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만30004개→올해 1만546개

주유소 간 거리 제한 해제 후 공급 과잉

‘알뜰주유소’ 등장으로 시장 생태계 훼손

각종 규제·친환경차 주유소에 몰락 가속

“2040년까지 주유소 8000개 사라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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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후 매년 전국에서 약 160여개의 주유소가 사라지고 있다. 서울 시내의 한 폐업한 주유소 담장에 ‘사용중지중’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모습 [뉴시스]
2010년 이후 매년 전국에서 약 160여개의 주유소가 사라지고 있다. 서울 시내의 한 폐업한 주유소 담장에 ‘사용중지중’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모습 [뉴시스]

주유소는 한때 ‘부(富)의 상징’으로 불렸다. 주유소 1개를 설립하는 데 수억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많은 자금이 소요되지만 고정 고객을 확보하기 쉽고, 확실한 수익이 보장돼 자영업자들에게 주유소를 차리는 건 꿈같은 일이었다.

그랬던 주유소의 위상이 최근 180도로 바뀌었다. 과거와 달리 수익성이 떨어지자 주유소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줄어 들고 있다. ‘그래도 주유소인데’라고 믿었던 자영업자들 중 일부는 천문학적인 빚을 떠앉고 폐업을 택하고 있다. 비용 부담 때문에 철거가 이뤄지지 않는 주유소들은 ‘흉물’로 전락하고 있다.

주유소 위상의 하락은 주유소 개수 현황에서 알 수 있다. 2010년 1만3004개였던 주유소 개수는 매년 감소세를 기록, 올 8월 기준 1만546개까지 줄었다. 매년 전국에 약 160여개의 주유소가 사라진 것이다. 부의 상징이라고 불렸던 주유소가 몰락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업소당 영업익, 1억원→7400만원

주유소 시장 위축의 일차적인 원인으로 공급과잉이 꼽히고 있다. 1995년 주유소 간 거리 제한이 사라진 후 전국에 주유소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전문가는 국내 적정 주유소 개수를 8000개 안팎으로 분석했는데, 거리 제한 해제 후 전국에 1만개 이상의 주유소가 자리잡았다.

공급 과잉이 발생하자 주유소들 간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이 벌어졌다. 무료 세차, 사은품 증정, 할인 혜택 제공을 앞세워 고객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이때 경쟁에서 도태된 주유소들은 폐업의 길로 내몰렸다.

알뜰주유소는 주유소 시장의 쇠락을 더욱 부추겼다. 알뜰주유소가 각종 제도적 지원을 등에 업고 저렴한 가격으로 석유제품을 제공하자 주유소 전체 시장 생태계가 훼손된 것이다. 알뜰주유소는 2011년 이명박 정부때 탄생했다. 당시 고공행진하던 국제유가로 소비자가 휘발유 값에 부담을 느끼자 정부가 도입한 제도이다. 사실 정유제품 가격은 변동성이 큰 만큼 국제 정세 및 시황에 따라 언제든 내려갈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소비자 부담 완화를 이유로 제도 도입을 강행했다.

알뜰주유소는 일반주유소보다 ℓ당 60~80원 싸게 석유제품을 공급받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한국도로공사가 정유사로부터 공동구매 방식의 정유제품 최저가 입찰을 진행하면서 가능해졌다. 여기에다가 판매 장려금 성격의 추가 인센티브까지 제공되면서 알뜰주유소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더욱 커지게 됐다. 정부는 애초 알뜰주유소의 가격 경쟁력을 강화해 주유소 전반의 제품 가격 인하를 기대했다. 하지만 일반주유소 경쟁력만 낮아지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말았다.

김형건 강원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주유소에서 알뜰주유소 비중은 약 10%에 불과하지만, 저렴한 가격 때문에 석유제품 판매 비중은 20%대까지 상승한다”고 설명했다.

알뜰주유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감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정유사로부터 구매하는 의무 물량 50% 외 나머지 물량은 자율 조달이 가능해 구매처 추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유소 안전 점검을 수행하는 현장관리원이 없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산보고 의무화도 없어 제품 판매량을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자영 알뜰주유소 387곳 가운데 약 13%가 전산보고에 가입하지 않았다.

알뜰주유소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운동장이 형성되면서 일반주유소는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됐다. 특히 수익성이 대폭 하락했다. 2008년 1억원을 넘었던 주유소 업소당 영업이익은 2023년 7400만원까지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은 3.9%에서 1.7%로 줄었다.

김정훈 한국석유유통협회장은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지방과 수도권을 비교했을 때 지방 주유소 마진이 적은 만큼 알뜰주유소로 인해 지방 주유소들이 겪는 고통이 더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알뜰주유소가 단기적으로 소비자 가격 인하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가격 왜곡, 품질 저하, 유통망 붕괴 등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유소 성장 막는 규제는 ‘산 넘어 산’

각종 규제도 주유소 시장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주유소는 건축물 종류상 위험물 저장 및 처리시설에 해당돼 설립·운영·폐쇄 시 적용되는 규제가 너무 많다. 실제 주유소 1개를 세우기 위해선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법(이하 석대법)과 위험물안전관리법, 국토법, 주택법 등에서 규정한 각종 규제를 충족시켜야 한다.

우선 위험물 저장 시설로 지정된 만큼 주유소 땅에 설립이 가능한 시설은 제한적이다. 세차장, 휴게음식점 등은 주유소 땅에 세울 수 있지만, 임대 수요가 높은 시설은 입점이 불가능하다. 공중화장실 의무화 규정이 있어 공중화장실을 설치하지 않을 시 주유소를 세울 수 없다. 또 주유소 대지 면적이 200㎡ 이상일 경우 건축법에 따라 면적의 일정 비율 이상을 조경해야 한다.

운영 및 관리는 더더욱 까다롭다. 토양법에 근거해 토양오염 검사를 정기적으로 진행해야 하고, 주유소에는 위험물 안전관리자가 24시간 상주해야 한다. 야간에는 안전관리자와 상시 연락하면서 사고를 대비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법 개정 움직임은 미미하다. 안전관리자 24시간 상주 제도로 인해 주유소가 부담하는 인건비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주유소 운영에 부담을 느껴 폐업을 할려고 해도 쉽지 않다. 철거 공사 진행 시 인허가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폐업 시 충족해야 하는 토양정화 기준이 높아 업자들이 부담해야 할 토양정화 비용은 만만치 않다. 토양정화 비용, 철거비 등을 고려했을 때 주유소 1개를 폐업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만 수억원이 소요된다. 천문학적인 비용 때문에 폐업 신고를 하지 않은 채 사실상 문을 닫는 유령 주유소는 늘어나고 있다.

전기차로 대표되는 친환경차의 등장도 휘팔유를 판매하는 주유소에 악영향을 미쳤다. 국토교통부 자동차 등록통계에 따르면 8월말 기준 국내에 등록된 전기차는 82만2081대이다. 2020년 초 10만대를 넘어선 지 5년 만에 80만대 돌파에 성공했다. 최근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지만, 시장이 반등할 시 주유소를 찾는 고객은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서울 시내 한 알뜰주유소 모습  [뉴시스]
서울 시내 한 알뜰주유소 모습 [뉴시스]

“주유소 생태계 복원 위한 기금 필요”

업계에서는 전국 주유소 개수가 이른 시일에 1만개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알뜰주유소, 각종 규제 등 시장에 악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사라지지 않고 있어서다. 국책 연구 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은 2040년까지 사라질 주유소가 8000개에 달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주유소는 복합 에너지·문화 플랫폼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주유소 기능을 휘발유 공급에만 제한하지 않고 전기차 충전, 카페, 물류센터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변신은 정유사들이 직접 운영하는 직영 주유소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GS칼텍스는 2023년 서울 서초구 내곡주유소에 스마트MFC(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를 준공했다. 무인으로 운영되는 스마트MFC는 물품 입고·보관·출고까지 모두 자동으로 처리한다.

S-OIL은 2023년 BTS 데뷔 10주년을 맞아 서울 예술의전당 맞은편에 있는 전당앞주유소를 구도일&BTS 페스타 주유소로 탈바꿈했다. 구도일&BTS 페스타 주유소는 아미(BTS 팬덤)을 겨냥한 마케팅을 진행했다. HD현대오일뱅크는 2022년 서울 용산구에 게임 카트라이더 지식재산권(IP)를 활용한 파츠오일뱅크를 열었다. 파츠오일뱅크에는 카트라이더 카트를 연상하게 하는 모형차를 설치했다. 기존 사무공간은 굿즈샵으로 리모델링했다.

다만 정유사가 운영하는 직영 주유소 비중은 전체의 약 10%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정제마진 하락에 따른 수익성 악화 여파로 정유사들의 주유소 변신 시도는 예전보다 줄어들고 있다. 자영 주유소들은 비용 부담 때문에 쉽사리 변화를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주유소 시장의 쇠퇴를 막기 위해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알뜰주유소에 집중된 인센티브를 줄이고 주유소 전체 생태계 강화에 쓸 수 있는 기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훈 회장은 “기금을 통해 주유소 사업 다각화와 친환경 에너지 전환 지원 등이 이뤄진다면 시장 전반의 균형 발전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 완화도 해결책으로 꼽히고 있다. 주유소 내 다양한 시설이 입점해주는 것을 허용해 수익성을 키우고, 토양오염 정기검사 기준 등을 완화해 업자들의 부담을 줄어야 한다고 업계는 강조하고 있다. 김형건 교수는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주유소 규제가 엄격한 만큼, 주유소가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규제가 우선 해소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영대 기자


yeongdai@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