 아닌 내년으로 충분히 밀릴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창용 총재도 “6개월 (전망) 시점으로 말씀드리면 금통위원 모두 하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을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정사실처럼 언급되던 시장의 ‘한국은행 하반기 인하설’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한편, 단기적으로 국내 증시가 2600선 아래로 내려서며 조정장세를 보일 가능성도 있지만 ‘저가 매수’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란 조언도 증권가에선 나왔다.
강재현 SK증권 연구원은 “당장 미국 증시는 물론 국내 증시도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지만, 위험이 너무 장기화해 유가를 더 크게 올리지만 않는다면 매수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고,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 이익이 증가하는 시기에 전쟁 이벤트 부각은 주식을 싸게 살 기회다. 코스피가 2400선까지 하락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크지 않은 만큼 2500대에서 매수 대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중호 센터장은 “글로벌 경기 흐름 상 인공지능(AI) 랠리와 미국 경기의 호조는 중장기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반도체주를 비롯해 미국 경기 호황 수혜주인 전기·전자주 등 바닥을 찍고 반등할 가능성이 높은 종목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