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 ‘문 슈’ 기획전 개최…아티스트 8팀과 협업
나이키 러닝화의 출발점…와플 기계에서 밑창 착안
[헤럴드경제=정대한 기자] 마치 폐건물처럼 우중충해 보이는 건물을 들어서니 총 2층으로 구성된 별도의 거대한 전시 공간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작품들이 전시된 개방된 공간인 1층과 달리 2층은 겉으로 봤을 때 어떤 공간인지 식별이 어려웠다.
1층은 스케치나 샘플 등 전시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있었던 전시물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해당 전시물만으로는 어떠한 작품으로 나타날지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니 비로소 아티스트들의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2층의 바닥은 특수 처리된 강화 유리 패널로 구성됐다. 위에서는 아래가 보이지만, 아래에서는 위가 보이지 않는 구조다. 1층은 실험하고 테스트하는 과정의 한가운데에 있어 결과가 보이지 않지만, 2층에서는 완성된 작품 아래로 유리 바닥을 통해 작품이 만들어진 과정을 볼 수 있다.
밑창이 낮고 실루엣이 날렵한 이른바 ‘로우 프로파일’ 스니커즈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나이키가 55년 전 자사의 러닝화를 다시 꺼내 들었다. 주인공은 나이키 러닝화의 출발점으로 평가되는 프로토타입(시제품) 모델 ‘문 슈(Moon Shoe)’다.
나이키 코리아는 19일부터 21일까지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제1파워플랜트에서 문 슈를 중심으로 ‘Version 0: Prototype’ 기획전을 연다. 패션, 가구 디자인, 순수 미술, 공예 등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8팀의 아티스트가 전시에 참여한다.
문 슈 자체는 시장에 출시되지 않은 프로토타입 모델이다. 다만, 이 모델에서 시작된 아이디어는 이후 나이키 최초의 블록버스터 성공작인 ‘와플 트레이너’로 발전했다. 이후 지난 2025년 나이키 협업 디자이너 자크뮈스의 패션쇼 무대에서 재해석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번 전시 장소는 40년 넘게 서울대학교에 열과 전기를 공급해 온 산업 시설이다. 현재는 주로 문화·예술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나이키 관계자는 “대학교는 이미 이뤄진 것을 증명하는 곳이 아니라, 실패 역시 과정의 일부가 되고 아직 검증되지 않은 아이디어가 처음 형태를 얻는 곳”이라며 “현실 세계로 나아가기 전에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장소도 하나의 프로토타입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제목인 ‘프로토타입’처럼 하나의 시제품에서 촉발된 실험 정신이 수십 년에 걸쳐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 슈가 상징하는 ‘제약 속의 실험’, ‘완성보다 과정’이라는 철학을 아티스트의 고유한 매체와 언어로 해석한다.
‘와플솔’에서 출발해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된 나이키의 아카이브도 만나볼 수 있다. 당시 제작된 포스터와 아카이브 자료를 비롯해 1973년 출시된 ‘오리건 와플’과 1974년 선보였던 ‘아스트로그래버’, 1975년 ‘와플 트레이너’ 등의 초기 제품들을 직접 실물로 확인할 수 있다. 나이키 공동창업자 빌 바워만이 신발을 개발하던 작업실에서 영감을 받아 재구성한 참여형 공간도 마련됐다. 관람객들은 진공성형기를 활용해 나만의 밑창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문 슈의 역사는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오리건대학교 육상팀을 지도하던 나이키 공동창업자 빌 바워만은 우레탄 트랙에서 선수들이 겪던 부상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해답의 실마리는 연구실이 아닌 ‘주방’에서 나왔다. 바워만은 결혼 선물로 받은 아내의 와플 기계에 새겨진 격자무늬를 보고 신발 밑창에 적용할 ‘가벼운 접지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와플 기계를 통해 몰드와 소재를 바꾸며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마침내 격자 형태의 돌기가 적용된 밑창이 만들어졌다. 나이키 초기 러닝화를 상징하게 된 ‘와플솔’의 출발이다. 밑창이 지면에 남긴 자국이 달 표면에 찍힌 우주비행사의 발자국처럼 보인다는 데에서 ‘문 슈’라는 이름이 붙었다.
나이키가 다시 문 슈를 내세운 배경에는 최근 스니커즈 시장의 변화가 있다. 두툼한 밑창과 부피감 있는 형태와 달리 밑창이 낮고 전체 실루엣이 납작하고 날렵한 ‘로우 프로파일’ 디자인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토마신 허머스톤 나이키 에너지 풋웨어 시니어 디렉터는 “소비자들의 관심이 ‘로우 프로파일’ 실루엣으로 기울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나이키에게 어떤 의미인지, 우리가 그 영역에서 어떻게 진정성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며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대신 이미 가지고 있던 형태를 꺼내는 선택을 했다”고 설명했다.
kore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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