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관세 막히자 무역법 301조로 우회…법적 리스크 줄이기 계산
‘과잉생산 관세’도 예고…한국, 대미 협상으로 15% 상한 지켜야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강제노동’을 명분으로 60개 국가·경제권에 새로운 관세를 부과한 것은 사실상 법원에서 제동이 걸린 상호관세를 대체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삼아 법적 리스크를 줄이는 동시에 관세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3일(현지시간)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한국을 비롯한 60개 국가·경제권에 10~12.5%의 이른바 ‘강제노동 관세’를 확정했다.
USTR은 이들 국가가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의 수입을 충분히 차단하지 못해 미국의 무역에 피해를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워싱턴 안팎에서는 이번 조치가 강제노동 규제보다 상호관세를 대신할 새로운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앞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한 국가별 상호관세에 대해 위법 판단을 내렸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최장 150일간 적용 가능한 무역법 122조의 ‘10% 글로벌 관세’를 한시적으로 시행한 뒤, 만료 직전 무역법 301조를 활용한 강제노동 관세를 확정해 관세 공백을 없앴다.
1974년 제정된 무역법 301조는 외국 정부의 불공정하거나 차별적인 무역 관행에 대응해 미국 정부가 추가 관세 등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근무했던 피터 해럴 전 백악관 당국자는 뉴욕타임스(NYT)에 “USTR은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관세를 부과하기 위해 강제노동 조사를 구실로 활용하고 있다”며 “강제노동은 명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 때보다 소송에 덜 취약한 법적 근거를 선택했다며, 가능한 모든 통상 권한을 동원하려는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관세 부과 논리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제사회에서 오랫동안 강제노동 문제가 제기된 중국에도 한국·일본·스위스와 같은 12.5% 수준의 관세를 적용한 것은 강제노동 대응이 정책의 핵심 목적이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USTR은 지난 3월 강제노동과 함께 ‘과잉생산’에 대한 301조 조사도 착수했으며, 과잉생산 관세도 조만간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두 조사 모두 대상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에는 1930년 관세법 338조를 근거로 캐나다에 50% 추가 관세를 부과했고, 무역확장법 232조를 활용한 품목별 관세 조사도 확대하고 있다. 법원이 제동을 걸더라도 다른 법률을 활용해 관세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이란과의 군사적 긴장이 다시 고조되는 상황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정책을 대표 경제 공약으로 유지하고 있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전날 상원 금융위원회에서 “행정부가 사용하는 법적 권한은 바뀌었지만 무역 전략은 바뀌지 않았다”며 “우리는 계속 관세를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중동 긴장으로 유가와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진 상황에서 추가 관세는 미국 소비자 부담을 높여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국은 일단 예상 수준인 12.5%의 강제노동 관세를 적용받으며 1차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앞으로 과잉생산 관세가 추가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한미 무역협의를 통해 양국이 합의한 대미 관세 상한인 15%를 유지하는 것이 당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sj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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