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로봇 만화 캐릭터인 태권브이(V)는 불혹을 넘은 내게도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각별한 존재다. 31년 전 1984년, 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졸라 태권브이를 극장에서 관람했다. 귀갓길엔 다시 한번 어머니에게 생떼를 써서 문구점에 들러 당시로서는 거금을 주고 태권브이 캐릭터 장난감을 손에 넣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분에 넘치는 호사였다.
별도의 시나리오로 녹음된 태권브이 카세트 테이프도 오래도록 돌려들었다. 영어로도 나오는 태권브이의 주제가는 심장이 두근거릴 만큼 멋진 음악이었다. 그 무렵 이미 알고 있던 일본의 로봇 마징가제트보다 태권브이가 더 멋있고 더 강할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했다. 올해는 태권브이도 우리 나이로 마흔이다. 탄생 39주년이다. 태권브이는 1976년 처음 만화영화로 개봉했다. 공개된 원안 속 제목이 로보트 태권브이가 아닌 ‘마징거 태권’이었고, 심지어 캐릭터는 그레이트마징가와 쏙 빼닮았다는 점에서 1972년 먼저 세상에 나온 일본의 마징가제트가 모방 대상이었음은 확정적 사실이다. 모습을 확 바꿔 날개를 달고 나온 83년과 84년의 슈퍼태권브이 또한 일제 캐릭터의 표절이었다.
한 때는 소수만 알고 있던 이 같은 출생 비밀이 공론화 되면서 태권브이의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이 왔다. 외면을 넘은 반감의 수준이었다. 태권브이가 독도를 침범한 왜선을 격파한다는 내용의 TV CF가 등장했을 때 태권브이를 독도 지키미로 묘사하지 말라며 이런 반감이 극명하게 표출된 적도 있다.
지난해 8월부터는 태권브이가 OK저축은행의 대출 광고 모델로도 나서고 있다. 태권브이에 대한 독점적 저작권을 갖고 있다는 (주)로보트태권브이에서 선택한 행보다. 한국을 수호하고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태권브이도 배고픔은 면해야 했을 터라고 이해해 주고 싶다. 그런데 최근 방영되고 있는 광고편은 이런 이해심을 깔고 바라보고 있더라도 기분이 언짢아진다. 태권브이 캐릭터가 변조된 음성으로 “슈와!”라고 외친다. 대출금을 팍팍 ‘쏴’라는 의미로 이를 집어넣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또 한번 표절이 되는 순간이다. 이 기합 소리는 엄연히 일본 울트라맨의 것이다. 제작사에서 음성 3가지를 섞어 외계인의 말처럼 들리도록 했다는 사연을 품은 소리이기도 하다.
울트라맨은 외모는 로봇일지언정 설정상 명백히 외계인 생명체이니 기합소리를 내는 것이지, 난 데 없이 탑승용 거대 로봇인 태권브이가 웬 기합소리인가. 일본 사람들에게 울트라맨 흉내를 내보라고 한다면 열에 아홉은 손을 열십자로 교차한 뒤 “슈와!”라고 외칠 것이다. 뽀로로나 아기공룡 둘리가 “피카~추!”라고 외치는 격이다.
공교롭게도 태권브이가 구사하는 무술인 국기 태권도 또한 비슷한 태생의 ‘비밀’이 있다. 일본에서 카라테(공수도)를 배우고 돌아온 사람들이 공수도, 당수도 등의 이름으로 국내에서 수련을 해온 것이 태권도 창시자인 최홍희에 의해 통합된 게 태권도다.
하지만 태권도는 이런 태생적 배경을 극복하고 현재는 카라테를 훨씬 능가하는 대중적 무술종목으로 자리잡지 않았는가. 태권브이는 태권도의 성공에서 그 활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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