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佛·英·日 국채금리 동반 급등

선진국 이자 비용 1년간 3.3조弗

글로벌 AI 투자 2.6조弗보다 많아

미국에서 시작된 국채 투매가 유럽과 일본으로 번지는 가운데 고금리 충격이 금융시장을 넘어 각국 정부의 재정 부담으로 확산하고 있다. 에너지발(發) 인플레이션에 막대한 정부 부채와 AI·데이터센터 투자 붐까지 겹치면서 주요국 장기금리는 가파른 동반 상승세를 보였다. 지난 1년간 선진국들이 국채 이자로 지급한 돈만 3조3000억달러(약 4500조원)에 달할 정도로, 이는 전 세계의 AI 투자액은 물론 국방비를 합산한 것보다도 큰 규모다. 고금리가 단순 금융시장 문제를 넘어, 각국 정부의 재정 여력을 잠식하는 단계로 번지고 있다.

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이날 장중 5.34%까지 치솟아 200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3분기 10년물 국채 금리 상승 폭은 21세기 들어 분기 기준 가장 컸다. 장 후반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5.26% 안팎으로 내려왔지만 추가 매도 가능성은 남아 있다.

프랑스 10년물 국채금리도 5%에 육박, 2002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영국 10년물 금리는 5.39%에 이르렀고, 30년물은 6%를 돌파해 199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에서도 국채금리가 사상 처음 5개 분기 연속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할 정도로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장기금리 급등은 각국 정부에 막대한 ‘이자 청구서’로 돌아오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선진국이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국채에 지급한 이자는 3조3000억달러에 달했다.

같은 기간 전 세계 AI 투자액으로 추산되는 2조6000억달러보다 7000억달러 큰 규모다. 전 세계 국방비 3조1000억달러와 청정에너지 투자액 2조3000억달러도 훌쩍 뛰어넘는다. AI에 투자하는 돈보다 기존 정부 부채의 이자를 갚는 데 더 많은 돈이 들어가는 셈이다.

고금리가 장기화할수록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기존 국채가 만기를 맞으면 과거보다 높은 금리로 차환해야 하는 데다,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한 신규 국채 발행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늘어난 이자 비용이 재정을 압박하고 추가 국채 발행 필요성을 높이면, 장기금리에 다시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최근 채권 투매의 배경에는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뿐 아니라 AI 투자 붐도 자리 잡고 있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망 구축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해지면서 기업들이 채권시장에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고 있어서다.

이미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 발행을 늘리는 정부에 기업의 자금 수요까지 더해지면 시장이 소화해야 할 채권 규모도 커진다. 투자자들의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더 높은 수익률을 제시해야 하는 압력이 커지는 구조다.

AI 투자가 경제성장을 떠받치는 점도 장기금리에는 상승 요인이다. 지난달 유럽과 아시아의 제조업 활동은 AI 관련 투자에 힘입어 확장세를 나타냈다. 높은 금리에도 경제가 견조하게 버티면서 중앙은행이 긴축에 따른 경기 둔화를 우려할 필요성도 줄어들고 있다. 스위스의 자산관리 업체인 줄리어스베어의 아폰소 보르헤스 채권 애널리스트는 “강한 성장이 경제가 더 높은 금리를 더 오래 감당할 수 있다는 결론을 시장이 내리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AI 투자 붐은 기업의 자금조달 수요를 키우는 동시에 경제성장을 지지해 중앙은행이 높은 금리를 유지할 여력을 높이는 두 가지 경로로 채권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달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뒤 추가 긴축 가능성이 남아 있다.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올해 두 차례 금리를 인상했지만 시장은 추가 인상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다.

채권시장의 관심도 중앙은행이 앞으로 몇 차례 금리를 더 올릴지에서 한층 넓어지고 있다. 정부 부채 확대와 AI 투자로 불어난 자금 수요를 시장이 어떤 금리에서 소화할지가 장기금리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고금리로 정부의 이자 비용이 늘고 재정 부담이 다시 국채 발행 압력을 높이는 흐름이 이어질 경우 높은 장기금리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 서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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