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송하준 기자] 부실기업을 신속하게 퇴출하기 위해 강화된 코스닥 상장 유지 기준이 시행 한 달여 만에 보완 논의에 들어갈 전망이다. 영업이익을 내고 자기자본을 갖춘 기업도 낮은 주가나 시가총액 때문에 상장폐지 사정권에 들어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전날인 24일 국회에서 흑자기업까지 퇴출될 수 있다는 지적에 “미세조정할 부분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24일 기준 시가총액이 200억원 미만인 코스닥 기업 가운데 최근 4개 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흑자이면서 자본총계가 200억원 이상인 기업은 26곳으로 집계됐다. 영업이익 기준을 10억원 이상으로 높여도 16곳이 해당했다.
시가총액 기준을 둘러싼 문제는 앞서 국회에서도 제기됐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시가총액 200억원 미만 149종목 가운데 흑자기업은 45종목이었다. 이 중에는 보유한 자산가치가 200억원을 넘는 기업도 다수 포함됐다. 이번에는 기준 시점을 24일로 다시 잡고 자본총계 200억원 이상이라는 조건까지 추가해 살펴봤는데도 26곳이 해당했다. 적자를 지속하거나 자본이 취약한 기업만 강화된 시가총액 기준에 걸리는 것은 아닌 셈이다.
개별 기업을 보면 시가총액과 수익창출력·자본 규모 사이에 큰 차이를 보이는 사례도 있다. 24일 종가 기준 윙입푸드는 시가총액이 182억원인 반면 최근 4개 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116억원, 자본총계는 2630억원이었다. 패션플랫폼은 시가총액 157억원에 영업이익 132억원·자본총계 841억원, 스타플렉스는 시가총액 196억원에 영업이익 92억원·자본총계 769억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패션플랫폼은 강화된 시가총액 기준이 실제 적용된 사례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13일 패션플랫폼을 시가총액 200억원 미달을 사유로 관리종목에 지정했다.
영업이익이나 자기자본만으로 기업가치를 판단할 수는 없다. 향후 실적과 성장성, 현금흐름 등 다양한 요인이 주가에 반영된다. 다만 실제 이익을 내고 일정 수준의 자본을 갖춘 기업까지 시가총액 기준만으로 상장폐지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은 이번 제도 보완 논의의 쟁점으로 꼽힌다.
한 IR업계 관계자는 “부실기업을 퇴출하자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시가총액이나 동전주라는 기준만으로 상장폐지 여부를 가르는 게 맞는지는 의문”이라며 “영업이익을 내고 주주환원을 위해 노력하는 회사가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은 아닌지 검증하는 절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화된 상장 유지 기준에 따른 실제 관리종목 지정도 시작됐다. 지난 12일 장 마감 후 주가 또는 시가총액 기준을 30거래일 연속 충족하지 못한 종목에 대한 첫 관리종목 지정 조치가 이뤄졌다. 지난 5일 25거래일 연속 기준 미달로 관리종목 지정 가능성이 예고된 기업들이 이후에도 5거래일 동안 기준을 회복하지 못하면서 13일부터 실제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것이다.
한국거래소 관리종목 현황에 따르면 첫 지정일인 13일부터 24일까지 주가 1000원 미만 또는 시가총액 기준 미달로 새로 관리종목에 지정된 종목은 총 36곳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코스닥 상장사는 26곳이었다. 코스닥에서는 주가 1000원 미만으로 20곳, 시가총액 200억원 미만으로 8곳이 지정됐으며 형지글로벌과 E8 등 2곳은 두 기준에 모두 해당했다.
개정된 코스닥 상장규정에 따르면 주가가 30거래일 연속 1000원 미만이거나 시가총액이 200억원을 밑돌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이후 90거래일 동안 연속 45거래일 이상 해당 기준을 회복하지 못하면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다.
시장에서는 저시총 기업일수록 기업가치를 다시 평가받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가총액이 일정 규모 아래로 내려가면 기관투자자의 투자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있어 실적 개선이 곧바로 수급 개선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IR업계 관계자는 “꾸준히 NDR(기업설명회)을 다니며 기관에 회사를 소개하고 영업실적에 비해 시장에서 저평가돼 있다고 설명해도 일정 시가총액 이하 회사는 기업의 내재가치와 상관없이 투자 대상 리스트에 아예 편입시키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시가총액이 낮아 기관투자자의 관심에서 벗어나면 수급이 줄고, 낮은 기업가치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게 IR업계의 설명이다. 특히 일부 대형주나 특정 업종으로 자금이 몰리는 장세에서는 중소형주의 실적 개선이 주가에 바로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한 IR업계 관계자는 “회사가 실적을 내고 할 수 있는 주주환원을 했는데도 시장에서 관심을 받지 못해 주가가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기업에 IR과 주주환원을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기업이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환경도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상장폐지 기준 강화는 부실기업이 시장에 장기간 남는 것을 막기 위해 추진됐다. 금융당국은 상장은 많지만 퇴출은 적은 이른바 ‘다산소사(多産少死)’ 구조가 자본시장 신뢰를 떨어뜨린다고 보고 지난달부터 시가총액과 주가 1000원 미만, 완전자본잠식, 공시위반 등 상장폐지 요건을 강화했다.
이 위원장도 제도의 큰 방향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코스닥시장을 구조 개편하고 정상화하려면 부실기업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시행된 정책의 신뢰성을 고려하면 전면적인 정책 변경은 쉽지 않다는 뜻도 밝혔다.
해외에서는 여러 상장 유지 기준을 함께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시가총액 외에 자기자본과 순이익 등의 기준도 함께 활용하고 있으며, 일본은 일정 기간의 평균 시가총액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상장폐지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이 위원장이 전날 ‘미세조정’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금융당국이 부실기업 퇴출이라는 기존 정책 방향을 유지하되 어떤 보완책을 마련할지 주목된다.
hajun82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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