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샌프란시스코의 저녁 식탁은 화기애애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우리는 식구다”를 외치며 건배했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샘 올트먼과 다리오 아모데이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SK그룹과 엔비디아는 향후 5년간 7500억 달러 규모의 메모리 장기공급계약을 맺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브로드컴과 첨단 패키징 협력을 논의했으며, 국내 기업이 미국 빅테크와 손잡은 반도체 협력 규모는 다 합쳐 9500억 달러에 이른다. 확정된 장기 수요가 만들어지면 그동안 메모리 산업을 괴롭혀 온 ‘업다운 사이클’의 진폭 자체를 줄일 수 있다는 기대도 뒤따랐다. 누가 봐도 장밋빛 청사진이었다. 그런데 정작 주가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6월 22일 사상 최고치를 찍은 뒤 20%를 넘게 무너져 기술적 약세장에 들어섰고, SK하이닉스는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한 당일에도 급락해 120만원대까지 흘러 내려 고점 300만원 대비 60% 가까이 빠졌다. 한 달여 만에 증발한 시가총액이 4700억 달러라니 깜짝 놀랄만하다. 전 세계 상장사 중 감소 폭이 가장 컸던 곳이 스페이스X 하나뿐이었다니 그 낙폭을 짐작할 만하다. 심리적 호재는 화려했지만, 하락 사이클의 관성을 막지는 못했다. 실제로 SK하이닉스가 실적을 발표한 날 코스피는 장중 5200선 대까지 밀려 서킷브레이크가 발동됐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뒤섞여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지금, 반도체 슈퍼 사이클은 언제까지 갈 것인가를 냉정하게 짚어볼 때다.
첫째, SK하이닉스 영업이익률의 불편한 진실
SK하이닉스는 2분기 매출 79조3000억원, 영업이익 60조3000억원, 영업이익률 76%대라는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그런데도 주가는 발표 직후 무너졌다. 컨센서스를 밑돌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시장이 던진 질문은 따로 있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마이크론보다 시장점유율이 훨씬 높은데, 왜 영업이익률은 마이크론(2026회계연도 3분기 기준 80%대)보다 낮은가.”점유율 우위가 곧 수익성 우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이 불편한 진실이 밸류에이션의 논리를 흔들었다. 원인은 구조에 있다. 국내 기업은 대규모 신규 팹 투자에 따른 감가상각과 인건비, 법인세 부담이 크고 회계연도 기준의 차이도 존재한다. 반면 마이크론은 상대적으로 몸집이 가볍게 고부가 제품 비중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낸드 플래시 쪽도 사정은 비슷하다. 샌디스크와 일본 키옥시아가 낸드 가격 급등의 수혜를 함께 누리면서도 주가는 오히려 조정을 크게 받는 모습을 보였다. 산이 높으니 골도 깊은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낸드 업황이 좋다는 뉴스와 낸드 관련주가 빠진다는 시세가 동시에 존재하는, 언뜻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 장면 역시 결국 같은 질문으로 수렴한다. D램이나 낸드 가격을 두고 지금 이들 회사의 이익률이 다음 분기, 다음 해에도 그대로 유지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결정적인 신호가 하나 더 있다. 애플이 중국 판매용 기기에 창신메모리(CXMT) D램 탑재를 검토하며 미국 정부에 승인을 요청하는 로비를 벌이고, 양쯔메모리(YMTC)와도 낸드 조달을 협상 중이라는 소식이다. CXMT는 세계 4위 D램 업체로 이미 성장했고, 애플이 이 회사를 정식 공급망에 편입하려는 움직임은 단순한 가격 협상용 카드를 넘어선다. 세계 최대 고객이 기존 3사의 과점적 가격 결정력에 균열을 낼 대안을 공개적으로 찾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CXMT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보다 오히려 비싼 값을 부르며 배짱을 튕겼다는 소식도 들린다. 협상 카드로서의 효용은 있어도 당장 가격 인하로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반증이다. 그럼에도 시장이 이 뉴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과점 구조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초과이익은 영원하지 않다는 냉정한 경고로 읽히기 때문이다.
둘째, 공급과잉의 그림자는 필연적
3분기가 메모리 업황의 ‘꼭지’라는 피크아웃설도 주가를 짓눌렀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나란히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이익률을 내놓자, 역설적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라는 정점 통과 우려가 고개를 들었다. 모건스탠리조차 입장이 오락가락했다. 반도체 비중 축소를 권했다가 불과 보름 만에 “지금이 매수 기회”라며 2028년까지 공급 부족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3분기 메모리 가격이 전 분기 대비 최소 25% 오를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까지 내놓았다. 이 널뛰기 자체가 시장의 불확실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공급과잉 우려의 근거는 결국 중국이다. 창신메모리는 6조5000억원 규모의 기업공개를 지난달 했고, 양쯔메모리까지 가세하며 중국의 메모리 자급률은 25%에서 2028년 30%를 향해 달려간다. 마이크론의 점유율은 그대로인데 감산한 한국업체의 점유율 10%가 중국에게 갔다. 감산이 가격을 올렸으나 대응은 감산으로 해서는 안 된다. 증산하고 연구개발(R&D) 투자 확대와 해외 유수 팹리스업체의 인수 합병(M&A)으로 가야 한다.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이미 40%에 육박한다. 반도체는 원래 3~4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대표적 경기순환주다. 다만 이번 사이클이 이전과 다른 것은, 메모리는 여전히 소수 기업의 과점 시장이고 파운드리는 TSMC 홀로 70% 이상을 쥐고 있다는 점이다. 대체 불가능한 구조이기에 이익의 변동성보다 자산가치를 반영하는 주가순자산비율(PBR)로 밸류에이션을 보려는 시각도 힘을 얻는다. 인건비와 공장 투자, 세금으로 새 나가는 몫이 큰 만큼 이익의 절대치보다 자산의 질을 봐야 한다는 논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범용 D램 감산으로 대응하는 것도 이 과점 구조를 지키려는 몸부림으로 읽힌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공급과잉 논쟁이 정작 메모리 3사의 투자 속도를 전혀 늦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 회사 모두 역대급 설비투자 규모를 갱신하며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필두로 한 첨단 캐파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고객사와 다년간 물량과 가격을 미리 확정하는 장기공급계약 비중이 늘어난 덕분에, 설령 현물 가격이 흔들려도 견조한 수익성을 지킬 안전판을 스스로 마련해 둔 셈이다. 결국 ‘꼭지론’과 ‘장기 호황론’이 팽팽히 맞서는 지금의 혼선은, 사이클의 진폭보다 그 진폭을 흡수할 구조적 장치가 얼마나 튼튼한지를 함께 봐야 한다는 신호로 읽는 편이 합리적이다.
셋째, 애플의 반격과 HBM의 딜레마
지난달 27일 애플이 15개월 만에 엔비디아를 제치고 세계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되찾았다. 엔비디아는 당일 5% 가까이 급락했다. 이 역전의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AI 인프라에 공격적으로 투자하지 않았던 애플이 오히려 안전자산으로 재평가받았다는 사실은, 빅테크 간 순환 투자와 순환 매출로 부풀려진 AI 서사에 대한 시장의 피로감을 드러낸다. 엔비디아가 고객사에 투자하고 그 고객사가 다시 엔비디아 칩을 사들이는 순환 구조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다는 의구심이다. 이 지점에서 HBM 이야기가 등장한다. 일반 D램 평균 수율을 100으로 놓고 보면 HBM은 그보다 훨씬 낮은 수율(30%대 추정)의 고난도 공정을 거친다. 여러 개의 칩을 실리콘관통전극으로 쌓아 올리는 패키징 자체가 원가와 불량률을 동시에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전체 D램 시장에서 HBM이 차지하는 물량은 한 자릿수에 불과하지만, 매출 기여도는 압도적이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전체 D램 시장에서 1%대에 그쳤던 비중이 지금은 열 배 가까이 불어난 셈이니, 좁은 니치 시장이 산업 전체의 수익성 지형을 뒤바꿔 놓은 셈이다. 값이 비싸고 전력 소모도 큰 만큼, 그동안은 진입장벽이 높아 과점 프리미엄을 누려온 니치 시장이었다. 문제는 지금이 과도기라는 점이다. D램 공급업체가 늘어나면 결국 HBM 진입자도 늘어난다. 삼성전자가 맹추격하고 중국 업체까지 기웃거리는 이유다. 공급과잉 우려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배경이기도 하다. SK하이닉스의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눌린 것도 역설적으로 HBM 비중이 워낙 높아 초기 투자와 연구개발 부담을 짊어졌기 때문이다. 반도체 장비 사이클이 메모리 사이클보다 통상 1년 뒤처져 움직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장비 투자 열기가 2028년까지 흥행을 보증하는 수표인지는 조금 더 지켜볼 문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에서 절반이 넘는 점유율로 독보적 1위를 지키고, 삼성전자가 HBM4의 초기 납품처로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이 니치 시장이 여전히 소수 기업의 기술 게임이라는 방증이다. 애플의 시총 탈환이 던지는 메시지와 HBM의 진입장벽이 여전히 높다는 사실, 이 두 가지가 공존하는 지금의 국면이야말로 슈퍼 사이클의 ‘조정’과 ‘종언’을 가르는 분기점이라 할 만하다.
넷째, 반도체 관련 주가의 역설
반도체 관련 주가의 고점은 이번 사이클에서는 지난 감이 크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외국인 수급이다. 사상 최대 실적을 내는 회사를 외국인은 왜 계속 팔았을까. 얼핏 보면 펀더멘털과 수급이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밸류에이션에 대한 눈높이 차이가 자리 잡고 있다. 실적은 기대에 대체로 부합했지만, 그사이 시장이 주가에 미리 반영해 둔 눈높이가 그보다 훨씬 높았던 탓이다. 코스피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훌쩍 넘기도 했다. 개별 종목에 몰린 레버리지·인버스 상품 수급이 지수 전체 변동성을 왜곡하는 ‘왝더독’ 현상이 반복되는 구조다. 한국 증시 특유의 널뛰는 변동성, 이른바 K변동성은 지나치게 심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더 근본적인 균열도 있다. 최첨단 HBM은 EUV 노광 장비 없이는 만들 수 없지만, 전체 메모리 수요의 90%는 하이엔드가 아니다. 중국은 EUV 없이 구형 DUV 장비만으로도 범용 D램과 낸드를 충분히 찍어낼 수 있고, 지금처럼 메모리 가격이 높은 구간에서는 그 정도 기술력으로도 중국 기업이 채산성을 맞출 수 있다. 일본계·미국계·유럽계 장비 기업들의 중국 매출이 꺾이는 사이 중국 토종 장비사들이 세계 상위권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것도 같은 흐름이다. 정부 주도 보조금과 국산 장비 의무화 정책까지 더해지면서, 각국 정부의 수출 규제로도 이 흐름을 완전히 틀어막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결국 시장은 중국을 메모리 산업의 네 번째 플레이어로 인정하고, 그와 함께할 치킨게임 국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과거 D램 치킨게임에서 국내 기업들이 원가 경쟁력과 규모의 경제로 살아남았던 경험을 떠올리면, 이번에도 승부의 관건은 결국 누가 더 낮은 원가로, 더 오래 버티느냐가 될 공산이 크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은 상대가 국가 보조금을 등에 업은 중국이라는 사실이다. 시장 논리만으로 승부가 갈리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지금 당장 끝난 것은 아니다. 다만 무대는 독주에서 경쟁으로, 화려한 서사에서 냉정한 숫자로 옮겨가고 있다. 영업이익률과 수율, 재고와 장기공급계약, 그리고 중국이라는 변수를 함께 읽어야 다음 국면이 비로소 보인다. 젠슨 황의 건배사만큼이나 대차대조표의 각주를 꼼꼼히 읽어야 할 시점이다. 축배를 든 밤과 사이드카가 발동된 아침이 한 주 안에 공존했다는 사실이야말로, 지금 반도체 산업이 서 있는 자리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주는 장면일지 모른다.
bon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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