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라는 호칭이 우리말에 들어온 지 꽤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와이프’는 우리말이 아니다. 외래어도 아니고 그저 외국어에 불과하다. 널리 사용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본다면 특이한 일이다. 내가 볼 때는 현재 한국에서는 ‘아내, 처, 부인’이라는 표현보다 ‘와이프’라는 표현이 훨씬 더 많이 쓰이고 있는 듯하다. 자신의 부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거의 대부분의 남편들이 ‘내 와이프’라고 말한다. 종종 ‘내 마누라’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냥 과시 차원에서 하는 말투일 뿐이다. 부인이 있는 곳에서는 ‘마누라’라는 표현을 안 한다.
언제부터 ‘와이프’라는 표현이 쓰였는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주 오래된 현상은 아님은 분명하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와이프’라는 말은 잘 사용되지 않았다. 초기에는 비교적 부인을 세련되게 부르려는 태도를 반영하고 있었다. 왠지 ‘와이프’라고 부르면 자기까지 고상해지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너 나 할 것 없이 ‘와이프’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고,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말이 되어 버렸다. ‘와이프’라는 말이 특이한 점은 ‘허즈번드’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편을 ‘허즈번드’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농담으로나 부를까 자기 남편을 남에게 소개할 때 ‘내 허즈번드’ 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보통 반대말이 있으면 같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와이프’의 경우는 예외인 셈이다.
자기의 아내를 다른 사람 앞에서 이야기할 때 지칭이 좀 복잡하기는 하다. 부인이라는 말은 남의 아내를 지칭할 때 쓰는 말이지 자기의 아내에게는 안 쓴다. 즉, 자기의 아내를 ‘내 부인’이라고 말하면 예의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 ‘아내’라고 해야 한다. 한자어로 ‘처(妻)’, ‘내자(內子)’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안사람’이나 ‘집사람’이라는 말도 자주 쓰는 표현이다. ‘안사람’이라는 말이나 ‘집사람’이라는 말을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아내의 역할을 집 안으로 한정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지칭하는 표현을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옛사람들은 주로 아내라는 표현보다는 ‘안식구’라는 말을 즐겨 썼다. 이 말도 좀 특이한 점이 있다. 왜냐하면 ‘바깥식구’라는 말을 잘 안 쓰기 때문이다. ‘바깥식구’라는 말 대신 ‘바깥양반’이라는 표현을 주로 쓴다. ‘안식구’라는 말 대신에 ‘집식구’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이 말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식구 중에서 대표적인 지위를 갖는 사람이 아내라는 점이다. 사실 식구는 여러 명이 있지만 아내가 식구의 대표선수이다.
아내를 부르는 또 다른 말로는 ‘안주인’이 있다. 이 말도 널리 쓰이는 말은 아닌 듯싶다. 보통 안주인은 ‘집안의 여자주인’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는데 종종 자신의 부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것이다. 안주인의 상대가 되는 ‘바깥주인’이라는 말이 ‘집안의 남자주인’이라는 의미와 ‘남편’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져 사용되는 것에 비하면 완전히 아내의 의미로 굳어져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하지만 바깥주인과 상대가 되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안주인이라는 말도 널리 사용할 만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이에게 아내를 가리킬 때 ‘와이프’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국어를 전공하고 있는 직업적인 측면도 강하겠지만 아무래도 ‘와이프’라고 부르면 아내에 대한 감정이 실리지가 않는다. 나의 경우에는 대부분 ‘아내’라는 표현을 쓰고, 어른들 앞에서는 ‘집사람’이라는 표현을 주로 쓴다.
나이가 점점 들면서 ‘안주인’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다가온다. ‘안주인’이라는 말을 쓰면 아내를 존중한다는 느낌이 더 드는 것 같다. 가장 가까운 사이이지만 가장 존중해야 하는 사이도 부부가 아닐까 한다.
조현용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