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환율보고서’ 카운트다운 미국 원화절상 압박 가중에 한국판 ‘플라자합의’ 우려 제기 김 부총리 “급격한 쏠림 단호 대처”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일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과 전화통화를 갖고 조만간 발표될 미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지 않도록 협조를 요청한 것은 이 사안이 그만큼 중대하기 때문이다. 환율은 수출에 의존해 경제를 지탱해가고 있는 우리경제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핵심 경제변수다. 환율이 어느 수준에서 결정되느냐에 따라 수출 규모는 물론 관련 기업의 채산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일자리 등 경제 전반의 흐름을 좌우하게 된다. 때문에 급격한 쏠림이 없이 적정환율이 유지되도록 시장을 조성하는 ‘환율주권’은 대외 경제주권의 핵심이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지난해 출범한 트럼프 미 행정부가 한국 외환당국의 외환시장 개입 내역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다른 선진국들처럼 시장개입 내역을 공개해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방침을 정하고, 공개 주기와 방식 등 구체적인 방안을 국제통화기금(IMF) 및 미 재무부와 협의해왔다.
하지만 미국은 시장개입 내역 공개를 통해 원화가치 절상(달러약세)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축소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미국 산업을 보호하고, 미국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다.
시장 전문가들은 외환시장 개입내역 공개로 한국 외환당국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가능성이 있으며, 이렇게 될 경우 앞으로 원화 강세가 나타나더라도 당국의 적극적인 개입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외환시장에서는 이러한 전망이 이미 환율에 반영되고 있다. 최근에는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050원대로 떨어지며 3년5개월만의 최저치(원화 강세)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부에선 원/달러 환율이 추가 하락해 달러당 900원대, 또는 그 이하로 주저앉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원화가 강세를 보이면 원화의 대외 구매력이 높아져 수입물가 인하로 국내물가를 안정시킴은 물론 해외여행 수요를 확대하는 역할을 하지만, 반대로 수출에는 직접적인 타격을 주게 된다. 원화강세가 장기화할 경우 국내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지난 1985년 이른바 ‘플라자합의’로 엔화가치가 급등하면서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침체에 빠진 바 있다. 당시 미국과 영국ㆍ독일ㆍ프랑스ㆍ일본 등 주요 5개국(G5) 재무장관들은 “달러화 가치가 내려가도록 협력하고 대외 불균형 축소를 위해 재정ㆍ통화정책에서 공조한다”고 합의했으며, 이는 사실상의 엔화가치 절상 합의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1985년 달러당 250~260엔에 거래되던 엔/달러 환율은 10년 후인 1995년엔 70엔대까지 내려가면서 일본경제에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주었다.
정부는 이러한 가능성은 과도한 억측이라며 개입내역을 공개하더라도 ‘환율주권’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김 부총리는 지난 9일 중소기업 현장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미국 재무당국은 이 문제(시장개입 내역 공개)에 대해 비교적 대화가 되는 편”이라며 “우리의 환율주권을 분명히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부총리는 그러면서 “어떤 경우도 (환율문제를) 자유무역협정(FTA)과 연계할 수 없다”며 “환율을 시장에 맡기되 급격하게 쏠림이 있을 때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만간 발표될 미국의 환율보고서와 이를 둘러싼 양국 정부의 합의 내용이 향후 우리경제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해준 기자/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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