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시티팀 = 김효태 칼럼니스트]한때, 새누리당 내부에서 증세찬반에 대한 논쟁이 치열했다고 한다. 그에 맞춰 보수언론에서도 꽤나 많은 증세반대 기사를 보여주기도 했다. 일부 언론은 구체적인 사례와 수치를 들며, ‘증세는 중산층과 서민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식으로 여론 몰이를 했다. 내가 보기엔, 일부 언론의 증세 반대는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 공약으로 내세웠던 보편적 복지를 자연스럽게 번복하면서, 선별적 복지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직 대통령을 설득하는 과정인지, 아니면 서로 공감이 이뤄진 상태에서의 진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선별적 복지를 시행하기 위한 과정임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증세반대 이유가 또 있다. 바로 부자감세 유지이다. 증세반대 논리를 앞세워서 부자감세 철회를 미리 막으려는 전략일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국민이 세금 때문에 이렇게 고통 받는데 뭔 증세냐?”라고 강조하며 부자증세 논쟁을 미연에 차단하려는 것이다. 애초의 증세 안에는 소득별 차등 증세의 내용이 있었다. 많이 버는 사람이 당연히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이다. 이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보수 세력은, 부자증세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 아예 증세 자체를 반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기득권층의전략적 행동은 우리 역사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광해군이 추진했던 대동법이 수십 년이 지나서야 겨우 시범적으로 몇 곳에만 시행하게 된 이유. 그리고 영조가 균역법을 하려했던 이유까지. 그 속에 숨어있는 내용을 알아보면 이해가 간다. 백성의 부담을 덜고 지나치게 많은 양반의 혜택은 국가를위해서 조금씩 배분하자는 것이 앞서 얘기한 두 개의 정책이었다. 그런데 양반들은 당파싸움으로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어도,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피하려는 것에는 서로가 대동단결했다. [예나 지금이나 서민보다는 기득권을 먼저 생각하는 귀족층]영조의 균역법은 백성을 위해 성공한 경제 정책으로 알려져 있다. 영조의 균역법은, 백성들이 국방의 의무를 하지 않을 경우를 대신해서 내던 세금을 반으로 줄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백성들의 군역 부담이 감소되는 것이다. 그냥 보면 정말 훌륭하다. 그런데 균역법 시행 전에 양반의 혜택과 시행 된 후 보여준 양반 귀족들의 행동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조선시대 양반 귀족들은, 국방의 의무는커녕 그를 대신해서 내는 세금조차 의무가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군역 부감 감소가 시행되면, 국가에 필요한 세금도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영조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양반들에게 어느 정도 양보를 끌어낸다.영조는 ‘줄어들게 되는 세수 중 일부를 왕실 수입에서 충당할테니 양반 전주(토지주)들도 토지 별로 세금을 부과 징수하자’며 양보를 이끌어냈다. 외형상으론 왕실과 양반들의 고통분담으로 백성들의 부담을 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얼마 안가 양반(전주)들이 부과징수 하는 세금을 (양반 전주 소유의)소작농민에게 넘김으로써 농민 부담이 다시 가중됐다. 결국 백성들은 세금을 이리 내나 저리 내나 그게 그거였으며, 양반 전주들 역시 세금을 내지 않던 종전과 다를 것 없이 손해(양보)가 되지 않게 된 것이었다.  이는 현재, 일부 언론과 보수 진영이 증세를 반대하는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다. 서민과 중산층 핑계를 대며 증세 반대를 외치지만, 이는 결국 부자들의 정당한 세금부과를 방지하고 모든 사람들이 누려야 할 보편적 복지혜택도 이룰 수 없게 하는 것이다. MB 정부 때의 부자감세만 되돌려 놓아도 그렇게 많은 증세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MB 정부의 부자감세 시행 전에, 당시 부자들이 부담했던 세금도 외국 선진국에 비하면 낮은 편이라고 한다.   [그나마 조선시대에는 영조 같은 애민군주라도 있었지만...]조선시대 양반들이나, 지금에 부자들과 기득권층이나, 백성(서민)을 위한다며 외치지만 실상은 백성(서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그대로이거나 줄이고 있다. 그러면서 결국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것이지만, 백성(서민)을 위한 좋은 정책이었다며 자화자찬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조선시대 때와 시대를 달리하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인 만큼 매우 씁쓰레하다. 그나마 애민군주 영조는 균역법을 순수한 의미로 실행하려 했었다. 비록 성공하지는 못하였더라도 백성을 위해 기득권층과 협의하고 양보도 끌어냈던 지도자(영조)라도 있었다는 점에서, 당시 조선시대가 지금보다는 나은 것이라고 해야 하나? ‘선거 기획과 실행’ 저자 김효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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