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 장군 동상 이전 시작으로 평택 대이동 일제식민지·근현대사 상처 곳곳에 문화적 가치 살려 진정한 주인노릇 해야 ‘한국과 미국, 군과 민의 경계의 땅’ 용산미군기지가 113년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 ▶관련기사 3면 미 8군사령부는 25일 용산기지에 있는 사령부 영내에서 월튼 워커 장군 동상 이전을 시작으로 올해안에 용산미군기지를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하는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상 이전 기념식에는 토머스 밴달 미 8군사령관과 한국전쟁의 영웅 백선엽 예비역대장 등 한미 양국 군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워커 장군 동상은 평택 기지인 ‘캠프 험프리스’로 옮겨질 예정이다. 월튼 워커(1889∼1950) 장군은 6·25 전쟁 당시 미 8군사령관으로 대한민국을 지킨 지휘관으로 인천상륙작전으로 패퇴하는 북한군을 쫓아 북상하던 중 경기도 지역에서 교통사고로 숨을 거뒀다.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미군기지 미8군사령부에서 열린 워커장군기념물 이전행사에서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워커장군동상 이전을 시작으로 미8군사령부는 용산에서 평택으로 이전하게 된다. 사진 왼쪽부터 토머스 밴달 주한 미 8군사령관, 브룩스 사령관, 백선엽 예비역 대장.  [연합뉴스]
2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미군기지 미8군사령부에서 열린 워커장군기념물 이전행사에서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워커장군동상 이전을 시작으로 미8군사령부는 용산에서 평택으로 이전하게 된다. 사진 왼쪽부터 토머스 밴달 주한 미 8군사령관, 브룩스 사령관, 백선엽 예비역 대장. [연합뉴스]

주한미군 평택 이전 사업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주한미군 기지를 통·폐합해 안정적 주둔 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2003년 한미 양국 정상 합의에 따라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미 8군사령부는 지난달 선발대 이전을 한 데 이어 오는 6월 말까지 본대 이전을 완료할 계획이다. 주한미군사령부의 이전은 올해 11월쯤 끝날 것으로 알려졌다.

16조원에 달하는 사업비중 용산기지 이전비용(약 9조원)은 한국 측이, 의정부와 동두천 등의 기지 이전비용(약 7조원)은 미국 측이 부담한다.

용산미군기지는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상징이자 한국 땅이면서도 한국 땅이 아닌 곳이었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데다 한강과 인접한 전략적 요충지로 역사적 아픔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용산에 외국군이 주둔한 역사는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 당시 몽골군은 한반도를 침략한 뒤 용산을 보급기지로 활용했다.

임진왜란 때는 평양전투에서 패배한 왜군이 머무르기도 했고, 임오군란 때는 청나라 병력이 주둔하기도 했다.

용산이 본격적으로 외국군 주둔지로 자리잡은 것은 일제의 침탈과 맞물린다. 일본군은 러일전쟁이 발발한 1904년 8월 용산 일대 약 300만평을 군용지로 강제 수용했다.

일본군은 이어 1907년 사격장, 1908년부터 병원, 창고, 형무소 등의 시설을 확충했다. 일본은 1914년 일본군 기지를 조선군사령부로 변경했고 2개 사단을 주둔시키기도 했다.

1930년대 들어서는 중국 침략과 전시물자 동원 기지로 더욱 확대했다.

일제 몰락 이후에도 용산기지는 서울 한복판의 외국군 주둔지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45년 해방 이후 미 24군단 예하 제7사단 병력이 들어오면서 용산은 주한미군기지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1945년 9월9일은 용산기지의 깃발이 일장기에서 성조기로 바뀐 날이다.

미군이 용산기지를 사용하면서 일제 강점기 당시 건물을 대부분 재활용한 때문에 일제의 흔적도 곳곳에 상당수 남아 있다.

미 8군 전몰자 기념비는 미군이 일본군 구조물을 재활용한 대표적 예다. 일제가 애초 1935년 11월 일본군 제20사단 78연대의 만주사변 전사자를 위해 세운 충혼비는 6ㆍ25전쟁 이후 미군 충혼비로 바뀌었다.

용산기지 메인포스트 북쪽 주유소를 지나면 나오는 위생부대도 일제 헌병대 감옥이 있던 곳이다. 주한미합동지원단 건물은 일제 조선군사령부 시절 장교 합동숙소였고, 미 8군 클럽으로 이용됐던 드랜곤힐라지(DHL) 호텔은 일본군 사령관 관저가 있던 곳이다.

용산 향토사학자 김천수 씨는 “용산기지 내에는 일제 강점기와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유산들이 약 130여 동 남아있다”며 “용산기지를 둘러싼 환경오염 논란도 있지만 우리 근현대사의 흔적도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고 했다.

신대원ㆍ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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