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로 떠오른 전남 여수 관기초교
“책 재미있게 읽었니? ○○이가 심청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오늘 집에 돌아가면 엄마 아빠에게 어떻게 해드릴거야?”
학교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어머니가 전래동화책 ‘효녀심청’을 다 읽고 반납하러온 학생에게 연이은 질문 공세다.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확인하는 차원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내 자녀와 같이 학교생활을 하는 아이들과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보는 게 더 어울리겠다. 아이는 책의 내용을 묻는 질문에 곧잘 대답하고는 다른 책을 다시 집어든다.
학부모들 ‘관사모’ 자체 조직
매주 모여 학교일정 확인후
독서지도·방과후수업 활동
참여율도 90%대 육박
폐교위기 딛고 9학급 유지
지역내 인기 학교로 부상
전남 여수시 소라면 관기리에 위치한 관기초등학교에선 이런 광경을 매일같이 볼 수 있다. 학교 도서관 사서를 맡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이 학교에 자녀를 둔 학부모다.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독서지도 자원봉사를 하면서 학부모는 일상적으로 학교 교육의 일원으로 참여한다. 책을 읽고 온 아이에게 한두 마디라도 조언을 건네기 위해선 학부모도 독서하고 공부해야 한다.
학교 친구의 부모님을 학교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입학식이나 졸업식, 스승의날 일일교사로 교단에 서는 ‘반장 엄마’를 보는 것이 고작인 게 대부분 학교의 현실이다.
학부모가 엄연한 교육주체의 한 축임에도 일단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 자의반 타의반 교육과정에서 배제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학급 임원 학부모 정도나 돼야 담임교사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좀더 늘어나지만 빈도가 잦다 싶으면 ‘치맛바람’이니 ‘바짓바람’이니 하는 수군거림을 감수해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관기초교에선 모든 학부모가 학교 교육과정에 참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전ㆍ오후 등하굣길 통학버스 운행 자원봉사부터 시작해 독서지도, 방과후학교 수업, 주말 특기활동 및 계절학교 수업에 ‘선생님’으로 활동하고 있다. 학부모 각자가 여유있는 시간을 활용해서 아무런 부담없이 학교 문턱을 드나든다.
물론 이렇게 학부모가 적극적으로 학교 교육에 참여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관기초교가 위치한 곳은 여수시 외곽의 작은 농촌마을로 등교생 가정의 70% 부모가 맞벌이를 하고 있다.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지만 시내로 출퇴근하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학교에서 아이를 돌봐주지 않는다면 학부모 대부분은 사교육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관기초교는 학부모 각자가 품앗이하며 학교 교육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를 타개했다. 여기엔 학교장의 사교육 금지 원칙이 주효했다. 전교생이 30여명에 그쳐 학교 간 통ㆍ폐합이 거론될 정도로 상황이 여의치 않았던 2009년 부임한 허정 교장은 학부모에게 “아이들을 마음껏 놀게 해주라”는 주문을 했다.
대신 동시에 학부모를 학교 교육 울타리 안으로 유인했다. 아이들이 공예시간에 탈을 만들거나, 특기활동 시간에 사물놀이 등을 할 때 학부모도 담임교사를 도와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전교생이 일주일에 세 번씩 학교 인근의 안심산을 등반할 때도 학부모 한두 명씩 동참할 수 있도록 했다. 어린 학생이 자연을 벗하며 호연지기를 기르고 학교생활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학부모도 점차 허 교장의 교육철학을 따르게 됐다.
이에 학부모는 지난해 자체적으로 ‘관기초교를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학부모회를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퇴근한 후 매주 한 차례씩 학부모끼리 교내에 마련된 ‘어울방’에 모여 학교 일정을 확인하고, 그에 따라 학부모회가 할 수 있는 일을 의논한다. 학부모회 조직 후 30%대에 그치던 학부모 참여율은 90%대에 육박하고 있다. 특히 출퇴근길 교통안전 도우미나 주말에 이뤄지는 야외 체험학습 도우미는 모든 학부모가 한 차례 이상 참여토록 하고 있다.
학부모회가 적극적으로 나선 덕분에 아이들도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종일 학교에 머물며 공부하고 즐길 수 있었다. 굳이 학원에 보내지 않더라도 옆집의 부모가 내 아이를 돌봐준다면 안심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것을 즐거워하니 학업 성적은 덤으로 따라왔다.
현재 학부모회장을 맡고 있는 안정숙(43) 씨는 “4학년인 아들 도헌이가 2학년 때 전학 오기 전까지는 배우는 게 더뎌 걱정이 많았는데 학교 선생님뿐만 아니라 방과후학교에서 학습도우미를 해주는 엄마들 덕분에 차근차근 잘 배우고 있다”며 “좀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학교 다닐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에 허 교장은 “학부모가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다. 학교도 교직원이 다 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학부모의 힘을 빌릴 수 있어 학교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평가했다.
허 교장은 이어 “학부모 스스로도 아이들을 더욱 가까이 지켜보면서 아이들에 대한 이해도도 높이고, 저마다의 능력을 발휘해서 교육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데 대해 보람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덕분에 관기초교는 폐교 위기를 넘겨 9학급 120명의 학생을 유지하고, 전학을 원하는 학생도 100여명에 이를 정도로 지역 내 인기 학교가 됐다. 관기초교 학생은 꽃피는 봄을 맞아 이번 주말엔 엄마와 함께 쑥범벅과 화전을 만드는 체험학습을 할 계획이다.
<백웅기 기자 @jpack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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