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8> 감추어진 승부 (62) 글 채희문 | 그림 현경희
유호성 선수의 머신, 1974년 산 치타의 연료탱크에 작은 구멍이 뚫린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라이버 중엔 아무도 없었다. 지난 밤, 모두가 잠든 야심한 틈을 타서 연료탱크에 구멍을 낸 사람은 재벌2세와 도종호 상무의 사주를 받은 현성애였다. 그러므로 그녀의 입만 틀어막는다면 만사 오케이.
“연료탱크에 작은 구멍을 내고 스프링 장치로 마감해 놓으세요. 기름이 찔끔찔끔 새나가도록 말입니다. 사막으로 들어서서 30킬로미터 정도는 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코-드라이버로서 동료를 배신하는 일인데… 어떤 보상을 해주실 거지요?”
“알고 보면 유호성 선수를 보호하는 일입니다. 원래 그 선수가 높은 산악지대에 다다르면 쩔쩔 매거든요? 코피를 쏟고, 뒤집어지고… 그런단 말예요. 며칠 후면 두룰룬 산맥을 통과해야 할 텐데, 거기서 발작을 일으켜 사고라도 당하면 어쩝니까? 그래야만 유호성 선수가 경기를 포기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운을 뗀 도종호 상무는 거침없이 그녀에 대한 보상으로 3년간의 연금을 제시했다. 현성애로서는 도랑 치다가 가재 잡은 격이었다. 유호성은 애초부터 밉기만 했던 작자였다. 바람을 오죽 피워야지? 상대가 치마만 둘렀으면 그 앞에서 수작을 부리는 꼴이 영 마뜩치 않았는데, 그래도 잠시 연분이 났던 사이라 마냥 미워할 수도 없는… 그런 관계였다.
그뿐인가? 로열 골드의 드라이버 권도일이 그를 요절내려 한다는 사실도 마음에 품고 있던 터라 오히려 순순히 그 제의에 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유호성이 사막 깊숙한 곳까지 들어서는 날엔 권도일이 가문의 복수를 감행하려 들 텐데… 그 꼴을 당하게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권도일과도 한 때 정분이 났던 사이였으니 그의 의도를 유호성에게 낱낱이 일러바칠 수도 없고…
삼각관계의 가운데에 끼어서 권도일과 유호성을 함께, 잠깐이나마 좋아했던 현성애로서는 에라, 모르겠다. 죽을 놈 살리는 일인데다가 돈까지 생기는 일인데 까짓, 연료탱크에 구멍인들 못 뚫겠어?
“좋아요. 사실… 나도 이번 랠리에 흥미를 잃은 상태였거든요? FIA 공식 경기도 아니고, 가만히 보니 정치놀음에 휘말린 쇼 같기도 하고… 뭐 그런 입장이었는데 잘 되었군요.”
이렇게 결정을 내리고 야밤에 1974년 산 치타의 밑으로 기어들어가 연료탱크에 구멍을 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현성애는 도랑 치고 가재만 잡은 것이 아니었다. 마침 도종호 상무에게 그런 부탁을 받고 고민하던 차에 강유리 선수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게 웬 횡재인지! 1974년 산 치타를 어떤 식으로든 사막 한 가운데에 세워주기만 하면,
“현성애 씨, 그 고장 난 1974년 산 치타를 배경으로 해서 CF 촬영에 성공하기만 하면… HY 훌 푸드 신희영 회장님이 2천만 원을 주신다고 했거든요? 우리 그거 나눠가져요. 천만 원이 어디예요? 밤새 땅 판다고 그 돈이 나오나요?”
아마도 이런 걸 두고 호박이 넝쿨째 굴러든다고 하는 모양이었다. 용돈 생기고, 연금 타고, 무엇보다도… 죽을 놈 살리고!
“임무 완수했나요? 아무도 본 사람은 없지요?”
“몰라요. 시키신 대로 했어요. 내가… 미쳤나?”
현성애는 이렇게 대답한 뒤, 곧바로 1974년 산 머신의 코-드라이버 석에 올라 사막을 향해 달려 나갔던 것이다. 이게 바로 서너 시간 전, 동녘이 희붐하게 밝아져오던 새벽 5시 경의 일이었다.
뒤이어 바빠진 사람은 강유리와 예원희였다. 그들은 새로 정비를 마친 빨간 색 무개차를 집어타고 1974년 산 치타의 바퀴자국을 뒤따르기 시작했다. 며칠 전, 요란한 촬영 장비를 실은 CF팀이 출동할 때와는 전혀 다른 단출한 모습이었으나 마음이 비장해지기는 매일반이었다.
“사진기 렌즈 잘 닦아 놨지요?”
골프백을 챙기고 비키니 복장으로 갈아입은 강유리가 엔진출력을 높이며 물었다. 그 표정이 자못 심각했기 때문일까? 예원희도 차츰 긴장하기 시작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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