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계좌당 가입금액 26만원…증권사 10분의1 만능통장, 깡통통장 우려 현실화 '국민 재산 증식' 커녕, '대국민 사기극' 될라
[헤럴드경제=정순식 기자] ‘만능통장, 국민재테크 상품’으로 기대를 모았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상품이 ‘국민 재산 증식 프로젝트’의 본질을 벗어나 초반부터 왜곡되고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판매 첫날 가입실적의 99%가 신탁형으로 쏠린 데다, 은행 신탁 상품의 계좌당 가입 금액이 26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금융권간 과열경쟁으로 직원 1인당 30~50계좌씩 할당해 1만원짜리 ‘깡통계좌’가 속출할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공격적인 투자모델로 구성된 일임형이 아닌 안정적인 신탁형에 99%가 몰렸다는 점도 ISA 본래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는 평가다.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ISA 출시를 계기로 위험자산 투자를 통한 국민 재산 형성을 유도하겠다’고 장담했지만, 금융당국의 준비 부족과 금융권의 과열 경쟁으로 ’국민재산증식‘은 커녕 자칫 ’대국민사기극‘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은행별로 수십만건씩 유치한 ‘1만원짜리’ 예약판매가 끝나면 가입계좌수가 급감할 것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일단 계좌부터 열고 보자는 은행의 가입 독려 마케팅이 ISA 시장을 왜곡시키는 주범이 아니냐는 눈총을 받고 있다.
ISA 출범 초반 준비부족과 과열 경쟁에 따른 후폭풍으로 다음달로 예정된 은행의 일임형 상품의 판매 이후 신탁형 상품의 대규모 해지와 ISA 계좌 이동 사태가 벌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 99%가 신탁형 상품 가입…재산증식 취지 무색= 만능통장으로까지 불리며 장안의 화제가 됐던 ISA의 판매 첫날 표면적인 계좌유치 실적은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평가는 ‘속빈강정’이라며 냉정하다.
금융회사들의 과도한 마케팅으로 인해 ISA가 초반부터 왜곡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이병건 동부증권 애널리스트는 “가입금액의 99%가 신탁형이라는 점은 ISA가 ‘국민재산증식용’이란 당초 취지를 무색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첫날 가입실적에 따르면 신탁형 ISA 가입자는 총 32만2113명으로 전체 ISA 가입자의 99.8%를 기록했다.
신탁형에 비해 높은 수수료가 단점으로 꼽히긴 하지만, 당초 시장에서는 일임형 상품의 수요가 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극단적인 신탁형 쏠림이었다.
더구나 신탁형 상품 가입 창구의 97%가 은행이라는 점도 의문을 더한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 고객의 특성상 스스로 자산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신탁형 보다는 금융회사에서 포트폴리오를 제시하고 이를 따라오는 일임형 상품의 수요가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이런 이유로 99대1의 가입 결과는 지극히 비정상적이라는 지적인 나오고 있다.
▶ 은행 1계좌당 평균 26만원…깡통계좌 현실로= 계좌당 가입금액도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첫날 증권사에 판매한 신탁형 ISA는 9593계좌 274억원이다. 1계좌당 평균 286만원이 들어온 셈이다.
일임형 ISA는 877계좌 18억원, 1계좌당 209만원이 들어왔다.
증권사에는 신탁형과 일임형 ISA 계좌에 평균 280만원에 돈이 들어왔다.
하지만 은행에 가입한 계좌는 30만건에 달하지만 금액은 802억에 불과해 평균 1계좌당 26만원에 그쳤다.
증권사 가입금액의 10분의 1수준이다.
이런 결과는 방대한 지점망을 가진 은행들이 고객들을 상대로 일단 계좌부터 만들도록 마케팅에 나선 결과로 해석되고 있다.
2000만원짜리 여행권, 자동차, 골드바 등 호화로운 경품이 전면에 내세우고 실적을 할당하는 등 은행들이 계좌 개설에만 초점을 둔 결과다.
실제 은행에서 ISA 계좌를 개설하는 고객들 중에는 1만원만 넣는 등 계좌 개설에만 의미를 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ISA 가입 초기 시장을 사실상 깡통계좌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금융권간 유치경쟁 과열로 직원들에게 의무 할당량을 부여한 것이 깡통계좌란 부작용으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시중 은행들의 경우 본부 직원의 경우 1인당 10계좌, 지점직원은 1인당 50계좌 이상을 할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증권사의 경우도 본사는 1인당 10계좌, 지점은 1인당 30∼40계좌의 ISA 유치를 할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중 은행 못지않은 수준이다
▶ 6월 수익률 공개 이후 대규모 해지사태 불가피= 금융업계에서는 ISA 시장의 본게임은 결국 4월 은행들의 일임형 상품 판매와 6월 1차 수익률 공개 이후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신탁형 가입자들의 대규모 계좌 해지 러시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금융업계 관계자들은 첫날 97%이 가입자를 싹쓸이한 은행들이 4월 일임평 상품 판매 이후 신탁형 가입자들을 일임형 상품으로 대거 이동시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신탁형 가입자들 상당수가 소액으로 계좌를 개설한 가입자들이어서 계좌 해지에 따른 불이익이 사실상 없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또 6월 ISA 계좌에 대한 수익률이 공개되며 주저하던 일임형 상품 수요자들이 대거 ISA 시장으로 유입되며 시장의 정상화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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