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점포 거래액 3조 이상, 전 세계 4곳뿐
정유경 ‘큰 그림’…공간 혁신으로 1위 탈환
VIP 경험 극대화…국내 유일 미쉐린 협업도
프랑스 봉마르셰를 강남서…식품관 새 기준
[헤럴드경제=신현주 기자] 국내 첫 ‘연 거래액 4조원’ 백화점이 탄생할 수 있을까.
고물가로 인한 소비 침체에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 ‘신기록’을 세웠다. 올해 연간 거래액 3조원 돌파는 최단 기록이다. 2023년(12월 24일)보다 두 달, 2024년(11월 28일)보다 3주 앞당겼다. 1년을 기준으로 1초에 23만원씩 판매한 셈이다.
전 세계 백화점 업계에서도 성과는 두드러진다. 신세계백화점의 거래액 기록은 전 세계에서 세 번째다. 롯데백화점 잠실점이 지난해 거래액 3조551억원을 돌파하며 네 번째 기록을 세웠다. 백화점 단일 점포 거래액이 3조원을 넘는 해외 매장은 영국 해러즈 런던, 일본 이세탄 신주쿠점 정도다. 지난해 매출은 각각 4조8000억원, 4조3000억원이다. 해러즈 런던은 영국 왕실 및 귀족들의 각종 생필품을 공급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일본 이세탄 신주쿠점은 전 세계 1위 백화점으로 불린다.
개점 10년…‘1조 클럽’에서 국내 1위 탈환까지
신세계백화점이 시작부터 국내 1위는 아니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1조 클럽’에 입성한 곳은 롯데백화점 본점이다. 2002년 달성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2000년 개점 후 2010년 연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2017년에는 롯데백화점 본점의 매출을 제쳤다. 2017년 당시 매출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 1조6621억원, 롯데백화점 본점이 1조6410억원이었다. 이후 2019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국내 최초 첫 ‘2조원 점포’가 됐다. 4년 만인 2023년에서야 연 거래액 3조원의 벽을 뚫었다.
매출 신장의 가장 큰 요인은 ‘리뉴얼’과 ‘리더십’이다. 정유경 회장이 지난 2015년 총괄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2016년 신관 리뉴얼 공사를 시작했다. 그 결과 2017년 ‘거래액 1위’를 탈환했다. 신세계백화점의 올해 1~10월 매출은 리뉴얼 완공 이전(2023년)과 비교해 21.2%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강남점 구매 고객 수는 30% 늘었다.
리뉴얼의 핵심은 두 가지다. 수준 높은 명품 브랜드 선점과 F&B(식음료)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현재 남성, 여성, 뷰티, 슈즈, 주얼리, 키즈라인 등 세분된 형태로 100여개의 명품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구찌, 디올 등이 대표적이다. 롤렉스, 파텍 필립과 함께 스위스 명품 시계 ‘빅3’로 꼽히는 오데마 피게의 국내 유일 매장도 입점했다. 또 프랑스 명품 브랜드 디올의 아동복 라인인 ‘베이비 디올’ 매장을 국내 최초로 선보였고, 지난해에는 루이비통 주얼리 전문 매장을 열었다. 프랑스와 일본에 이어 전 세계 3번째 매장이다.
‘최초’ 아니면 ‘단독’…명품으로 무장한 공간
명품 전략의 효과는 엄청났다. VIP 매출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신기록’을 견인했다. VIP가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올해 처음으로 절반(52%)을 넘겼다.
전년 대비 VIP 고객 수 신장률을 살펴보면 2021년 코로나19 여파로 8.3% 감소했지만, 이후 꾸준히 증가했다. 2022년 4.1%, 2023년 10.8%, 2024년 5.3%을 기록했다. 2023년에는 실내 마스크 착용 해제와 엔데믹 영향으로 ‘보복 소비’가 이뤄졌다. 고객 수도 급격히 증가했다. 올해 11월 초 기준 전년 대비 VIP 고객 수 신장률은 8.5%에 달한다.
VIP 고객은 백화점의 ‘꽃’으로 불린다. VIP 고객에게 주어지는 회원권 하나로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어서다. VIP 고객은 등급에 따라 발렛 주차와 라운지 이용권 등 간단한 서비스부터 컨시어지 서비스, 퍼스널 쇼퍼 등 개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VIP 고객이 일반 마트나 아웃렛이 아닌 백화점을 찾는 이유다. 특별하고 누구나 경험하지 못하는 ‘특권’을 선사하는 것이 백화점의 차별점이 됐다는 의미다. 신세계백화점은 2022년 강남점의 컨시어지와 퍼스널쇼퍼의 역할을 분리하고, 퍼스널쇼퍼 인력을 기존보다 두 배 이상 확충했다.
VIP 고객을 위한 이색 이벤트도 눈길을 끈다. 지난 9월에는 국내 유일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인 ‘밍글스’에서 VIP 대상 ‘포핸즈 다이닝’ 행사를 열었다. 포핸즈 다이닝은 두 명의 미쉐린 셰프가 4개의 손으로 최고의 만찬을 차렸다는 뜻이다. 이번 행사는 블랙다이아몬드 이상(연간 구매금액 1억2000만원 이상) 고객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모집 시작 10초 만에 완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현재 미쉐린 가이드와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한 국내 백화점은 신세계백화점이 유일하다.
신세계백화점은 VIP 제도에도 차별화를 꾀했다. 국내 백화점 빅3(롯데·신세계·현대) 중 가장 폭넓은 산정 기준을 지니고 있다. VIP 등급이 5개~6개인 롯데·현대백화점과 달리 신세계백화점은 8개 등급을 운영하고 있다. 구매 금액 상위 999명인 ‘트리니티’부터 연간 구매액 500만원 이상의 ‘레드’ 등급까지다. 다른 백화점이 연간 구매액 ‘1000만원’을 최소 기준으로 잡는 것과 대비된다. 더 적은 금액으로 VIP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소비자 입장의 만족감이 크다는 평이다. 가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가 예물 반지와 가구·가전 일부를 신세계백화점에서 구매한다면 VIP 고객이 될 수도 있다.
명품 소비도 꾸준히 늘고 있다. 올해 VIP 고객이 가장 많이 구매한 카테고리는 명품 주얼리·워치였다. 신세계백화점은 올해 VIP 고객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주얼리·워치 행사를 진행 중이다. 관련 매출은 10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 증가했다. 소비가 줄어도 이른바 ‘큰 손’을 향한 백화점의 구애가 계속되는 이유다.
백화점 F&B의 ‘신세계’…VIP 넘어 대중 품다
신세계백화점의 리뉴얼은 VIP 고객만 겨냥하지 않았다. 그 시작은 F&B였다. 백화점 업계에서 F&B는 ‘최소한의 금액으로 최대의 만족을 주는 분야’다. 실제 F&B는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지 않다. 그러나 집객과 연계 소비 효과는 매우 크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2000년 개점 이래 식품관을 둘러싼 실험을 이어왔다. 2000년 전문 테이크아웃 델리 전문관을 국내에서 처음 도입한 데 이어 2009년에는 800평 규모의 식품관을 체험형 식품매장으로 재탄생시켰다.
최근 리뉴얼을 거쳐 강남점 식품관은 총 6000평 규모가 됐다. 지난해 선보인 ‘스위트파크’와 프리미엄 푸드홀 ‘하우스 오브 신세계’는 신세계백화점을 ‘핫플’로 만들었다. 올해 2월과 8월에는 각각 ‘신세계 마켓’과 ‘델리 전문관’을 차례로 선보였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디저트 매출은 스위트파크 개점 이후 3개월 만에 전년 동기 대비 160% 급증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F&B는 ‘장보기 채널’ 역할도 한다. 신세계 마켓과 델리 전문관을 통해서다. 신세계 마켓은 특히 파리 봉마르셰 백화점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1852년에 개장한 세계 최초 백화점인 봉마르셰 백화점은 식품관으로 유명하다. 신세계 마켓은 국내 최초로 수산 코너에 유리잔 쇼케이스를 도입해 비린내를 최소화했다. 이는 파리 백화점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국내 백화점에서는 최초 사례다. 이 밖에도 파리 백화점에서나 볼 수 있던 꿀 전용 진열대를 마련하거나 코코 샤넬의 단골 카페였던 파리 ‘안젤리나 카페’의 밤잼과 캬라멜 등을 판매하는 등 차별화를 꾀했다.
입체적인 공간 전략은 인근 상권과 맞물려 시너지를 냈다. 경쟁 기업의 주력 매장이 명동, 여의도, 잠실 등 오피스 밀집 지역에 있는 것과 달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아파트에 둘러싸인 특수한 상권이다. 고속터미널역과 연결돼 관광객이 많이 찾지만, ‘강남 주부’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장보기 채널로 자리를 잡으면 자연스럽게 단골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도가 깔렸다. 신반포 메이플자이, 반포 트리니원 등 강남 인근 지역의 신축 아파트 입주가 예정됐다는 점도 호재다. 신세계백화점이 내년 ‘4조 클럽’ 달성을 강조하는 배경이다.
신세계백화점은 강남점을 ‘공간 혁신’의 모델로 삼았다. 스위트파크를 대구점에 접목하고, 대전 Art & Science에 루이비통을 입점시키는 등 혁신을 전하는 방식이다. 성공 방정식을 지방 매장에 대입해 전체 수익을 끌어가겠다는 안목이 돋보인다.
유통업계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성공이 온라인 시대에도 오프라인 채널이 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신세계백화점을 시작으로 롯데백화점도 리뉴얼에 나섰고, 현대백화점도 지방 출점을 강화하고 있다”며 “경험을 기반으로 한 공간 활용이 매출 증대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newk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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