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5회> 총칼 없는 전쟁 (5)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다음날 새벽,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권도일은 ‘로열 골드’를 몰고 북한산 자락을 타고 도는 하이웨이로 접어들었다. 튜닝 기술자 현성애의 갈등을 알 재간이 없었던 그는 로열 골드의 드라이빙 스킬을 완벽하게 익히는 것이야말로 목표달성에 한 발 다가서는 것이라 믿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목표는 변함없었다. 유민 회장의 부도덕한 처사로 인해 모든 재산을 잃고 반신불수가 된 아버지 권일주의 복수를 단행하는 일 뿐이었다. 복수를 단행하는 과정에서 유민 회장이 망하든, 그의 아들 유호성이 죽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들 녀석이 죽고, 그로 인해 애비가 미치고, 결과적으로 유민 회장의 가문이 몰락한다면 더할 나위 없지.”
권도일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어두운 새벽길을 달려 나갔다.
이곳이 굽은 도로가 겹겹으로 이어진 북악 스카이웨이던가? 하지만 스티어링 휠을 앞으로 당길 때마다 지상 10cm 위를 날아가는 로열 골드의 성능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만약 로열 골드가 일반적인 머신이었다면 지금처럼 굽은 산길을 고속으로 달리기 위해서는 무진 애를 써야만 했을 터였다. 코너 진입 시에 도로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브레이킹을 시작하면서부터 머신은 속도를 잃게 되는 법이다. 액셀에서 발을 떼고 브레이크 페달을 밟기까지의 순간에 적극적으로 가속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페달을 옮기는 동안의 빈 주행공간을 없애기 위해서는 왼발로 브레이킹을 해야 마땅하다. 이를테면 오른 발은 엑셀 페달 위에, 왼발은 브레이크 페달 위에 놓고 순간동작을 이루어 가야만 한다.
그러나 지상 10cm를 떠오르는 것만으로 그 모든 고민은 일순간에 해소되었다. 속도의 제곱으로 환산되는 운동에너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코너를 돌 수 있다는 것은… 눈물겹도록 멋진 광경이었다.
터닝 포인트만 잡고 스티어링 휠을 잡아당기기만 하면 그뿐, 기어를 시프트 다운한다든지 액셀을 컨트롤 한다든지 하는 동작 없이 머신은 전력질주를 이어가곤 했던 것이다. 아웃-인-아웃으로 코너라인을 잡아야 하는 경우든, 코너 중앙으로부터 진입하면서 센터–인-아웃을 해야 하는 경우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로열 골드는 코너링의 기술이 필요 없는 특수자동차인 셈이다. 그러니 굽은 길에서 라인을 잡을 필요가 없었고 심지어 S자로 연속 굽어지는 길은 아예 직선도로처럼 가로질러 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뿐인가? 바닥이 모래든, 진흙탕이든, 자갈이든, 얼음이든… 로열 골드는 거침없이 내달릴 수 있었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상대방의 차가 아무리 고성능을 자랑한다 해도 기본을 지키며 추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말이기도 하다.
“브라보! 이제 유호성의 목숨은 내 손 안에 있군.”
권도일은 하이웨이의 코너를 전속력으로 돌며 이렇게 혼자 외쳤다.
그 외침은… 결코 허풍이 아니었다. 원래 코너를 통한 추월의 기본은 원의 안쪽을 찌르는 것이다. 크게 아웃을 도는 머신과 작게 인을 도는 머신과는 큰 차이가 있다. 물론 반경 차이로 인한 거리의 길고 짧음도 문제가 되지만… 그때 생겨나는 원심력이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만약 코너링 중에 두 머신이 스치기라도 하면 바깥을 도는 머신은 원심력이 더해져서 바깥쪽으로 튕겨 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호성! 네 놈의 제삿날은 내가 정해주마.”
권도일은 또다시 혼잣말을 외쳤다. 로열 골드로는 언제나 상대방의 안쪽을 치고 들어갈 수 있었으므로 그 외침은 결코 허풍이 아니었다.
유민 회장의 고향이 개성이라고 했던가? 그는 내친 김에 이번 랠리 경기에서 그의 아들 유호성을 개성 땅에 묻어버리고 싶을 따름이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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