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전 세계 390억회 재생, 틱톡 130억뷰 기록

4월 세종문화회관에서 8년 만의 내한공연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크레디아 제공]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크레디아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한없이 펼쳐지는 에메랄드 빛깔의 여름 바다가 눈부시게 반짝인다. 그 곳은 아름다운 시칠리아의 남부 해안(‘Punta Bianca’)이었고, 시드니 어느 작은 도시에서 바라보는 남태평양(‘로즈 베이’)의 한 줄기이기도 했다. 한 사람의 삶에 켜켜이 쌓인 모든 여름은 아득한 노스탤지어의 음악으로 담겼다. 그는 자신의 음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유 없이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불안감을 가집니다. 나의 음악은 속도를 늦추는 삶을 위한 선언문(메니페스토, manifesto)입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루도비코 에이나우디(70)가 돌아왔다. 17번째 음반 ‘더 서머 포트레이츠(The Summer Portraits)’를 통해서다. 음반은 ‘기억의 음악’으로 채워졌다. 그가 거쳐온 삶의 순간순간마다 각인된 ‘여름날의 기억’이 반복적인 코드 진행으로 겹겹이 쌓이고 쌓여 마음의 물결을 만든다.

8년 만의 내한(4월 2일, 세종문화회관)을 앞두고 최근 한국 언론과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난 에이나우디는 “10~12세 때 떠난 이탈리아 어촌 마을에서 보낸 3개월 간의 여름 휴가를 떠올리며 담은 음반”이라고 소개했다. “음반이 한 권의 책이라면, 그 안의 음악들은 각기 다른 스토리를 가진 하나의 챕터”라고 한 그의 새 음반엔 총 13개 트랙의 이야기가 실렸다. 그 안엔 오래전 날들을 향한 기억이 담겼다.

“천국 같은 시간이었어요. 친구들과 배를 타고 나와 우리만의 모험을 즐기고 그날 잡은 물고기로 요리를 해먹기도 했어요. 그 시간들은 어린 소년에게 세계를 발견하는 시간이었죠. 세계를 직접 경험하고 탐험하며, 자유를 만끽하는 그 시간이 이번 앨범의 테마였어요.”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크레디아 제공]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크레디아 제공]

에이나우디의 음악은 시간을 멈추게 한다. 동일한 속도와 동일한 세기로 반복되는 건반, 그 뒤로 들려오는 전자음이 크레센도를 향해가면(‘Pathos’) 음악과 함께 심장박동이 커진다. 잊었던 날들을 상기하고 잊혔던 시절을 소환한다. 그의 음악은 대개 기억과 추억, 자연의 어딘가에서 길어올린다.

그는 “음악의 영감은 삶에서 경험하는 각기 다른 순간들마다 찾아온다”며 “언제 어떻게 찾아오는지 이 음악이 어떻게 왔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지만, 순간순간 삶에 찾아온 아이디어들이 음악을 만든다”고 했다. 주로 “늦은 오후, 밖이 어둑해지는 저녁에 샘솟는다”는 그의 아이디어 저장고는 휴대폰이다. 보물창고 같은 이 곳에서 ‘간택’받은 아이디어가 그의 음반에 하나의 챕터로 실리게 된다.

네오클래식 음악가인 에이나우디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곡가로 꼽힌다. 해마다 약 90억회 이상씩 재생되고, 지금까지 총 390억 회가 울려퍼졌다.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선 모차르트, 베토벤보다도 많이 청취한 클래식 음악가라는 이례적 기록의 주인공이다. 이번 음반 역시 발매와 동시에 애플클래식 차트 1위에 올랐다.

영국 일간 가우디는 에이나우디에 대해 “그의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 그건 아마도 에이나우디의 곡인 줄 몰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화 ‘블랙스완’, ‘언터처블:1%의 우정’, ‘닥터 지바고’, ‘인시디언스’, ‘노매드랜드’, ‘더 파더’ 등 무수히 많은 작품 속 음악이 그의 손을 거쳤다.

대표곡 중 하나인 ‘익스피리언스’는 탁톡에서 무려 156억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 곡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윌든’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생각하지 않고 돈을 버는 데만 관심을 가지는 인간의 행태, 도시를 벗어나 자연에서 살아갈 때 느끼는 변화 등을 읽으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했다.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크레디아 제공]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크레디아 제공]

그는 자신의 음악이 소구되는 이유를 ‘에너지의 힘’으로 설명했다. 에이나우디는 “(음악을 통해) 계속해서 어떤 에너지를 표현하고 있다”며 “음악을 통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삶과 사랑의 에너지를 내 음악과 작업을 통해 표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에서 ‘실험음악의 거장’ 루치아노 베리오(1925 ~2003)를 사사한 에이나우디는 난해하고 복잡한 음악 대신 치유의 음악으로 대중과 만난다. 그의 음악은 때론 향수가 짙어 현재를 불안하게 하면서도, 때론 명상적 선율로 안전한 보호구역이 돼준다.

이탈리아 명문 출판사의 사장인 아버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평생 매우 많은 음악을 들었다”며 “어머니가 피아노로 쇼팽, 바흐, 슈만의 음악을 자주 쳐주셨다”고 했다. 클래식 음악을 비롯해 1960년대엔 비틀스를 비롯한 팝 음악의 영향을 받았고, 지금도 빌리 아일리시, 라디오 헤드, 에미넴 등 대중음악도 즐겨 듣는다.

경계 없는 음악 청취는 그의 음악관에도 영향을 미친다. 쇤베르크 이후 100여년간, 현대음악 작곡가들은 무조음악에 전념해왔지만 그는 다르다. 에이나우디는 “음악에 조성이나 리듬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규칙을 만드는 것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며 “세상에 이미 많은 규칙이 있는데 굳이 예술까지 규칙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70세의 거장은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거의 매일 무엇이든 녹음”하며 음악을 만든다. 그는 “똑같은 음악을 만드는 것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며 “음악으로 새로운 영토를 탐색하고 탐구하는 것을 계속해서 추구하고 있다”고 했다. 창조적 힘이 내놓는 그의 음악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든 순간에 작은 쉼표를 찍는다.

“많은 사람들이 매우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어떤 일을 할 때 서두르기보다는 충분한 시간을 갖는 편이에요. 그것이 저의 음악에도 반영되고요. 저의 음악으로 우리의 인생이 사방이 갇혀 있는 갑갑한 삶이 아니라 여전히 숨 쉴 공간이 있는 삶이라는 걸 느끼고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