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명목실효환율, 작년 말 85선까지 낮아져

2012년 유럽 재정위기 당시 수준으로 후퇴

역대 연말 기준 14년 만에 최저치 기록 전망도

실질실효환율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과 비슷

고환율에 중기 10곳 中 4곳 피해 “원자재비 상승”

체감 물가도 5년 연속 소비자물가 상승률 웃돌아

서울 중구 명동 하나은행에서 한 직원이 달러를 살펴보고 있다. [헤럴드DB]
서울 중구 명동 하나은행에서 한 직원이 달러를 살펴보고 있다. [헤럴드DB]

[헤럴드경제=유혜림 기자] 1400원대 환율이 ‘뉴노멀’로 정착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지난해 원화의 가치를 보여주는 실효 환율이 14년 만에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실효환율이 내려가면서 석유류 등 필수 수입품 물가에도 부담이 커지고 있다. 올해 첫 통화정책방향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고환율이 핵심 관건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명목실효환율, 2012년 유럽 재정위기 수준으로 후퇴

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제결제은행(BIS)이 발표하는 원화의 명목 실효 환율 지수는 작년 12월 19일 기준으로 85.21를 나타냈다. 10년 전(98.53)과 비교하면 13.3포인트 떨어졌다. 원/달러 환율이 1480원에 육박했던 작년 12월 17일엔 연중 최저치(85.08)를 찍으면서 85선을 내줄 뻔했다. 이는 그리스발(發) 유럽 재정 위기 우려로 환율이 치솟았던 2012년 5월 28일(85.08)과 같은 수준이다.

원화 명목실효 환율이 떨어졌다는 것은 우리 것은 싸게 팔고 외국 것은 비싸게 사게 된다는 의미다. 명목실효환율은 원화 가치를 주요 교역상대국과의 무역 비중을 고려해 가중평균한 값으로, 금통위원들이 통방에 사용하는 주요 환율 지표 가운데 하나다. 기준선은 100(2020년=100)으로 100을 넘기면 교역국들 대비 고평가(원화강세), 100을 못 넘기면 저평가(원화약세) 됐다는 얘기다.

명목실효환율은 12·3 비상계엄 당시만 해도 92선을 웃돌다가 작년 4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과 관세전쟁 발발로 87.65(4월 9일 당시 환율 1484.1원)까지 내렸다. 이후 작년 5월부터 9월 중순까지 90선을 웃돌면서 회복세를 보였지만 다시 낙폭을 키우며 80선으로 떨어진 상태다. 작년 말 외환당국의 구두개입으로 원/달러 환율이 가까스로 1439원으로 안정됐지만 90대를 되찾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14년 만에 최저치 기록 전망도…“수입물가 상승 압력 우려”

지난해 명목실효환율이 1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연말 명목실효환율이 85대로 진입한 건 2011년(85.9) 이후로 처음이다. 최근 5년 동안 수치를 살펴보면 2020년(103.61)을 기점으로 ▷2021년(97.31) ▷2022년(98.32) ▷2023년(96.87) ▷2024년(89.26)으로 내리막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최근 보고서에서 “2025년 한국의 명목실효환율은 2012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마칠 가능성이 높다”며 “한국 정부의 원화 방어 발언이 강화됐지만 원화 약세는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물가상승률까지 고려한 실효환율인 실질실효환율 역시 저평가 수준이 심하다. 월별로 공개되는 한국의 실질실효환율은 작년 11월 말 기준 87.05(2020년=100)로 집계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월 말(85.47) 이후 최저치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1월 말(86.63) 수준과도 비슷하다. 지난달 JP모건체이스는 보고서에서 “원화의 실효 환율이 추가로 절하될 경우 수입 가격 상승을 통해 물가에 상방 압력을 가할 위험이 존재한다”고 진단한 바 있다.

고환율, 가계·기업 부담 동시 압박

실제 1400원대 고환율은 수입 물가를 밀어 올리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작년 1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3% 상승했다.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월(2.1%) 이후 4개월 연속으로 2%대를 기록하는 중이다. 석유류 가격이 6.1% 뛰며 물가 오름세를 끌어올렸다. 특히 경유(10.8%)와 휘발유(5.7%) 가격 상승이 두드러졌다.

소비자들이 생활 현장에서 느끼는 물가 부담은 더 크다. 작년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2.4% 상승해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2.1%)보다 0.3%포인트 높았다. 생활물가지수가 소비자물가지수보다 높은 상승률을 보이는 것은 소비자가 일상적으로 자주 구매하는 품목의 가격 상승 부담이 더 크다는 뜻이다. 생활물가지수는 구입 빈도와 지출 비중이 높은 144개 품목을 중심으로 집계된다.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도 고환율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환변동 관련 중소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수출과 수입을 병행하는 중소기업 10곳 중 4곳(40.7%)이 환율 급등에 따른 피해를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고환율로 인한 피해 유형(복수응답)으로는 수입 원·부자재 가격 상승이 81.6%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환율 상승에 따른 수입 원재료 비용이 전년 대비 ‘6~10% 상승했다’는 응답(37.3%)이 가장 많았다.

실질실효환율 하락이 수출 기업에 유리하다는 기존의 시장 공식도 통하지 않고 있다. 중기중앙회는 “환율 상승이 더 이상 수출기업의 이익으로 직결되지 않고, 원자재를 수입해 가공·수출하는 중소기업에 경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실질실효환율이 10% 내려갈 경우 국내 제조기업의 영업이익률은 오히려 0.46%포인트 낮아진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고환율, 통화정책의 핵심 변수로

한은 역시 고환율 움직임을 주시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일 한은 시무식 직후 기자실을 찾아 2주 앞으로 다가온 1월 금통위에 중점을 두는 요인에 대해 “(현재로서는) 환율”이라고 답했다. 또 “아무것도, 어느 방향으로도 결정된 게 없다”면서 “금통위 회의 3∼4일 전까지도 데이터를 보고 금통위원들과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앞서 신년사에서도 “높은 환율 수준이 지속될 경우 물가 상승 압력이 다시 커질 수 있다“며 “입수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내외 리스크(위험) 요인들의 전개 양상과 그에 따른 경제 흐름 변화를 면밀히 점검하며 금리 인하 속도를 유연하게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첫 통화정책방향을 결정하는 금통위는 이달 15일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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