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ㆍ경찰 간 수사권 조정문제가 검찰의 완패로 끝났다. 여기서 패배는 검찰 ‘인격의 패배’를 뜻한다. 크게 보아, 검찰이 형사제도의 운영상 많은 손실을 입었다고 볼 수는 없는데도, 지금 검찰 조직은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수사 개시ㆍ진행권을 부여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검찰은 기소독점권이라는 우산 아래에서 누릴수 있는 수많은 권력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모든 범죄’에 대한 경찰 지휘권, 입건된 모든 사건 종결권, 기소대상 선택권, 수사대상 선택권, 범죄혐의 첨삭권, 경찰송치사건 리모델링권, 수사시기 조정권, 수사방법 선별권, 범죄정보 비축권, 검사를 수사하려는 다른기관의 수사에 관한 제어권 등등. 일일이 열거해보면 검찰의 권력은 재임중인 대통령을 제외한, 털어서 먼지 날 만한 만인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 검찰이 검사의 수사지휘에 관한 사항을 대통령령이 아닌 법무부령으로 하겠다고 고집하며 집단행동을 벌이다 민의의 대리자인 국회에서 한방 먹은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법무부는 교정직과 출입국관리직을 제외하고는 검사들에 의해 운영되는 조직이다. 이귀남 장관도 30년 가까이 검찰에 몸담았다. 검사의 수사지휘에 관한 사항을 법무부령으로 만든다는 것은 만인에게 적용되는 검찰 권력의 행사방법을 검찰 스스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입법기관인 국회가 이 불합리를 수정해 여러 부처와 기관의 총의를 모아 성안할 수 있는 ‘대통령령’으로 하겠다는데, 검찰 간부와 평검사까지 사의를 표명하고 심야 간부회를 여는가 하면 공안사건처럼 검사들이 집단행동을 보일 조짐까지 보였던 것은 아무래도 도를 넘은 행위로 비쳐질 수 밖에 없다.
유력한 한나라당 대표 주자인 홍준표 의원은 검사출신임에도 “당사자인 법무부가 (법령을) 만드는게 말이 되느냐. 검찰의 반발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일침을 놓았다. 검찰에 공소제기 권한이 있다면 국회에는 입법권이 있다. 권력을 분립시키고 해당 기관의 권능과 권한을 존중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이다.
법 적용 전문가인 검찰은 다른 직역에서 이같은 행위를 했다면 아마 형사처벌 가능성에 대한 법률 검토를 했을지도 모른다. 수사권 조정을 빌미로 저축은행 수사 휴업을 선언한 행위를 직무유기로 벌할 만 하고, 국제행사를 마친 직후 일과가 남아있음에도 무단 퇴근한 간부들을 공직자윤리법 등을 적용해 징계 또는 처벌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검사들의 집단행위, 특히 입법권을 무시한 집단행위는 공안 사건으로 다뤄질만도 하겠다. 심지어 내부통신망에 과도한 비난을 쏟아낸 행위는 정보통신망법 위반 내지는 명예훼손으로 처벌할지 검토할 만도 하겠다.
요즘 경찰대와 서울대를 동시에 합격하고도 경찰대를 택하는 학생이 있고, 경위로 임관할 수 있는 간부후보생의 수준은 상위권 대학 수준으로 높아졌으며 순경시험에 수백~수천대 1의 높은 경쟁률 기록할 정도로 경찰관 개개인의 이해력과 판단력은 향상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법률지식은 사시합격자보다 약간 낮을지 모르지만, 수사실무경험은 사건현장근무가 적은 검사보다 많을 가능성이 높다.
경찰이 임의로 덮어버리거나 수사과정에서 인권을 지키지 못한 경우는 검찰보다 많다고들 한다. 그렇다고 경찰만 탈법적 수사관행을 보였고, 검찰은 순결하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검찰도 늑장 압수수색, 출국후 출국금지 조치, 독직 폭행, 그랜저 검사, 스폰서 검사 파문, 부실한 공소장, 무죄율의 증가, 검사 불법행위의 내부감찰 처리 또는 무마, 여론압박에 따른 사후 재수사 사례 등은 검찰 역시 수사과정, 사건전후 처리과정에서 잘못을 저지를 경우가 있었음을 뜻한다.
검찰이 물샐틈 없는 수사지휘권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늘상 경찰을 상대로 해왔던 “경찰이 적법하게 수사할지 믿을 수 없다”는 말은 검찰 스스로 제 발 저린 구석이 있을 것이다. 적법하고도 인권을 보장하는 수사관행은 경찰이든 검찰이든 앞으로 엄정하고도 양심에 따른 집행을 하도록 노력하는 풍토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정착시킬 문제인 것이다.
경찰은 국회 사개특위 초안작성 과정에서 ‘부당한 수사지휘에 대한 이의제기권 부여’를 주장했다가 거부당했다. 전제군주 시절 프랑스 규문주의 법제에서나 있을 법한 검사에 대한 경찰의 복종의무는 진작에 없어졌어야 할 악법이고 존치시킬수록 21세기 대한민국의 웃음거리로 남게되는 나쁜 조항이었다.
이번 형소법 개정으로 별로 달라진 것도 없다. 수사지휘의 방법을 법무부,행안부, 검찰과 경찰 등이 머리를 맞대 대통령령으로 만들자는 것만 조금 달라졌지 검사는 ‘모든 수사’에 대해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다. 총의를 모아야 할 법령을 제멋대로 만들지 못하게 됐다고 해서 줄사퇴를 표명하고 집단성토를 하는 것은 군자 답지 못하다.
중국 고서 ‘열자’에는 이런 말이 있다. 呑舟之魚 不遊支流, 鴻鵠高飛 不集汚池 (탄주지어 불유지류, 홍곡고비 부집오지)/ 배를 삼킬 만한 큰 물고기는 얕은 개울에서 아니놀고, 큰 새는 높이 날지 더러운 연못에 모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법을 집행하는 검사는 우리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정의를 수호하는 최첨병이고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중요한 직역이다. 그 직역의 중요성에 비해 이번에 검사들은 지류에서 놀았고, 연못을 배회했다. 선배 검사인 김성호 전 법무장관은 이 구절을 퇴임의 변으로 대신했고, 나중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투명하지 않은 의리는 조폭문화에 불과하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되새겨 볼 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검찰은 국민들 앞에 보인 볼썽사나운 모습에 대해 근신해야 한다. 검찰이 개울에서 놀지 않고 큰 바다를 유영했다면, 검사들이 집단사의를 표명하지 않았다면 이번 형소법 개정은 검찰에게 패배가 아니다. 검찰이 패배하지 않는 방법은 사의를 표명한 모든 검사들은 사정에 몰두하던 두어달 전 상황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함영훈 선임기자 @hamcho3> abc@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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