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하나쯤 뚫고 나온다. 송곳 같은 인간”이. “가장 앞에서 날카롭게 뚫고나와 가장 먼저 부서질지라도” 그런 사람은 분명 하나쯤은 있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는 당연하지 않게 잊혀졌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건 버겁다. “다음 한 발이 절벽일지 모른다는 공포“가 눈 앞에 그려지니 침묵이 최선이다. 노동조합이 외면받고 적대시되는 환경이기에 누구도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제 스스로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 걸음 내딛고 마는” 송곳 같은 사람들이 드라마에 있다. 그들은 국내 드라마 사상 최초로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한다.
JTBC 드라마 ‘송곳’은 2003년 외국계 대형마트 까르푸 노조의 조직 과정과 파업현장의 이야기를 담았다. “노동자의 권리를 말하면 잡혀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어 방송할 수 있을까 싶었다”고 배우 안내상은 말문을 열었다. 청년시절엔 학생운동에 몸 담았던 안내상도, 군 제대 이후 마트에서 8개월 가량 일을 한 경험이 있는 박시환에게도 이 드라마는 특별했다. 다른 배우들에게도 ‘송곳’은 전혀 다른 삶의 풍경을 들여다보게 된 계기가 됐다.
배우 현우는 드라마에서 푸르미마트 청과물 코너의 주강민 주임을 연기한다. 친구같고 형제같은 동료인 황준철 주임(예성)이 부당해고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계기로 노동조합에 가입한다.
현우에겐 너무도 생소했던 세계의 일이었다. 그는 “노조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며 “대본을 보고 이게 대체 무슨 내용일까 싶었다”고 말했다. 드라마를 만나고서야 “평소 지나면서 보던 (노사문제로) 싸우는 분들이 이런 이유에서 싸우고 계셨던 거라는 생각을 했다”는 현우는 “많은 공감을 하게 됐다. 드라마를 촬영하며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되지만, 여전히 너무나 어렵다. 알아야 할 것도 많고 찾아야 할 권리도 많다. 지금도 연기하며 많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지현우는 ‘송곳’에서 중간 관리자 이수인 과장을 연기한다. 원칙주의자 이수인은 마트 노동자들의 부당해고에 맞서는 송곳 같은 인간이다.
지현우의 선택은 이수인과 같았다. 그는 “만약 내가 일하는 곳에서 부당한 지시를 받는다면 이수인처럼 반응하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제 성격도 그렇다”고 말했다.
지현우는 “드라마를 시작할 때, 왜 이 웹툰을 드라마로 못 만들까 하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며 “단순히 사는 이야기,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왜 그렇게 심각하게만 바라보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현우는 그러면서 ‘송곳’은 “쓰지만 몸에 좋은 한약 같은 드라마”라고 말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을 공부하며 볼 수 있는 교육드라마이고, 생각할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드라마”라고 덧붙였다.
지현우의 이야기처럼 ‘송곳’은 ‘불편한 드라마’다. 드라마를 바라보는 많은 시선엔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기에 주는 불편함이 있다. TV에서만큼은 즐겁고 가벼운 이야기로 위로받고 싶은 마음 한켠에 자리한 많은 사람들의 사회인식이다.
드라마는 12년 전을 배경으로 하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노골적으로 그려진다. 그 현장의 모습들은 부당하고 비상식적이다. 지켜져야 할 일들이 지켜지지 않고, 당연히 받아들여야할 권리를 당연하게도 외면하도록 만드는 불합리한 일상이 이어진다. 심지어 수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알기에 마음 편히 바라볼 수만은 없는 드라마다. 남동협을 연기하는 배우 박시환은 실제로 마트 노동자였다. 그에게 ‘송곳’은 한 때는 삶의 터전이었던 공간에서 직접 겪은 일이었기에, 누구보다 공감하게 되는 특별한 드라마였다. 박시환은 스물세 살이었던 2009년, 군 제대 직후 마트에서 6~8개월 가량 일한 경험이 있다.
박시환은 “그 때 나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돌아보면 동협 캐릭터가 부럽다”고 말했다. “일하면서 당연하게 누려야했던 권리를 알지 못했고, 내 의견을 피력하지 못했다. 당연히 대우받았을 수 있는 것을 말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이 아쉽다”고 했다.
마트에서 근무하던 시절 박시환은 과자, 라면 파트를 담당했다. 드라마를 촬영하며 박시환은 “그 시절 근무했던 기억이 떠올라 공감이 많이 됐다”며 “이후 나오게 될 이야기이지만 출근 문제와 열정페이에 대한 부분은 특히 당시를 떠올리게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시환은 “마트뿐 아니라 모든 회사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드라마를 보면서 많은 분들이 일하는 것과 일에 대해 받는 보상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더 나은 대우를 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구고신 역을 맡은 안내상에게 이 드라마는 그의 청년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노무사 구고신은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함께 싸우는 ‘약자들의 방패막이’다.
안내상은 “예전엔 세상은 선한 약자와 악한 강자의 대립이라고 생각했다. 선한 약자들, 그들이 불쌍하기에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며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 그 안의 사람들을 들여다보니 너무 시시했다. 내 청춘을 왜 저들을 위해 바쳐야 하나 싶은 생각에 (학생운동을) 접었다”고 했다.
납품업체로부터 접대를 받은 사실이 징계 사유가 돼 해고 위기에 모인 드라마 속 인물 황준철의 사례를 언급하며 안내상은 “만약 이 같은 이야기가 기사로 나온다면 댓글엔 ‘너나 잘해’, ‘해고할 만 하네’라는 댓글이 수천 개가 쌓일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두가 시시한 사람들인데 누군가 흠결을 비쳤을 때 매몰찬 반응으로 매도하는 것은 이상한 사회”라고 안내상은 덧붙였다. 물론 안내상 역시 매일이 딜레마다. 그는 “나 역시 아직까지 시시한 약자들에 대해 마음을 열어놓지 못 한다”며 “다만 구고신처럼 실망하면서도 곁에 있어주고, 그 사람의 변화를 보고, 변하지 않을지라도 극복하는 구고신과 같은 삶을 추구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JTBC]
shee@heraldcorp.com
![4000만원 낼 세금을 1억 넘게 물다니…‘상속세 0원’이라도 꼭 신고해야 하는 이유 [이세상]](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3/news-p.v1.20260903.e72e37cbc9ac475abd6197c15b096a38_T1.png?type=h&h=240)
![앤트로픽 IPO는 시작일 뿐…AI 모델 ‘골라주는 시장’ 커진다 [서학개미 주식회사]](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3/rcv.YNA.20260813.PRU20260813276001009_T1.jpg?type=h&h=240)
![“교과서 미래엔 AI가 있다”…‘AI 공장’된 미래엔 세종공장 [그 회사 어때?]](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2/news-p.v1.20260821.9213ff47283443e4aeec745e2b971c31_T1.jp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