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4> 저 높은 곳을 향하여 (5)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천하의 갑부들을 조종한다고 했소? 동무네 딸네미가?”

“그렇답네다. 내 딸 원희가 어엿한 구라파 왕족이 되었단 말입네다. 이 사진 좀 보시라요. 내 딸이 천하의 갑부들을 바닥에 꿇리지 않았습네까?”

과연 그랬다. 사진을 보고 있자니 감히 입을 다물 수 없을만한 풍경이 그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던 것이다 예원희는 무려 아파트 열 채에 해당한다는 고급 차 위에 신발을 신은 채로 올라서 있었고, 그 아래에는 서양 갑부가 무릎을 꿇은 채 어영부영 하고 있었다.

“우와~ 대단하우다.”

“그렇디요? 대단하디요?”

물론 사진 속의 진짜 주인공은 강유리 선수였다. 하지만 도형철이 보여준 사진 속에 강유리의 모습은 아예 담겨있질 않았다. 그 사진들이야말로 강유리가 예원희의 카메라를 전해 받아 기념으로 찍어 준 장면이었는데… 그 엄청난 광경이 사실이긴 했지만 주연배우의 모습을 생략하고 조연배우 모습만 골라 보여준 셈이었다.

어쨌거나 효력은 동일했다. 예원희가 값비싼 클래식 카 위에서 구두를 신은 채로 방방 뜨는 장면에 곽승철과 공지호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러다가 아빠뜨 열 채가 찌그러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러오?”

“어허허! 왕족이 좀 뛰어놀기로서니 말릴 사람도 없었갔디요.”

“내레 궁금해서 묻는 말인데, 동무 딸네미가 과연 어떤 식으로 구라파 갑부를 조종했단 말이오? 우리 공화국에 꼴푸장 세 개를 지어달라고 했소?”

공지호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그는 이렇게 물으면서도 손끝으로 연신 사진을 넘겨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진은 손가락 끝을 타고 줄줄이 넘어가고 있었지만, 그 많은 사진마다 예원희는 왕비다운 짓만 골라 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발끝 아래로는 그토록 돈 많다는 서양 갑부들이 하인들 마냥 저마다 어영부영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 확실한 내막은 모르디요. 하지만 그랬거나, 그와 비슷한 계약을 했을 거라고 믿습네다. 어째서인지 아십네까?”

“날레 말씀 하시라요. 자, 자! 목이 타서 말씀을 못하겠소? 그럼 하이네껜 한 잔 마시고…”

겨우 사진 몇 장을 보여주었을 뿐인데 사정은 뒤바뀌어 있었다. 어느새 공지호와 곽승철은 상전 모시듯 도형철을 떠받들기 시작했다. 그토록 아끼던 하이네켄 맥주를 거품이 줄줄 흐르도록 딸아서 도형철에게 건넸고, 러시아 산 초콜릿과 과자도 통째로 그의 앞에 내밀곤 했다.

“어째서 그런지 날레 말하기요.”

“위원장 동무께서 이 사진 속의 차들이 우리 공화국 땅을 달릴 수 있도록 허락하셨단 말입네다. 아시갔습네까?”

이 모든 것이 예원희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이었다. 애초에 전화로 전해 들었을 때만 해도 도형철은 반신반의 했다. 이미 거성의 재벌 2세로부터 골프장 건립비용 6천 억 원을 거절당한 상태였기에 더욱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다. 남조선의 재벌도 충당하지 못할 큰돈을 순순히 지불하겠다는 사람들이 과연 누구란 말인가?

그러나 예원희로부터 조근조근 설명을 들고 난 도형철은 이제야 때를 만났구나, 하며 기뻐 어쩔 줄 몰랐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돈줄을 직접 옭아 쥐고 있는 사람이 제 딸 예원희가 아니라 강유리 선수라는 점이었는데… 아무러면 어떠랴, 당에 돈이 들어오게 되면 그뿐, 아울러 본인이 출세만 하게 되면 그뿐 아니겠는가.

“그럼 그렇디. 내가 사람 하난 정확히 볼 줄 안단 말이오. 도형철 동무는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남들과는 달라 보였디. 아무렴.”

공지호 부부장과 곽승철 위원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벌써 당 서열이 껑충 뛰기나 한 것처럼 여겨질 따름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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