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MBC스포츠플러스요? 야구로 치면 삼성 라이온즈 같아요.”
무려 11년 ‘시청률 1위’ 채널이라는 자신감을 김선신 아나운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야구에 미쳐있는 사람들”(박지영)이 모여 “창의적이고 독특한 시도를 하는 곳”(배지현), “전문적인 사람들이 만든 집단에서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스포츠 아나운서도 육성”(김선신)되기에 ‘조직의 일원’이라는 자부심도 적지 않다.
‘스포츠의 꽃’으로 불리는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갑내기 여자 아나운서 세 사람의 조합을 보니, MBC스포츠플러스는 본의 아니게 업계의 ‘어벤져스’가 됐다. 채널의 터줏대감 김선신(29), 타채널에서 활약하며 인기를 모았던 배지현(29ㆍSBS스포츠 출신)과 박지영(29ㆍKBSN 출신)이 가세하며 3사를 모두 경험한 신(新) 조합이 완성됐다.
선후배 관계이기에 앞서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서로를 지지하는 세 사람은 공교롭게도 스물아홉 동갑내기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빠른’ 87년생(김선신 배지현)과 ‘그냥’ 87년생(박지영)의 만남이다. 수차례 ‘친구하자’는 배지현의 요청에도 ‘서열 정리’를 이유로 박지영은 “큰 소리로 언니, 언니 부른다”(배지현)며 “다 마음에 드는데 그게 제일 마음에 안 든다”고 농담을 건넬 정도로 빠르게 친해진 세 사람을 최근 경기도 일산 드림센터에서 만났다.
▶1등 채널, 부담스러운가요?=SBS스포츠를 대표하던 배지현은 지난해 MBC스포츠플러스로 거취를 옮기며 김선신과 함께 MBC스포츠플러스의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베이스볼 투나잇’을 진행하고 있다. 나란히 5년차에 접어든 두 사람을 통해 채널은 주말과 평일의 투톱 체제를 구축했다.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KBSN에서 활약했던 박지영 역시 올해 MBC스포츠플러스로 이직, 주중 프리뷰 프로그램 ‘베이스볼 나우’의 얼굴이 됐다.
배지현은 “야구가 너무 하고 싶었는데,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왔을 때 (SBS스포츠를) 그만두게 됐다”며 “너무나 감사하게도 기회가 왔다. 프리랜서 신분으로 MBC스포츠플러스에 와서 많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년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보니 이들의 거취정리 과정은 거미줄처럼 얽혀있었다. MBC스포츠플러스의 간판이었던 김민아가 SBS스포츠로, 배지현이 MBC스포츠플러스로 채널을 옮긴 ‘맞트레이드’로 불렸다. 김민아가 채널을 옮기며 공석이 된 평일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김선신이 진행하게 됐다. 다소 어수선했을지 모를 지난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이제는 채널의 ‘일원’으로서 녹아들며 세 사람은 그들만의 조화로움을 찾은 모습이었다.
아직은 시청률 부담보다는 “1위 채널, 삼성 라이온즈와 같은 좋은 팀에 와서 배우는 느낌이 든다”는 박지영과 달리 배지현의 지난 한 해는 ‘일희일비’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MBC스포츠플러스는 일등 채널이라는 자부심이 있어 해마다 ‘일등’이 목표였어요. 작년엔 부담이 컸죠. 이 자리로 왔는데 도움이 돼야지 혹시나 삐끗하면 어쩌나 싶어 시청률에 일희일비했고요. 시간이 지나니 저만의 노력이 아니라 다 같이 녹아들어 열심히 하면 결과가 있겠구나 싶었죠.”(배지현)
배지현의 부담 못지 않게 MBC스포츠플러스에서 아나운서로 성장한 김선신 역시 “늘 일등을 해오던 채널이기에 내가 잘한게 아니라 원래 잘해오던 사람들이었기에 얻어지는 성과”라는 생각을 가진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5년차가 돼 돌아보니 “체계화된 시스템 안에서 자라났고, 신인들을 계속 발굴한다는 자부심”, “뛰어난 사람들을 스카우트할 수 있는 조직력의 장점”을 더 많이 보게 됐다.
▶ “아직도 꽃인가요?” ‘여신’과 ‘프로’ 사이의 시선=모든 직장인이 그렇듯 조직 내에서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는 것은 언제나 숙제였다. 선배들로부터 “너만의 경쟁력을 갖추라”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어왔기에, 유난히 경쟁은 치열하고 편견은 눈덩이 같은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로의 삶이 쉽지만은 않았다.
한 때 이들을 부르던 이름은 ‘야구여신’이었다. 지상파 계열 PP(MBC, KBS, SBS)와 신생 스포츠 채널의 시청률 경쟁이 치열해지자, 각사마다 여자 아나운서를 등판시킨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남자들의 세계’에 출중한 외모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여자 아나운서들이 등장하자 시청률이 움직였다. ‘여신’의 숫자가 늘며 이들간의 경쟁구도가 만들어졌다. ‘업계의 편견’에 맞서 전문성을 쌓아야할 때에 “외부의 경쟁구도가 만들어지고, 동반자를 경쟁자로 바라보는 시선”(배지현)을 마주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2015년 현재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들이 방송인으로 전업하고 채널을 옮기며 거취가 정리되자 눈에 띄는 얼굴은 손에 꼽을 정도가 됐다.
“최근 종영한 ‘언프리티 랩스타’(엠넷)를 보는데, 그 친구들이 그러더라고요. 업계에 여자래퍼들이 없다고요. 프로그램에선 욕하고 싸우는 내부경쟁처럼 보이지만, 같이 걸어가는 동반자이기에 반갑고 지지가 된다고요. 업계에 남은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도 손에 셀 수 있는 정도예요. 우리만이 서로의 고충을 알기에 보고 있으면 짠한 마음이 들죠. 저 친구도 고생 많이 했을텐데 싶고요.”(김선신)
연차에 따라 ‘직업인’으로 가져야하는 무게는 다를지라도 5년차 김선신과 배지현, 3년차 박지영이 걸어온 길이 크게 다르진 않다. ‘초짜’ 시절을 극복하기 위해 ‘맨땅에 헤딩’ 하듯 매일 같이 야구와 시간을 보냈다. 끊임없이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스스로의 경쟁력을 찾아 다녔다. “너랑 일할 때 제일 편하다는 말이 좋더라고요.”(김선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믿어준다는 것”, “시청자에게 익숙한 편안함을 주는 것”(배지현), “평범하지만 튀지 않고 적정선을 유지하는 것”(박지영)은 지난 시간 세 사람이 쌓아온 경쟁력의 증거였다.
“야구선수처럼 부상 없이 시즌을 잘 치러야”(배지현) 다음 등판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전문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면, 생존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신’이라는 수사의 양가적인 의미만큼이나 아쉬움이 따라온다. 이 말은 ‘동경의 대상’이자 ‘킬러콘텐츠’를 갖춘 경쟁력이라 해석될 수도 있으나, ‘금녀의 집’에 들어섰다는 업계 환경을 떠올리면 또 다른 해석이 나온다.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는 자연스러워졌지만, 고정관념이 깨진 것 같진 않아요. 여자팬이 많아졌어도 스포츠는 여전히 남성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죠. 고정관념의 시선을 받을 땐 두려움도 있어요. 극복할 수 있는 정신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박지영)
“아직까지 여자 아나운서는 꽃이라고 바라보는 시선이 적지 않아요. 답답하고 속상한 적이 많았어요. 여자 아나운서들의 머리모양과 화장, 의상에만 관심을 갖고 우리가 하는 멘트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죠.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에 대체제가 많다고 생각하는 시각도 속상하고요.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봐주신다면 좋겠어요.”(김선신)
“목표를 묻는 질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야구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 그게 가능하겠냐는 표정이 읽혀요.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가 굉장히 빠르게 순환됐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정체기에 접어들었어요. 5년차가 되고 보니 우리의 장점을 느끼는 분들도 있고요. 과도기를 지나면 연륜 있고, 경험을 쌓은 여자 아나운서들이 저마다의 스토리를 가지고 방송을 지속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도 조금씩 생겨요.”(배지현)
▶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로의 오랜 꿈=서로가 든든한 지지대가 된다 해도 걸어가야할 길의 노고는 만만치 않다. 이미 1년차 때부터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의 수명에 대한 불안한 고민을 안았다는 김선신은 “버티는게 강한 거야. 버티는게 살아남는 거야”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고 했다. “이 직업은 서른까지만 하겠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지만, “애정이 커갈수록 직업관이 자리”(김선신)잡았기에,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해 욕심“(배지현)이 생겨 스포츠 아나운서로의 길고 오랜 꿈도 꾸게 됐다.
“야구가 걸어온 길, 선수들, 그 팀의 역사 속에 들어갈 순 없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함께 한다는 소속감이 생겼어요. 기회가 된다면 현장에 있는 선수들과 관중의 마음, 그 열기를 고스란히 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박지영)
“가장 감동적인 순간들을 현장에서 함께 하고 싶어요. 케이블 방송은 한국시리즈의 마지막 중계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워요. 스튜디오에서 멘트를 쓰다가도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은 감동적인 경기들이 있어요. 선수의 마음을 가장 잘 이끌 수 있는 인터뷰어가 되고 싶고, 그 팀의 우승 순간을 가장 잘 전달하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요.”(김선신)
“배지현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니까 출연하겠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좋겠죠. 무엇보다 이 일을 오래 하고 싶고요. ”(배지현)
마지막 20대를 보내고 있는 지금은 “여자들에게 가장 고민이 많은 시기”라지만, 세 사람에겐 “나이에 대한 스트레스는 주변 사람들로 인한 것”(박지영)이라며 “일을 할 때만큼은 어떤 한계를 둔 적이 없다”(배지현)고 입을 모은다. ‘걸림돌’은 경쟁력을 키우면 뛰어넘을 수 있다는 확신과 아직은 “마지막 20대라는 자부심”과 더불어 “서른이 되면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김선신)는 바람도 나온다.
농담반 진담반 한 마디를 던진다. 서른을 앞둔 지금 필요한 건 ‘노화방지’라고. “결혼을 해서 아줌마가 되고, 나이가 들어 주름이 늘어도 스포츠 아나운서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분명히 위험도 따를 거에요. 아줌마 방송이니까, 여자 아나운서의 주름살 때문에 보기 싫다는 분들도 있겠죠. 시청률이 떨어질 수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면, 이 과도기를 지나 조금씩 분위기가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일단 노화방지에 신경쓸게요.(웃음)”(김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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