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급금 4억달러 파격 베팅…후기 임상 신약 영입

2032년 특허 절벽 차단…2040년대 캐시카우 완성

상반기 영업익 1868억 기반…차입 없이 R&D 가속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이 26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SK바이오팜 제공]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이 26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SK바이오팜 제공]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SK바이오팜이 미국 나스닥 상장 바이오텍 바이오헤븐으로부터 차세대 뇌전증 신약 후보물질 ‘오파칼림’을 총 7억9500만달러(약 1조1000억원) 규모로 전격 도입하며 K-바이오 비즈니스 모델의 질적 대전환을 알렸다.

그동안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초기 연구 물질을 발굴해 다국적 빅파마에 넘겨주는 라이선스 아웃(기술수출) 구조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글로벌 후기 임상 파이프라인을 직접 사들여(기술도입)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 전역에 직접 판매하는 글로벌 제약사형 밸류체인을 완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은 26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결단을 두고 “국내 경쟁사와의 단순 비교를 넘어 미국과 유럽의 CNS(중추신경계) 전문 빅파마들과 같은 리그에서 직접 경쟁하기 위한 전략적 승부수”라고 밝혔다. 2023년 7월 ‘빅 바이오텍’ 도약을 선언한 이후 3년간 시장 내 거의 모든 파이프라인을 정밀 실사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특히 총 계약 규모의 절반을 웃도는 4억달러(약 5500억원)를 계약금(선급금)으로 과감하게 베팅하며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계약금 비중이 50.31%에 달해 업계에서는 이례적인 딜 구조로 평가받는다. 그만큼 상업화 성공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반영된 결과다. 오파칼림은 현재 글로벌 임상 2·3상이 동시에 진행 중이다.

실무를 총괄한 유창호 SK바이오팜 전략부문장은 “정밀 실사 과정을 통해 임상 데이터를 면밀히 평가했고, 최근 CNS 시장의 계약 트렌드와 외부 자문사의 밸류에이션 분석을 거쳤다”며 “바이오헤븐이 성공적으로 2·3상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전략적 파트너십 구조”라고 설명했다.

2032년 ‘특허 절벽’ 해소… 2040년대 장기 캐시카우 확보

이번 대규모 계약의 가장 결정적인 성과는 단일 품목(원 프로덕트) 구조에서 비롯되는 잠재적 ‘특허 절벽’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차단했다는 점이다. SK바이오팜의 핵심 캐시카우인 뇌전증 혁신 신약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의 미국 물질특허는 2032년 10월 만료를 앞두고 있어 중장기 지속 성장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상존해 왔다.

그러나 물질특허가 2039년까지 보장되고 특허기간 연장(PTE) 제도를 통해 2040년대 진입이 유력한 오파칼림을 확보하면서, 회사는 2040년대 중반까지 연간 수천억원 규모의 현금 흐름을 공백 없이 안정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했다. 엑스코프리 하나에 의존하던 성장 곡선이 오파칼림과 결합하면서 장기적인 ‘더블 블록버스터’ 체제로 도약하게 된 것이다.

세노바메이트. [SK바이오팜 제공]
세노바메이트. [SK바이오팜 제공]

150명 美 직판망 레버리지… ‘약효·안전성’ 상호보완 포트폴리오

이미 미국 시장에 안착한 자체 직판 영업망과의 결합을 통한 레버리지 효과도 극대화된다. 이 사장은 “기존의 미국 직판망에 신제품을 얹으면 추가 비용은 억제되면서 매출과 마진 폭은 훨씬 커진다”며 직판 레버리지 효과를 강조했다. SK바이오팜은 미국 전역에 종합병원 및 전문의를 전담하는 150여명 규모의 직판망을 운영 중이며, 오파칼림 도입에 따른 추가 영업 인력은 10~20명 수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제품 포트폴리오 차원에서는 약효 중심의 엑스코프리와 내약성·안전성을 앞세운 오파칼림의 상호보완적 결합이 돋보인다. 엑스코프리가 소듐 채널 억제 기전을 통해 20%에 달하는 발작 완전 소실률을 바탕으로 처방의 80%를 뇌전증 전문의(Epileptologist) 기반의 중증 환자 시장에서 거두고 있다면, 오파칼림은 Kv7.2/7.3 칼륨 채널을 활성화하는 신규 기전으로 우수한 안전성을 확보했다.

유 부문장은 “경쟁사인 제논의 ‘아제토칼러’가 GABA 수용체를 건드려 어지럼증 등 중추신경계 이상반응과 높은 환자 이탈률을 보인 것과 달리, 오파칼림은 GABA를 배제해 부작용을 현저히 낮췄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부작용 관리가 핵심인 일반 신경과(General Neurologist) 의사들에게 최적의 초기 처방 옵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됐으며, 향후 두 약물을 결합한 복합제 개발이나 전신발작(PGTC), 소아 질환, 희귀 질환 영역으로의 확장성까지 확보했다.

상반기 영업익 1868억 기반…차세대 모달리티 투자 선순환

이처럼 파격적인 대규모 계약금을 앞세운 기술도입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신약 개발부터 상업화, 미국 직판까지 성공시킨 세노바메이트의 독보적인 현금 창출력과 강력한 펀더멘털이 자리 잡고 있다. SK바이오팜은 2026년 상반기에만 1868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확고한 흑자 기조를 정착시켰다. 별도 기준 3300억원 규모의 현금성 자산과 2000억원의 한도 대출 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연간 3000억원대 초중반에 이르는 현금 창출력을 고려할 때 추가 차입이나 유상증자 없이 자체 영업 활동만으로 자금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사장은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 중 반기에 2000억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내는 곳은 드물다”며 “우리가 가장 강한 현금 창출력을 쥐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올해와 내년에 벌어들이는 수익의 절반가량만으로도 전체 계약금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이번 거래를 K-바이오가 글로벌 신약 개발 가치사슬의 최상단으로 도약한 상징적 분수령으로 해석한다. 나스닥 상장사인 바이오헤븐과의 대규모 파트너십을 통해 미국 자본시장과 글로벌 투자자들의 신뢰도를 확보한 SK바이오팜은 장기 캐시카우를 바탕으로 방사성의약품(RPT), 표적단백질분해(TPD), 인공지능(AI) 기반 중개연구(Translational Research) 등 차세대 미래 모달리티 혁신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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