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04회> 감추어진 승부 28

란저우에서 천만리 떨어진 곳 서울, 그곳에 쓸쓸히 머물고 있는 사람은 신희영과 유민 회장뿐이었다. 그나마 신희영은 몸 좋고 매너 훌륭한 모델 박박진진과 어울리는 중이니 다행이었다. 문제는 유민 회장이었다.

“이봐, 중국의 타이바이 산이 4,166미터라고 했지?”

“네. 맞습니다. 회 님. 기억력이 매우 훌륭하십니다.”

“랠리팀이 어저께 그 지역을 지나갔다고 했나?”

“네, 촬영팀으로부터 그렇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내 아들 호성이는 해발 2,400미터에 이르기만 하면 고산증세로 정신을 잃고 벌벌 기는 거 알지?”

“그렇습니다. 여태껏 경험한 바로는 정신을 잃을 뿐만 아니라 토하고, 코피도 쏟고 심지어 대변을 지리기도 했습니다만….”

“그런데도 호성이가 랠리를 포기했다는 소식이 없어?”

유민 회장은 주먹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고함질렀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라며 맞짱이라도 뜨고 싶었지만… 유민 그룹의 임원들은 역적죄라도 저지른 사람들처럼 고개만 잔뜩 숙이고 있었다.

“최 이사! 이번 랠리 코스는 어째서 초반부에 타이바이 산을 넘도록 했는지… 그 까닭을 기획안에 나온 대로 읊어 봐!”

“기획안 6페이지 네 번째 줄부터 읽겠습니다. 에… 지난여름 창립 기념 백두산 등반 기록에 의하면, 유호성 군은 해발 2,350미터에 다다르자 코피를 쏟았다. 퍼스널트레이너가 비아그라 100밀리그램을 경구 투여하자 코피는 멈췄으나 묽은 변을 지리기 시작했고, 해발 2,400미터에 이르자 정신을 잃었다. 그리하여….”

“스톱! 똑같은 소리 반복하지 말라니까? 어째서 초반부에 타이바이 산을 넘도록 기획했는지 그 까닭을 다시 읊어보란 말이야.”

“네, 죄송합니다. 그럼 기획안 7페이지 둘째 줄부터 다시 읽도록 하겠습니다. 에… 타이바이 산은 그 높이가 해발 4,166미터이다. 그러나 유호성 군은 해발 2,400미터를 절대 넘을 수 없는 신체적 약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번 5개국 관통 랠리 대회에서는 출발 2일 내에 타이바이 산을 넘게 하여 유호성 군의 랠리 완주 의지를 일거에 꺾을 수 있도록 한다. 더 읽을까요? 회장님?”

“됐네. 자리에 앉게.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호성이가 랠리를 포기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오질 않느냔 말이야.”

“…….”

상감마마,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통촉하시옵소서 라고 해야 하나? 유민 그룹의 임원들은 참수당하기 직전의 죄인들처럼 모가지만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러니 유민 회장의 눈에 보이는 모습이라곤 소가 핥은 것처럼 기름기 번질번질한 그들의 머리통뿐이었다.

“내가 기획안을 그렇게 만든 진정한 이유는 우리 호성이를 위해서라고. 그놈이 어째서 내 말을 그리 안 듣나 몰라. 고비 사막을 운전하는 게 위험하다고 아무리 말려도 도통 들어먹질 않거든? 그래서 고육지책을 쓴 거란 말이지.”

“매우 현명한 방법입니다. 아마도 곧 포기했다는 희소식이 전해져올 겁니다.”

벌써 연이어 사흘째, 유민 그룹에서는 매일 아침마다 이런 식으로 회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밑도 끝도 없는 회의였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유민 회장으로서는 이번 랠리 대회가 회사 자산의 절반가량을 쏟아부었을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중요한 사업이라 해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목숨을 저당 잡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혼자 고민하느니 임원들을 불러들여서 CPX나 걸어야겠다는 게 유민 회장의 심통이었다. 그래야만 마음 깊이 번져오는 불안함을 잊을 수 있을 것이라 여긴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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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