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호주 남단 태즈메이니아섬 주도(州道) 호바트에 살고있는 한 70대 남성은 나이가 들면서 부쩍 자신의 조상이 궁금해졌다. 그는 ‘태즈매이니아가계협회’를 통해 자신의 조상이 아내 살인미수범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의 조상은 아내를 총으로 쐈지만, 아내는 죽지 않았고 이후에 둘 사이에서 자녀도 뒀다. 그는 조상의 범죄 사실에 상심해하지 않았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면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 영구불변의 진리가 지금 호주에서 증명되고 있다.
18~19세기 16만 명의 죄수 유배지였던 호주에서는 지금 ‘뿌리 찾기’ 열풍이 불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최근 “호주에서 ‘가계도 그리기’가 인기”라며 “죄수 조상이지만 지금은 ‘자랑’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잃어버린 조상을 찾아서=가계 검색 사이트 중 세계 최대 규모인 ‘앤세스트리(가계ㆍ혈통)닷컴(ancestry.com.au)’은 유료 회원만 270만명이다. 연회비는 한화 약 20만원 정도로, 미국과 유럽, 호주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 사이트는 120억 건의 온라인 자료를 활용해 고객의 뿌리를 찾아준다. 죄수의 생년월일에서 외모, 복역 위치, 형기, 종료 후 거주 등 방대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위해 고문서 연구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거나, 저작권을 직접 매입하기도 한다.
또 호주 남부 태즈매이니아 섬에 위치한 ‘태즈매이니아가계협회’는 회원 1200명을 보유하고 있다. ‘창시자와 생존자’ 검색창에 회원 가족의 정보를 넣으면 조상의 신상이 나온다. 예를들어 이 협회의 제임스 터너 회장의 정보(부모ㆍ조부모 성명 및 생년월일)를 해당 사이트에 입력하면 모성 4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제임스 헨리 스폴딩이라는 이름을 찾아낸다. 화면의 죄명란에는 ‘가택 침입 강도’라는 글자가 적힌다.
구체적으로는 ‘영국 워릭셔 출신의 단추 직공. 유배 결정으로 1825년 4월 17일 태즈매이니아에 도착. 자유개척민 뉴먼 아래서 일함. 뉴먼의 딸 사이에 자녀가 있음. 다른 여성과 결혼에 9명의 자녀를 둠’이라는 기록이 뜬다.
▶죄수 조상, 수치 아닌 자랑= 호주인에게 죄수 조상이 ‘자랑’이 된 것은 30년 전부터다. 시드니 대학의 카스텐 매킨지 교수(죄수사학)는 “죄수 조상이 오랫동안 ‘수치’로 여겨지면서 후손이 기록을 훼손하거나 문서를 보관한 건물에 불을 지르는 일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죄를 짓는 것은 ‘피’가 아닌 ‘환경’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부정적 태도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여기에 자원 부국인 호주로 이민오는 유럽인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나쁜 선입관은 희석됐다.
매킨지 교수는 “조상 찾기는 호주가 자신감과 독립적인 정체성 갖기 시작한 것의 다른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죄인의 자손’에게 장점은?=죄인의 후손으로 ‘남다른’ 자긍심을 느끼는 호주인들은 조상의 생명력과 호주의 풍요로움에 감사한다.
앤세스트리닷컴의 호주ㆍ뉴질랜드 담당 브랜드 아젠트 부장은 “내 조상은 프랑스 출신 여성인데, 아버지의 죄를 뒤집어 쓰고 영국으로 옮겨져 호주로 이송됐다. 이송 도중 해적에 습격을 당해 무기상과 결혼했고 지금의 내가 있다. 그녀의 인생을 생각하면 매일 아침 일어나 일하러 나가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낸 조상의 끈질긴 생명력이 호주의 또 다른 ‘뿌리’라는 의미다.
이 외에도 조상 덕에 호주에 뿌리내려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복으로 여긴다. 영국의 빈곤층이었던 죄수들은 대체로 영양상태가 나빠 키가 작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호주에 와 제대로 된 식사를 하게 됐고, 그 후손들은 부모보다 훨씬 키가 커져 이들을 ‘옥수수줄기(conrstalk)’로 부르기도 했다.
/cheon@heraldcorp.com
☞호주의 유배지 역사? 호주의 영국 식민지 역사는 1770년 시작됐다. 5만년 전부터 원주민이 거주했지만 영국인 제임스 쿡 선장이 호주 대륙을 발견하면서 영국의 식민지가 됐다. 산업혁명으로 빈민층의 범죄율이 높아지자 영국은 호주를 새로운 유배지로 결정했다. 1788년 현재의 시드니 보타니 만에 처음으로 죄수 750명이 도착한 이후 1868년까지 80년간 호주로 유배온 죄수는 16만명 이상에 달했다. 이중 40%를 태즈매니아 섬이 수용했다.
cheon@heraldcorp.com
![‘중위소득 70%’에 발목 잡힌 기초연금 개편…소득 보장 실효성 낮고 재정부담 가중[Deep Spot]](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7/news-p.v1.20260907.67992ac2e89a4eddbffab50b901154f7_T1.jpg?type=h&h=240)
![요즘 ‘큰손’들은 주식 팔지도 사지도 않는다…‘11월 3일’부터 본다, 왜? [큰손 따라잡기]](https://wimg.heraldcorp.com/news/cms/2026/09/07/news-p.v1.20260826.97fcdbca4f2c4562acc488b50990cb2d_T1.jpg?type=h&h=2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