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간 관세협상 후속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우리 정부 당국자들의 발걸음이 빨라지면서,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EP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타결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주에 이어 다시 방미길에 올라 22일(현지시간)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만났다. 김 실장은 회동 뒤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며 “일부 진전이 있었다”고 밝혔다. 한국측의 3500억달러 대미 투자금의 현금 비율과 자금 공급 기간 등에 대해서 양측이 이견을 상당 부분 해소하고 있는 단계로 관측된다.

이에 따라 관세 합의가 이뤄지면 APEC 계기 한미정상회담에서 안보 관련 내용도 함께 발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른바 ‘안보 패키지’는 지난 8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강의 틀이 만들어졌지만, 관세 분야 최종 합의 미비로 발표가 미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은 “워싱턴 정상회담에서 잠정적으로 합의된 성과들이 많이 있는데, 통상 관련 양해각서(MOU)가 마무리되면 한꺼번에 대외적으로 발표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합의안엔 한국 국방비 증액, 미국산 무기 구매 확대,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유지 등과 함께 한국의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권한 확대를 골자로 한 한미 원자력협정 관련 내용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로선 핵의 평화적 이용과 원자력 에너지 주권 강화에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20%미만 저농축 우라늄은 원자력발전에 쓰이는 핵연료다. 사용 후엔 수조 등에 임시 저장되는데 우리 원전의 경우 대부분 저장률 80%를 넘겨 수년 안에 포화에 이른다. 재처리를 하게 되면 우라늄, 플루토늄을 뽑아내 다시 쓰고 저장 공간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2015년 재개정된 원자력협정에 따라 한국은 미국 동의가 있어야 20% 미만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고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는 금지돼 있다. 이는 고농축 우라늄과 재처리에서 뽑아낸 플루토늄이 핵무기에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원자력협정 개정과 관련해 “의미 있는 진전이 있다”며 “현재로서는 한국이 더 많은 농축 재처리에 대한 운신의 폭을 갖는 것에 서로 간 양해가 있다”고 했다. 이번 합의문엔 한국의 농축·재처리 규제 완화 방향과 양국간 논의 개시를 알리는 정도가 담길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농축과 재처리가 ‘원전 건설-핵연료 생산-폐기물 관리’의 주기를 완성하는 데 핵심이라는 점에서 우리 원전 산업과 에너지 주권에 매우 시급한 문제다. 정부는 이번 한미 협상을 원자력협정의 조기 개정을 위한 실질적인 계기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