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보안·강남 접근성 갖춘 서판교 운중동
재계·연예계가 선택한 ‘한국판 베버리힐즈’
[헤럴드경제=윤성현] ‘금쟁반에 옥구슬이 굴러다니는 명당’
대한민국 최고 주거지를 따질 때 입지, 단지 규모, 브랜드, 품질, 조망, 교통 등 여러 요소가 거론된다. 하지만 초고가 주택 시장에서 진짜 자산가들이 빠뜨리지 않고 보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풍수다.
그래서일까. 부호들의 주거지는 남다른 면이 있다. 유명 배우와 경영인, 그리고 운동선수들이 사는 고급 주택이 밀집한 서판교는 일부 단지가 분양 당시 아예 풍수 보고서를 활용했다. 판교동과 운중동을 일컫는 서판교는 고층 업무시설과 아파트 숲이 밀집한 판교역 주변 동판교와 달리 고급 단독주택과 타운하우스 단지가 밀집돼 베벌리힐스 같은 해외 부촌 느낌을 주는 곳이다.
실제 이곳의 최고급 타운하우스 단지를 조성하며 풍수보고서를 낸 산운 아펠바운과 운중 아펠바움은 분양 당시 이 일대를 부귀와 인재를 배출하는 명당으로 소개했다. 판교는 앞서 밝힌 ‘금쟁반에 옥구슬이 굴러다니는 명당’이라는 표현했고, 이 중 운중동 일대는 학문, 인재, 명예, 부귀가 계속되는 ‘선인독서형(仙人讀書形)’의 명당으로 소개됐다.
서판교 지역 부동산 관계자는 “실제로 풍수를 이유로 주택 구매를 문의하는 사람이 적잖다”며 “고급 주택 수요자들은 집이 어디에 앉아 있는지, 주변에 어떤 산과 물이 있는지, 외부 시선에서 얼마나 자유로운지까지 종합적으로 본다”고 했다.
“서판교 고급 주택시장은 일반 아파트 시장처럼 단기간에 거래가 몰리거나 가격이 출렁이는 곳이 아닙니다. 하지만 한 번 들어온 사람은 좀처럼 나가지 않습니다. 강남 접근성은 그대로 누리면서도, 집 안에서는 철저히 외부와 분리된 삶을 살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말 그대로 조용한 부자들의 마을이죠.”
14년 전 분양가가 최고 80억…‘풍수설계’ 도입한 산운 아펠바움
서판교 고급 주택지를 상징하는 단지는 단연 산운 아펠바움이다. 2012년 SK건설이 판교신도시 산운마을 일대 1만9146㎡ 부지에 준공한 최고급 단독주택형 단지로, 전체 가구 수는 34가구에 불과하다. 세대별 대지면적은 330~596㎡, 전용면적은 176~310㎡ 수준이다.
분양가는 30억원 후반대에서 최고 80억원에 달했다. 당시 아파트와 빌라, 단독주택을 통틀어 국내 최고가 수준이다. 특히 이 부지는 LH가 판교신도시에서 유일하게 ‘고급단독주택지’라는 이름으로 공급한 땅으로, 2008년 공급 당시 39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산운 아펠바움은 단독주택의 약점인 보안과 관리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국내 최초 수준의 단독주택형 ‘게이티드 하우스’ 개념을 도입한 점도 특징이다. 외부인과 외부 차량 출입을 통제하고, 입주민의 독립성과 사생활 보호를 극대화한 고급 주거단지로 설계됐다. 세계적 건축가 짐 올슨이 설계를 맡았고, 배대용 B&A 소장이 인테리어를,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 회장이 풍수 설계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서판교 운중동 일대는 풍수지리학적으로 ‘배산임수(背山臨水)’ 입지로 평가된다. 뒤로는 청계산과 국사봉, 금토산 자락을 등지고, 앞으로는 운중천이 흐른다.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구조는 전통적으로 안정과 번영을 상징하는 길지로 여겨진다.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산세와 물길을 함께 품은 땅이라는 점이 서판교가 고급 주거지로 주목받은 배경이다.
법원 등기부등본 등을 확인한 결과 산운 아펠바움에는 코로나19바이러스 진단 키트로 주목받은 씨젠의 천경준 회장을 비롯해 배중호 국순당 회장, 김병관 웹젠 고문 등이 주택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NHN게임스 대표와 분당갑 국회의원을 지낸 김 고문은 판교 IT업계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강남 수요 흡수하려 만든 판교…서쪽 ‘저밀도 부촌’은 청담 뺨친다
판교가 지금의 위상을 갖게 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과거 판교 일대는 분당과 용인이 개발되는 동안 상대적으로 주목에서 비켜나 있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2001년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되고, 2004년 10월 택지조성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서울 강남권 주택 수요를 분산하기 위한 신도시라는 점에서 출발부터 부유층과 실수요자의 관심이 집중됐다.
동판교는 안랩, 엔씨소프트 등 국내 대표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자리 잡은 판교테크노밸리와 맞물려 빠르게 성장했다. 일자리와 교통, 상업시설이 결합하며 판교 아파트 가격은 최근 1~2년 사이에도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하지만 그 열기와는 다른 방향으로 서판교도 조용히 몸값을 키워왔다. 동판교가 생활 인프라와 업무 접근성을 앞세워 대중적 선호를 얻었다면, 서판교는 희소성과 은둔성, 자연환경을 앞세워 자산가들의 선택을 받았다.
서판교는 한적하면서도 외따로 떨어져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강남과 판교 업무지구를 모두 손쉽게 오갈 수 있다. 서판교IC와 판교IC를 통해 경부고속도로 접근이 쉽고, 차량을 이용하면 강남권까지 20~30분대 이동이 가능하다. 동시에 청계산과 국사봉, 금토산 자락, 운중천을 끼고 있어 도심 아파트에서는 누리기 어려운 녹지와 개방감을 확보했다.
국제현상설계 공모 거친 명품 동네…박인비, 권상우 등 유명인사 보금자리
월든힐스 역시 서판교 고급 주거지의 존재감을 알린 대표 단지다. 경기 성남 판교신도시에 들어선 연립형 고급 타운하우스로, 3개 블록에 전용 109~231㎡ 중대형 300가구 규모로 조성됐다. 분양가는 3.3㎡당 1880만~2010만원 수준이었다.
특히 국제현상설계 공모를 통해 1블록은 핀란드 건축가 페카 헬린, 2블록은 일본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 3블록은 미국 건축가 마크 맥이 설계를 맡았다. 3개 블록에 걸쳐 32개의 독특한 평면 구조가 적용되며 ‘한국판 베벌리힐스’로 불린 서판교 고급 주택지의 이미지를 굳혔다.
월든힐스에는 배우 김보성과 골프선수 박인비가, 운중동 끝자락 고급 빌라 르씨트 빌모트에는 배우 권상우가 자택을 소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인근 백현동·하산운동·대장동 일대까지 넓히면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김범수 카카오 총수, 구자열 LS그룹 회장 등 재계 인사들도 서판교 일대에 거주 중이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서판교 고급 주택은 15억원대부터 70억원 이상, 일부 초고가 단독주택은 100억원을 웃도는 수준까지 다양하다”며 “아파트처럼 평형별 시세표로 설명하기 어려운 시장”이라고 말했다.
산운 아펠바움처럼 30여가구에 불과한 단지는 매물이 거의 나오지 않아 실거래도 사실상 드물다. 다만 현재 온라인상에서는 연면적 419.83㎡(약 127평) 규모 매물이 105억원대에 올라와 있다. 월든힐스 역시 거래 빈도는 낮지만, 지난 5월 전용 60평대 매물이 33억원에 거래되는 등 일정 수준 이상의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부동산 관계자들은 서판교를 수요가 좁지만 단단한 시장으로 본다. 대중적 수요가 몰리는 곳은 아니지만, 원하는 사람은 분명하고 대체재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넓은 대지와 독립적 주거, 강한 보안, 강남 접근성, 녹지 환경을 모두 갖춘 지역은 수도권에서도 흔치 않다.
판교 운중동에서 고급 주택을 주로 중개하는 박기숙 좋은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서판교는 편의시설과 교통망이 촘촘하게 짜인 동판교와는 다른 시장”이라며 “오히려 도심의 밀도를 비켜난 듯한 고요한 분위기, 넓은 필지와 낮은 주거 밀도, 풍부한 녹지가 고액 자산가들이 선호하는 주거 취향과 맞물렸다”고 말했다.
이어 “수요층 자체가 두껍지 않은 만큼 단기간에 가격이 급등하거나 거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장은 아니다”라면서도 “이제는 신흥 고급 주거지로서 정체성이 자리잡아, 장기적으로는 프리미엄 주거지로서의 위상이 더 단단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qu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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