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스릴러 ‘김정남 얼티메이텀’, 법정범죄극 ‘프레지덴셜 크라임’, 그리고 서바이벌 리얼리티쇼 ‘슈퍼스타 대선’. 멀티플렉스 ‘대한민국’에서 최근 절찬상영중인 영화들이다.‘프레지덴셜 크라임’은 장기 상영 중이고 ‘김정남 얼티메이텀’은 최근 개봉작이며 ‘슈퍼스타 대선’은 한창 흥행 중이다.
사회 현실의 ‘장르화’다. 언론과 대중미디어는 주요한 사건을 장르의 어법으로 전달한다. 국민들이 지각하는 현실은미디어가 장르화시킨 ‘프레임’으로 재현된다. 김정남 피살 사건이 그렇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첩보스릴러’로 정보가 생산되고 소비된다. 여기에는 돈과 권력, 가족, 여성, 폭력, 살인, 국제 음모가 얽혀 있다. 살인현장의 CCTV는 ‘제이슨 본’ 시리즈에 수없이 등장하는 CCTV 이상의 ‘시각적 전율’과 ‘영화적 흥미’ 뿐 아니라 ‘현실감’을 선사한다. 이 시대의 마지막이라할만한 세습 왕조 국가에서 벌어지는 형제간 권력투쟁, 국경을 넘은 국제 첩보전, 돈과 여성ㆍ폭력이 개입된 사건 전개. 언론은 그 모든 것을 ‘장면화’하고 ‘정보화’한다.
‘사실 확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관객은 흔히 결과보다는 과정을 기억하고, 영화의 흥미는 결말 그 자체가 아니라결말까지의 전개에서 결정된다. 따라서 ‘맥거핀’이든 ‘중요 증거’든 새롭게 발견될 때마다 실시간으로 ‘관객’에게 전달돼야 이 미스터리극은 진행될 수 있다. 너무 일찍 범인이 밝혀지면 이 영화의 흥행은 실패한다. ‘관객’에게는 용의자에 대한 ‘심증’과 ‘혼란’을 동시에, 그리고 끊임없이 줘야 한다. 실제 무기가 어떤 것이 사용됐는지 사실을 확인하는 것보다는 독침과 독극물 혹은 스프레이 분사액의 ‘종류’와 ‘효능’을 관객에게 알려주는 ‘친절’이 중요하다.
갈등구도를 설정하는 것도 핵심이다. 역시 여기서도 핵심은 ‘대립 구도’ 그 자체이지, 마지막에 밝혀지거나 영원히 드러나지 않을지도 모를 실제 범인은 아니다. 마치 왕권과도 같은 권력 투쟁 중인 형제, ‘김정은 대 김정남’, 최고의 ‘캐스팅’이다. 과거에는 자주, ‘김정남 얼티메이텀’ 같은 ‘첩보스릴러’가 ‘슈퍼스타 대선’ 같은 서바이벌 리얼리티쇼의 흥행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김정남 얼티메이텀’ 같은 첩보스릴러의 극장상영이 ‘슈퍼스타 대선’ 같은 쇼의 개봉에 곧바로 뒤따르는 경우가 흔했다.
그러나 이번엔 좀 다르다. 최근 추세이기도 하다. 현재까지는 안보 현안이 대선판도를 바꾸지 못하고 있다. 최근 잇따라 발표된 두 건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여론조사를 보면 그렇다. 리얼미터(MBNㆍ매경 의뢰)가 지난 13~15일 설문조사한 결과, 문재인 32.7%, 안희정 19.3%, 황교안 16.5% 였다. 한국갤럽의 조사(14~16일)는 문재인 33%, 안희정22%, 안철수 9%, 황교안 9%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주자인 문ㆍ안 두 주자의 강세가 계속됐다. (이상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슈퍼스타 대선’은 대선레이스를 소재로 하는 서바이벌 리얼리티쇼다. 해를 거듭할수록, 선거를 치를수록 정치가 ‘예능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2012년 안철수 당시 서울대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무릎팍도사’ 출연을 시작으로 대선주자 반열에 든 수준이나, 몇 몇 거물 정치인의 오락프로그램 출연이 화제가 되는 차원을 넘어섰다. 정치가 ‘예능’으로 소비되고 정치 담론이 예능을 통해 ‘재생산’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의 패널로도 참여중인 진중권동양대 교수는 “앞으로 모든 것이 다 게임이 될 것이고 모든 것이 다 예능이 될 것”이라며 “가상과 현실이 중첩되는디지털 시대의 특성”이라고 했다. ‘슈퍼스타 대선’은 출연자들(대선주자)이 각종 ‘미션’을 수행하고, 실시간에 가까운시청자 여론조사(리서치업체의 지지도 조사)와 심사위원 평가(당내 경선)을 통해 선발자와 탈락자를 가리며 대선 투표를 통해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리얼리티쇼다.
‘슈퍼스타 대선’의 운명은 ‘프레지덴셜 크라임’에 달렸다. ‘프레지덴셜 크라임’이 조기 종영될 것이냐 장기상영될 것이냐가 관건이다. ‘프레지덴셜 크라임’은 대통령과 관료, 기업인, 검사, 언론인은 물론 여성 승마선수와 스포츠트레이너까지 출연하는 ‘역대급’의 법정드라마이자 정치스릴러이며 범죄미스터리극이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멀티플렉스에서 홀대받는 소규모 개봉영화도 있다. ‘블록버스터’에 밀려 개봉관조차 잡지 못하는 신세, 조조나 심야상영으로 밀린 처지의 작품이다. ‘민생’이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다. 알바 뛰는 청춘들, 학자금에 매인 학생들, 육아와 돈벌이에 지친 여성들, 야근을 밥먹듯이 해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직장인들, 손주에 치이고 나와서는 눈칫밥인 노인들이 주인공이 작품 말이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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