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트닉 등과 협상…17일 국회보고 예정

상위 ‘투자 SPV’ 구조 사실상 ‘무산’

“한미FTA 협상 지렛대로 활용 못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9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EU본부 집무실에서 스테판 세주르네 EU 성장 담당 수석부집행위원장을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 김 장관은 이 일정을 소화한 뒤 미국으로 향했다.  [연합]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9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EU본부 집무실에서 스테판 세주르네 EU 성장 담당 수석부집행위원장을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 김 장관은 이 일정을 소화한 뒤 미국으로 향했다. [연합]

한미 무역협상의 후속 조치인 대미투자 프로젝트 발표를 앞두고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막판 조율을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투자한 자금의 회수 안전판으로 기대했던 상위 ‘투자 특수목적법인(SPV)’ 구조가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미투자 위험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

10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벨기에로 이동해 순방 일정을 소화한 김 장관은 전날(이하 현지시간) 미국으로 향했다. 김 장관은 오는 12일까지 미국에 머물며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 등 미국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대미투자 관련 조율을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구체적인 투자처와 첫 투자금 송금 규모, 시기 등을 최종 확정해야 한다. 현재 1호 프로젝트로는 220억달러대 규모의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후속 사업으로는 대형 원전 8기 건설과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등이 거론된다.

미국 측은 2000억달러 규모의 전략적 대미투자 가운데 1200억달러를 원전 8기 건설에 투입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일부를 한국형 원전인 APR1400으로 건설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하지만 산업부는 “사실과 다르다”며 “현재 한미 간 협의가 진행 중으로 구체적인 사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장관은 귀국 후 오는 17일께 국회에 대미투자 1호 사업과 관련한 내용을 보고하고, 이르면 18일 양해각서(MOU)에 최종 서명하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알려졌다.

관건은 투자 위험을 어떻게 분담하느냐다. 특히 우리 정부가 대미투자금의 회수 안전판 가운데 하나로 기대했던 상위 ‘투자 SPV’ 구조가 최근 협의 과정에서 흔들린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1월14일 양국이 합의한 양해각서와 공동 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이 상위 투자 SPV를 설립하고, 한국은 자금을 투자 SPV에 조달한다(13조)고 했다. 또 미국이 투자에서 발생하는 모든 자유현금흐름이 양해각서에 따라 분배하고, 각 프로젝트 SPV가 다시 투자 SPV에 자금을 분배하도록 규정했다(14조).

이른바 ‘우산형 SPV’ 방식으로 한 프로젝트에서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다른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이익으로 전체 투자 원금과 이자를 상환할 수 있어 투자 위험을 분산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최근 협의에서는 미국 측이 이 같은 구조 대신 사업별로 수익과 손실을 별도로 정산하는 방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파악됐다. 자금 조달은 상위 ‘투자 SPV’를 통하지만, 실제 수익 배분과 손실 부담은 개별 프로젝트 SPV가 맡는 구조다. 프로젝트 간 손익을 서로 보전하기 어려워지면서 투자 위험 분산 효과가 당초 구상보다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한미 양해각서는 우산형 SPV 방식으로 투자 위험을 분산하기로 했는데, 지난 7일 열린 한미전략투자운영위원회(투자운영위)에서 프로젝트별 SPV 방식으로 수익을 정산하는 방안을 의결한 것으로 알려진다”고 밝혔다.

첫 투자금 송금 일정도 논란이다. 정부가 이달 안으로 22억달러 이상의 첫 대미 투자금 송금을 추진하고 있지만, 양해각서에는 미국의 투자처 선정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최소 45영업일이 지난 뒤 투자금을 납입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아직 국내 투자 심의 절차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송금 일정이 먼저 구체화된 것이다.

이에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대미투자 프로젝트 발표와 송금이 속도를 내면서 우리 정부가 미국의 투자 확대 압박에 끌려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 통상 전문가는 “한미 간 대미투자 협상은 애초부터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측면이 있다”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인 우리나라가 일본이나 유럽연합(EU)보다 유리한 지위를 충분히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배문숙 기자


oskymo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