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0엔 추억…2030엔 소통과 공감 EBS ‘라디오웹툰’ 방송 1개월 호평
50분 방송서 웹툰 한편 드라마로 콘텐츠 빈곤의 시대 새 가능성 시사
“어른들은 만화를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만화를 추억함으로써 우리는 순수와 열정, 용기를 되찾을 수 있어요. 30대가 넘어 세파에 시달리다 보면 감성은 말라 가게 마련이잖아요. 말라가는 영혼에 물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게 제작진이 공통된 생각이었어요.”(방영찬 PD, 정태미 작가)
인터넷 포털의 킬러콘텐츠로 꼽히는 웹툰이 이번에는 라디오 안으로 들어왔다. 지난 3일부터 매일 오후 1시 EBS FM 라디오에선 웹툰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이 청취자와 만나고 있다. 50분 방송에선 드라마로 각색한 웹툰 한 편이 오디션을 거친 성우들의 열혈 연기로 다시 태어난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웹툰 속에서 빛도 못 보고 사라진 작품이 발굴되고, 인기작 안에 숨은 새로운 면을 재발견하기도 한다. 매주 월요일엔 베일에 싸여 있던 웹툰작가들을 초대해 청취자와 소통하게 하는 이 프로그램은 ‘라디오웹툰’이다. ‘닥터 프로스트’로 유명한 웹툰작가 이종범(32)이 DJ를 맡았다. 지난해 EBS의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경청’을 진행하며 감미로운 ‘달빛 보이스’라는 애칭을 얻은 이종범 작가는 이번엔 발랄한 ‘햇빛 보이스’로 갈아 입고 나른한 오후를 깨우고 있다.
최근 서울 우면동 EBS 방송센터 인근의 한 카페에서 이종범 DJ와 방영찬(34) PD, 정태미(22) 작가를 만났다.
이들 제작진은 모두 ‘덕후 기질’을 지닌 웹툰 마니아이자 어린 시절엔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는 ‘라디오키드’라고 한다.
‘라디오웹툰’은 앞서 EBS에서 방영됐던 ‘책 읽어주는 라디오’ ‘라디오카툰’의 연장에 선 프로그램이다. EBS 내부에서조차 “웹툰을 라디오로 들을 수 있으리란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지만 막상 두 개의 플랫폼을 엮으니 방송 1개월차에 심심치 않은 반응이 들린다.
생방송 청취자는 2030세대가 주를 이루기에 이 DJ와 제작진은 웹툰 하나를 선정해 드라마로 만들 때도 ‘소통과 공감’에 무게를 둔다.
“기본적으로 작품을 선정할 때는 이미지보다 이야기에 힘이 있는 것, 분량이 지나치게 긴 것보다는 중ㆍ단편을 선호해요. 연애물을 고를 때에도 10대와 30대의 연애상이 다르다는 걸 감안해 누구나 겪어봤을법한 작품을 선정하고요. 20대에게 중요한 취업 문제도 고려 대상이기에 ‘무한동력’을 다루기도 했죠.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 몇 개의 기준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재미와 의미예요.”(DJ 이종범 작가)
단순히 웃고 흘려보낼 이야기로 그치고 마는 게 아니라 재미있는 구성으로 청취자를 들었다 놓으며 그 안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어렵진 않지만 꽤 발칙하다. ‘빵점동맹’이라는 웹툰을 드라마로 만들며 “공부는 왜 해야 하냐”는 질문을 던졌다. 청취자들마저 키득거리게 만들면서도 저마다 이유를 대며 답변이 쏟아지게 한 질문이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미친듯이 노력해본 적이 있냐”고 묻다가도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의 어디에 반했냐”고 물으며 청취자들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과연 반응이 올까 생각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청취자들이 많은 답변을 보내줘요. 웹툰을 들으며 그 시절로 돌아간 자신을 떠올린 뒤 공감하고 소통하는 과정이죠. 좋은 이야기로 마음을 치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힐링보다는 소통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어요.”(정태미 작가)
“40대 이상의 청취자들에겐 잊었던 순수함을 되돌릴 수 있도록 하고, 2030세대에게는 소통과 공감으로 다가서고 싶다”는 바람을 이루기 위해 제작진은 열정 하나로 뭉쳐 프로그램에 푹 빠져 지낸다. “피곤한 연애의 기분이 든다”는 TV와 달리 “가끔은 흘려들어도 서운해하지 않는” 라디오가 “불특정 다수에게 공급되는 웹툰”을 만난 프로그램은 플랫폼의 경계를 뒤흔든 희귀 콘텐츠로도 눈도장을 찍게 됐다. 신개념 플랫폼 강자와 아날로그 매체가 만나 콘텐츠 빈곤의 시대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셈이다.
“라디오는 지금 ‘마이너’한 매체라는 인식이 있지만 그 시절의 핵심 콘텐츠를 가장 잘 포착하는, 앞선 매체라는 생각이 들어요. 과거엔 정치극을 선보인 라디오가 인기를 끌었고, 특별한 콘텐츠가 빈곤했던 시절엔 패러디를 먼저 시작했어요. 지금은 포털의 킬러콘텐츠로 불리는 웹툰이 그 중심에 들어왔어요. 2년 뒤의 방송 환경도 예측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DJ 이종범 작가)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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