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10월 31일 오전 9시 10분경. 이상한 ‘지라시’가 눈에 띄었다. 미국 재무부가 국내 특정은행에 대한 경제적 제재(세컨더리 보이콧)을 발표할 예정이라는 증권가의 풍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잘못된 정보다. 재무부는 제재발표를 할 때 통상 외교당국과 해당 기관에 사전통지를 한다. 갑작스럽게 공개되는 경우는 드물다. 내년 초 발표예정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 보고서조차도 각 사례에 대한 ‘기술적 표현’을 가지고 논란으로 발표가 지연될 수 있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일반 보고서 하나도 치열한 협의과정을 거쳐 공개가 되는데, 다른 곳도 아닌 미국의 재무부에서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 중 하나인 한국과의 사전협의없이 제재방침을 발표할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지라시가 눈길을 끈 이유는 무엇일까. 한미 외교당국 모두 “역대 최고수준의 한미동맹”이라고 강조하지만, 곳곳에 불안요소가 잠재한다. 지난 7월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이 직접 방한해 기업들을 상대로 대북제재와 관련한 설명회를 개최한 이후 국내 은행 7개사를 대상으로 한 재무부의 콘퍼런스콜(전화회의), 최고경영자(CEO)가 평양을 방문한 한국 5대그룹에 대한 주한미국대사관의 콘퍼런스콜, 미뤄지고 있는 남북 철도ㆍ도로연결 협의 모두 남북협력사업을 바라보는 한미의 시각차를 반증한다.
역으로 한반도 평화모멘텀이 고조된 만큼 한미공조를 유지하기 위한 실무작업들이 활발해진 것이라는 시각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미 싱크탱크(정책연구업계)뿐만 아니라 국무ㆍ재무부 실무라인에서도 남북 경제협력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실제 한미관계 소식통은 미 재무부가 국내은행과 기업들의 제재 위반사례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남북경협 흐름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 재무부의 제재를 ‘기정사실화’한 논란의 지라시는 남북협력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대내외 여론의 흐름을 가시화한 측면이 있다. 지난 25년 간의 한반도 비핵화ㆍ평화 협상은 실질적인 약속파기와 협상결렬로 깨졌지만, 부정적 대내외 여론이 불안한 협상기조를 형성하는 데에 기여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 지도부와의 협력끝에 한반도 안보정세의 변화를 추진했지만, 2000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과 네오콘의 득세로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오늘날 미국의 이른바 ‘전통적 엘리트 집단’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관계 개선 정책을 의심하고 있다. 이들의 소극적 회의론은 한국 외교부 기자단을 대상으로 한 기자회견과 미국 내 자문활동을 통해 적극적인 반대행동으로 발전하고 있는 형국이다.
남북협력사업은 한반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차원에서 필요한 사업이다. 북미대화가 어그러질 때마다 우리 정부는 긴장을 완화하는 ‘쿠션’ 역할을 해왔다. 이는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정부의 인식과 달리 미 의회와 행정부는 제재를 비핵화 협상의 ‘레버리지’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남북협력이 비핵화협상에서 발휘할 수 있는 레버리지보다 제재가 비핵화협상에서 발휘할 수 있는 레버리지보다 크다는 인식을 설득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소위 ‘지식인층’이라고 할 수 있는 대내외 전문가 집단이나 언론인이 남북협력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남북협력이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할 수 있다’는 정부의 논리를 신뢰할 만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두 번째는 남북관계 개선 흐름이 국익이나 특정 집단에 이익이 되지 못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문재인 정부가 국가 최고수장을 중심으로 한 ‘톱-다운’식 비핵화 협상의 모멘텀을 지속해나가는 데에 ‘브레이크’ 역을 하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남북간 신뢰형성 및 위기관리를 위해 정부가 북한과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듯이, 대내외 회의론을 관리하고 시각차를조율하기 위한 접촉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한미ㆍ남북간 이견 차를 조율하는 작업이 물밑에서 이뤄지면 각종 추측이 나올 수밖에 없다. 불안은 ‘모르기 때문에’ 형성되는 것이고, 회의론은 ‘불신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남북뿐만 아니라 한미, 남북미 전문가 집단과 언론인, 그리고 학생들의 접촉면을 넓히고 상호 인식 차를 조율하고 불안을 해소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반도 평화모멘텀’이라는 섬세한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한미간 의견이 만장일치로 일치할리도 만무하다. 남북협력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대내ㆍ외적으로 팽배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미 비핵화협상과 별개로 진행되는 남북간 화해협력은 당연히 대내ㆍ외적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관리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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