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엑소더스’는 끝나지 않았다. 케이블과 종편을 거쳐 이젠 중국이다.
최근 지상파 방송사와 콘텐츠 제작사에 몸 담은 다섯 명의 PD가 중국행을 결정했다. 신정수·강궁·문경태 MBC PD, 남규홍 SBS PD, 임정규 SM C&C PD다. 이들 다섯 명은 김영희 PD가 중국 방송콘텐츠 제작을 위해 설립한 B&R(Blue Flame & Rice House, 대표 김영희)에서 영입했다.
현재 중국 후난위성TV에서 예능 프로그램 ‘폭풍효자’를 제작 중인 김영희 PD는 헤럴드경제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한국, 중국, 일본으로 방송가의 국경을 나누는 것은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다”라며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준비된 환경에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로 PD들의 영입배경을 밝혔다. 영입한 다섯 명의 PD는 향후 6개월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올 가을 방송을 목표로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지상파 PD들의 이탈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CJ E&M의 콘텐츠 강화와 종합편성채널 개국 당시 지상파 예능 PD들이 물 밀듯이 빠져나갔다. 그 다음이 바로 중국이었다. 최근 방송가에선 “좀 한다는 PD들은 모두 중국에 가있다”는 이야기마저 심심치 않게 나오는 상황이다. 이미 방송사를 떠난 PD나 남아있는 PD나 이 같은 이야기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방송 관계자들은 “지상파 방송사에도 여전히 실력있고 재기발랄한 PD들은 많다”고 말한다. 성공 콘텐츠를 내놓고 있는 젊은 PD들 역시 숱하고, 각사에선 ‘포스트 OOO’을 키우기 위해 분주하다. 다만 그만큼 업계에서 중국으로의 이탈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이야기다.
PD들의 잦은 이탈의 이유로는 현재 지상파 방송3사가 처한 구조적인 문제가 많이 지적된다. 한 지상파 방송사의 스타PD는 “회사가 가장 상황이 안 좋을 때 조직원이 떠난다”고 말했다. ‘안 좋은 상황’이라는 것은 쌍방간의 해석이 다를 수도 있으나, 이는 끝도 없는 재정난에서 기인한다.
한 지상파 방송사의 고위 관계자는 “채널이 늘어나며 광고시장을 케이블, 종편과 나눠가진 이후 방송사의 매출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다. 재원이 부족하니 제작비를 줄이고, 인력을 감축한다”라며 “PD들이 빠져도 새로운 사람을 충원해줄 수 없어 부족한 인력으로 똑같은 수준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니 일선 PD들 입장에선 고역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방송사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PD들 사이에선 ‘없는 인력’으로 밤을 새워 일을 해도 시간외 수당을 제외하면 어차피 월급은 똑같이 밪는 ‘직장인’이라는 상실감도 팽배하다.
김영희 PD는 “구조적인 문제로 인한 이탈은 막을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김 PD는 “현재의 지상파 방송사는 경제적으로 경쟁이 치열해 새로운 시도를 할 기회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검증된 프로그램만 내놓는 한국과 달리 콘텐츠 수요가 막강한 중국 시장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을 뛰는 PD들의 고충이 만만치 않다. 지상파 방송사의 한 PD는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윗선에선 큰 돈을 써가며 모험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미 방송된 뻔한 콘텐츠라도 기왕이면 안정성을 담보한 프로그램을 만들길 바라는”, “참신하고 독특한 시도가 줄어드는 환경”이라는 지적이다. 또 다른 지상파 방송사의 PD는 “새 프로그램에 돈을 쓰기 힘드니 예능 역시 스타 마케팅에만 매달린다. 일단 스타를 잡아오면 편성이 쉽기 때문”이라며 “스타 캐스팅에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써야하니 참신한 시도를 하려고 해도 재원 부족으로 결국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기 힘든 독특한 시도를 하는 PD들에겐 제작 기회도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선 PD들의 입장은 각양각색이다. 다만 ‘창의성’이 보장되는 환경이 아니라는 데에선 방송사를 넘어 뜻을 같이 한다. 그 배경엔 ‘재원 부족’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로 인해 ‘돈 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라는 압박도 적지 않다.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조직문화는 “시청률이 높고, 광고가 잘 붙는 프로그램을 만들라”는 끊임없는 개입과 통제로 이어진다.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이상” 쉽게 바뀌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도 지상파 방송사가 직면한 어려움이지만, 더 큰 문제는 남아있는 PD들의 계속되는 이탈 조짐이다.
한 방송사의 이름 있는 PD 역시 “러브콜을 받는 PD들이 내부에도 적지 않을 것”이라며 ”나 역시도 몇 차례 들어왔고, 이전엔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은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개인의 선택과 구조적 문제가 맞물려 지상파 PD들의 이탈은 막을 수 없는 일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중국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될 가능성”(김영희 PD)을 품은 시장인데다 “콘텐츠 수요와 제작 요구가 많아 인력 확충이 필요”(김영희 PD)한 상황이다. 김 PD 역시 “향후 중국 시장에서 능력과 재능을 발휘하고 싶은 PD들을 영입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김영희 PD와 의기투합한 지상파 출신 네 명의 PD들은 모두 각사에서 히트 콘텐츠를 내놓았던 중견 PD들이다.
신정수(46) PD는 ‘놀러와’ ‘나는 가수다’를, 강궁(39) PD는 ‘우리 결혼했어요’ ‘아빠! 어디가?’를, 문경태(37) PD는 ‘나 혼자 산다’ ‘진짜 사나이’ 등을 연출했다. SBS의 남규홍(51) PD는 ‘짝’을, 임정규(36) PD는 tvN ‘부자의 탄생’과 중국판 ‘우리동네 예체능’ 등을 연출한 바 있다.
남규홍 SBS PD의 경우 교양국 출신으로 김영희 PD와 만나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됐다. 두 사람은 방송사는 다르지만 5~6년 전부터 인연을 맺었다. 남 PD는 “프로그램을 만들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좋다. 백지 상태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한국에서 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처음부터 시작할 생각이다.교양과 예능이 가미된 새로운 형태의 예능 프로그램을 기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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