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의 미국주식예탁증서(ADR)의 상장(현지시간 10일) 공모가가 149달러로 확정됐다. ADR 발행 규모는 1억7790만주(한국 보통주 기준 1779만주)로, SK하이닉스는 이번 공모를 통해 265억700만달러(약 40조원)를 조달할 수 있게 됐다. 미 기업공개(IPO) 사상 비(非)미국기업으로는 중국 알리바바(250억달러)를 넘어 역대 최대 규모, 전체 기준으로는 스페이스X(857억달러)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글로벌 대형 기관투자가들의 수요가 대거 몰려 공모물량의 7배가 넘는 청약경쟁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더구나 ADR 1주는 한국 보통주 10분의 1에 해당하는데 이를 기준으로 환산한 공모가는 전날 한국 증시에서 거래된 SK하이닉스 보통주 종가 218만6000원보다 약 2.9% 높은 수준이다. 투자자 확보를 위해 기존 주가보다 할인한 가격으로 공모를 진행하는 관례를 깨고, 더 높은 가격이 설정된 ‘프리미엄 프라이싱’에도 성공했다.
우리 기업의 세계적 위상을 확인한 기념비적 사건이자 한국 경제와 산업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다. SK하이닉스가 단순한 한국의 메모리반도체 제조사를 넘어 인공지능(AI) 시대 핵심 주자이자 주도기업으로 실적과 성장성을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공인받았다는 의미다. 첨단 기술 AI생태계에서 한국산 메모리의 전략적 가치를 재확인시킨 일이기도 하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상장으로 대규모의 새로운 시설투자 조달 자금도 얻게 됐다.
하지만 한국 대표 기업의 미 증시 상장은 우리 업계와 자본시장엔 ‘양날의 칼’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주주 권리보호가 강력하고 공시 의무나 회계·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기준이 엄격한 미 증시의 냉혹한 평가에 그대로 노출된다. 미 정부의 반도체 공급망 정책과 대중국 규제, 미국 내 생산시설 투자 압박도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미 기업인 마이크론과는 ‘적지’에서 더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마이크론은 9일 2500억달러(약 375조원)의 미국 내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이날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 장관은 한국 메모리기업들의 미국 내 입지 확대를 마이크론이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미국으로 불러와 생산시설을 짓게 하고 싶다”고 했다.
이제 투자자들은 달러와 원화로 각각 표시되는 한국 대표 기업의 주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게 됐다.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 UBS는 SK하이닉스 주식을 한국 말고 미국에서 사라는 리포트를 냈다. 우리 자본시장으로선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기업 저평가)’와 유동성 수급 리스크 극복이라는 과제가 한층 가중됐다는 의미다. 우리 기업과 자본시장이 명실상부한 글로벌 표준이자 리더로서 통과해야 하는 가장 가혹한 시험대에 들어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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