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게임업체 엔피는 위지윅스튜디오 흡수합병 이사회 결의로부터 22일이 지나서야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사외이사 2인과 외부전문가 2인으로 채운 뒤늦은 진용이었다. 그 사이 금융감독원은 증권신고서와 주요사항보고서에 대해 두 차례 정정을 요구했다.
엔피만의 일이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 이마트·신세계푸드 포괄적 주식교환에서도 소수주주 보호방안 기재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금감원 정정요구가 두 차례 있었다.
법무부가 ‘기업 조직개편 시 이사의 행위규범 가이드라인’에서 “형식적 기재에 그치지 말고 일반주주의 합리적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충실한 정보를 제공하라”고 2월 명시한 지 두 달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 흐름의 배경에는 더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 9월 공포된 개정 자본시장법은 상장법인 합병가액 산정방식의 준거를 30년 만에 바꿨다.
1997년 이래 유지돼온 시가기준 산식이 폐지되고, 주식가격·자산가치·수익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공정가액’을 이사회가 직접 산정하도록 했다.
이사회는 합병의 목적과 기대효과 및 가액의 적정성에 관한 의견서를 작성해 공시해야 하고, 계열사간 합병의 경우 외부평가기관은 감사 또는 감사위원회가 선정하도록 했다.
종전 산식은 협소했지만 안전했다. 그러나 시가기준 산식의 결함은 실증적으로 드러난 지 오래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 상장법인 간 합병 333건을 분석한 결과 실제 합병가액이 자본시장법상 기준시가보다 높았던 경우가 전체의 86.2%였고, 같은 기간 일본에서도 90.9%가 기준시가 이상으로 거래됐다는 자본시장연구원의 보고서도 나왔다. 시가가 기업가치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시장 스스로 증명해온 셈이다.
책임이 이사회로 넘어가면 그 실행 창구는 결국 특별위원회다. 이마트·신세계푸드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신세계푸드 특별위원회는 기준시가 10% 할증을 요청했고, 이마트 특별위원회는 재무자문사가 산정한 적정 교환비율 상단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협상해 최종 3% 할증으로 조정했다. 반대주주 주식매수청구가는 별도로 30% 할증까지 끌어올렸다.
SK이노베이션과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각각 독립이사 전원으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80일간 6차례, 3개월간 7차례 회의를 열었고, 서로 다른 법률·재무 자문사를 선임해 목적의 정당성·조건의 공정성·절차의 적절성을 체크리스트로 검증했다.
해외의 기준은 더 뚜렷하다. 미국 델라웨어 법원은 2014년 M&F 월드와이드(Worldwide) 판결에서, 거래 개시 시점부터 독립된 특별위원회와 이해관계 없는 주주의 다수결을 조건으로 걸고 위원 전원이 독립성을 갖추며 자문기관을 자유롭게 선임·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등 6가지 요건을 충족하면 경영판단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24년 엔데버·실버레이크 간 비상장화 거래에서도 이 요건에 따라 구성된 특별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했다.
특별위원회·회사·매수자·경영진 각각은 별도 법률자문사(총 6곳)를 선임하고 3주간 집중 협상한 끝에 주당 27.50달러(직전 종가 대비 55%, 30일 거래량가중평균주가 대비 39% 프리미엄)로 거래를 확정지었다.
일본에서도 SCSK와 스미토모상사의 공개매수 협상에서 특별위원회가 8차례 협상 끝에 주당 5050엔이던 최초 제안을 5700엔까지 약 12.87% 인상시켰다. 자문기관을 이해관계자별로 완전히 분리하고, 협상 과정을 회차별로 기록해 남긴 결과였다.
한국은 아직 이 지점에 이르지 못했다. 자문기관은 일부만 분리되고, 협상은 한두 차례 요청에 그치며 공시는 요약적 기재에 머문다.
개정법 시행까지 석 달이 남았다. 그 사이 기업이 갖춰야 할 것은 명확하다. 거래 조건이 확정되기 전, 거래 초기에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독자적 자문기관 선임권과 정보접근권, 협상 관여권을 이사회 의사록에 명문화해야 한다.
그리고 각 안건의 검토 내용을 이사별로 구체적으로 기록해야 한다. 그 의사록이 합병가액의 공정성을 입증할 중요한 증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산식이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기록이다. 법정 산식이라는 안전항 뒤에 숨을 수 있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합병가액의 공정성을 설명할 책임은 이사회에 있고, 특별위원회는 그 판단의 근거가 될 논의와 기록을 만들어야 한다. 뒤늦은 설치, 형식적 회의, 요약적 의사록으로는 그 책임을 다할 수 없다.
문성 율촌 기업지배구조센터 부센터장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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