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도 은퇴설계전문가·전 농협중앙회 교육원 교수
박상도 은퇴설계전문가·전 농협중앙회 교육원 교수

우리는 오랫동안 젊음을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여겨왔다. 매끈한 피부와 탄력 있는 몸, 활기찬 걸음걸이와 생기 넘치는 얼굴이 아름다움의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되곤 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자신감을 잃기도 한다. 거울 속에 늘어난 주름을 바라보며 세월이 남긴 흔적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을 조금 더 살아보니 나는 이제 생각이 달라졌다. 아름다움에는 젊음만이 아닌 또 다른 얼굴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세월이 만들어내는 품격이다.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담긴다. 웃으며 지냈던 날들, 마음을 다해 누군가를 사랑했던 순간들, 때로는 견디고 버텨야 했던 시간들까지 모두가 얼굴에 깊이를 만든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사람의 표정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따뜻함과 여유가 깃든다. 젊음이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라면, 품격은 삶이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인지도 모른다.

나는 50대 중반에 들어서 시니어 모델이라는 새로운 길을 걷게 되었다. 처음 런웨이에 서던 날의 긴장과 설렘을 아직도 기억한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걸음을 내딛는 순간, 마음 한편에서는 ‘내가 이 무대에 어울릴까’ 하는 질문이 스쳐 지나갔다. 대부분의 모델들이 젊은 나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번의 무대를 경험하며 나는 깨달았다. 런웨이는 젊음을 겨루는 곳이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곳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젊은 모델에게는 젊음이 주는 당당한 에너지가 있다. 반면 나이가 든 모델에게는 세월이 만들어낸 깊이와 여유가 있다. 그 차이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아름다움의 형태일 뿐이다. 세월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빼앗아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또 다른 것을 선물한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마음,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는 넓은 시선이 그것이다.

우리는 종종 나이를 감추려고 애쓴다. 주름을 지우고 흰머리를 가리며 가능한 한 젊어 보이기를 바란다. 물론 자신을 가꾸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나이를 지우려 애쓰기보다 그 시간을 품고 살아가는 태도 또한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월은 부끄러워할 대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증명하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은퇴 이후에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여행을 떠나고, 배우고 싶었던 공부를 시작하고, 새로운 일을 찾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글을 쓰며 또 다른 삶의 장을 펼쳐 나간다. 나 역시 모델 활동을 통해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세상을 만나고 있다. 나이가 삶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출발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느끼는 중이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흐른다. 그러나 그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표정은 달라진다. 누군가는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작게 만들고, 또 누군가는 나이가 들수록 더 당당해진다. 결국 사람을 빛나게 하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나는 이제 젊음을 부러워하기보다 나답게 나이 들어가는 삶을 선택하고 싶다. 거울 속에 남은 시간의 흔적을 지우려 하기보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소중히 바라보고 싶다. 어쩌면 진짜 아름다움은 젊음이 아니라 세월 속에서 단단해진 마음, 그리고 삶을 품는 태도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필자는 생각한다. 젊음은 언젠가 지나가지만 품격은 남는다. 그리고 그 품격이야말로 시간이 우리에게 남겨주는 가장 깊고도 아름다운 선물일 것이다.

박상도 은퇴설계전문가·전 농협중앙회 교육원 교수


yjc@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