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이번 ‘성완종 리스트’ 사건은 경제사건이 정관계로비의혹사건으로 번졌다는 점에서 1997년 한보사건과 유사하다. 당시 한보철강의 특혜대출과 횡령 등 경영 상 거악이 수사 착수의 근거였지만, 나중에 33명의 정관계 리스트가 나오면서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비화했다. 이번 사건도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과정의 특혜대출과 횡령의혹으로 시작됐지만, 자원외교 난맥상의 진원지인 경남기업 성완종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때 ‘8인 리스트’를 남기면서 정치권 로비 의혹 수사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수사기류는 18년전과 확연히 다르다. 한보사건때 검찰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산하 수사 1,2,3과를 총동원하고, 범죄 정보 담당부서와 서울지검 등 지방검찰청과 공조체제를 확립해 특혜대출과 횡령 의혹, 한보철강 분식회계, 정관계 인사 소환조사를 동시다발로 진행했다. 전국에서 차출된 검사와 수사관을 합쳐 100명 안팎의 매머드급 진용을 갖춰, ‘수사의 ABC’라고 할수 있는 출국금지와 압수수색, 참고인조사를 대대적으로 단행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하루에도 3~4명의 전현직 국회의원과 고위관료가 검찰에 소환됐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홍준표 경남지사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다른 리스트 인사의 주변인물에 대한 출국금지나 압수수색 소식은 거의 없다. 덩달아 성 전 회장의 사망과 함께 불거진 대선자금수사, 자원외교 관여 기업에 대한 특혜대출과 자원외교 관련 기관의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진척 상황도 감지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검찰이 비박(非朴)인 홍 지사를 집중 겨냥하고 박근혜 정부 전현직 비서실장, 다른 광역단체장, 대선캠프 총책 등 친박(親朴)에는 관대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일단 수사진용의 숫적 열세를 부인하기 어렵다. 현재 특별수사팀 파견검사는 고작 14명이다. 베테랑 수사관들을 합쳐도 한보사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데다 공판중심주의를 견지하고 있는 법원의 증거인정 범위도 날이 갈수록 좁아지는 추세여서 하나의 사안을 확인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측면이 있다.
검찰은 단서가 상대적으로 명확한 것부터 먼저 수사하는 것이지 인위적인 속도조절이나 수사 온도차는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어떤 것은 처음에는 굉장히 명료했다가 희미해지는 경우가 있고, 어떤 경우에는 무가치하고 의미 없게 간과했던 것이 하루이틀 지나 실체의 전모를 규명하는 결정적인 단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한다”면서 단서의 선도(鮮度)와 가치가 수사 속도를 좌우한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했다.
실제, 홍지사의 경우 일찌감치 윤승모 전 부사장이 세부정황에 대해 일관성 있게 진술해 퍼즐 맞추기가 속도를 냈지만, 가장 먼저 수사에 착수해 고속도로 하이패스 기록까지 들여다보며 심혈을 기울였던 이완구 전 총리의 3000만원 수수건은 관련자 진술이 엇갈리면서 수사상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특별수사팀 관계자는 “기둥을 두개 세우다가 다시 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이완구 수사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나머지 6인에 대해서는 수사의 뼈대를 세우는 단계로 이 전 총리나 홍지사 만큼 중요한 단서를 확보하지 못해 집을 짓는데 더디기만 한 것으로 알려진다. 핵심 공여자의 사망이라는 현실도 공소유지의 부담을 지운다.
경남기업 한모 부사장의 진술과 자금 수수자의 신원까지 나온 박근혜 대선캠프 2억 전달의혹은 대선 자금이라는 큰 그림 속에 진행되는 것이라 섣부르게 덤비지는 않는 모양새이다.
그러나 8인 중 6인의 주변인물 등에 대한 출국금지 조차 하지 않는 것은 홍지사 수사태도와는 사뭇 다르다는 지적은 여전히 흘러나온다. 최근 검찰 한 고위관계자가 ”외부에서 흔들지 마라“고 말한 것은 주목된다.
캐비넷에 쟁여놓았다가 빵 터뜨리는 사정 수사가 아니라 갑작스런 사망으로 비롯된 수사인 만큼 준비된 것이 없다는 해명도 일리는 있지만, 사안의 크기에 비해 수사진이 너무 적은 상황에서 외부의 흔들기까지 있다면 검찰로서는 전열을 재정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한 방송의 여론조사에서 성완종 수사가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의견이 50.5%, 잘되고 있다는 25%로 나타났다는 점도 검찰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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