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영업점 찾아가 보니
“연소득 2500만원 넘어야 가능” 금융이력 없는 신파일러 1400만 금융당국-현장 엇박자에 한숨만
금융당국 “대출체계 도입” 불구 5대 은행 한곳도 준비 안돼
직장인 서모(31) 씨는 은행을 보면 ‘거절’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취업준비생 시절 생활비로 100만원을 빌리려 했지만 퇴짜 맞은 경험 때문이다. 은행에서 대출받은 경험도 없고, 신용카드도 쓰지 않던 시절이다. 소득 증빙이 없어 창구·스마트폰 뱅킹에서 모두 대출이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다. 한 푼이 아쉬웠던 그는 서 씨는 상품권, 온라인 게임머니 등을 있는대로 그러모아 ‘현금화’했다.
‘신 파일러(thin filer·금융이력부족자)’. 말 자체로는 ‘서류가 얇다’는 뜻이다. 은행에서 대출받아 갚거나, 신용카드를 이용해본 금융이력이 없거나 부족한 학생, 주부, 사회초년생 등을 가리킨다. 소득과 직장 등의 정보에 따라 매겨진 신용등급을 ‘진리’ 삼아 대출이 이뤄지는 현행 신용평가모델로는 돈을 빌리기가 어려운 이들이다.
지난해 말 기준 신 파일러는 1300만~1400만명으로 추산된다. 그간 대출을 갚을 능력과 의지는 있는 사람들도 단지 등급 때문에 대출이 막히는 건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금융당국은 지난 4월 금융이력이 부족한 소비자들은 비(非)금융정보(통신비 납부·온라인 쇼핑 거래 내역 등)로 신용등급 책정해 대출받을 수 있는 체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선 하반기부터 5대 은행(신한·KB국민·우리·KEB하나·NH농협)에서 도입한다고 덧붙였다. 신 파일러 입장에선 희소식이었다.
본지는 지난 1~2일 서울에 있는 은행 영업점을 찾아 신용대출 상담을 받았다. 5대 은행을 모두 둘러봤지만 당국의 정책에 따른 대출을 시작한 곳은 없었다.
서울 성북구의 한 국민은행 지점에서 “인턴을 하고 있다”면서 신용대출을 문의하자 직원은 인턴 기간과 급여를 받는지, 4대보험은 적용되는지 등을 물었다. 조회를 해보더니 “(대출 등급이) 안 나온다”면서 “인턴이든 정규직이든 적어도 1년은 재직해야 신용대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은행들에서도 “비금융정보로 나가는 대출에 대해선 (본점에서) 공지받은 게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직장인 초년생을 대상으로 회사 신용도, 급여 정보로 나가는 자체 대출상품을 권했다. 합격 확인서만 있어도 대출이 된다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 상품들도 ‘최소 조건’을 충족해야만 비로소 대출한도를 조회할 수 있었다.
성동구의 한 우리은행 지점에선 직장인 대출을 문의하니 직원이 10줄짜리 서류 목록을 건네며 “준비되면 대출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인턴으로 일한 지 두 달째인데 가능하느냐”고 묻자 “통장에 급여 입금 내역이 3개월치 이상 찍혀야 한다”면서 “다른 대출프로그램이 있지만 연소득 2500만원 이상이어야 대상자가 된다”고 안내했다.
한양대 인근 신한은행 지점에서는 “대출한도 확인하려면 재직증명서와 건강보험 서류가 필요하다”면서도 두 달 이상 일한 이력을 요구했다. NH농협 지점에선 “최소 3개월 이상 급여받고 근무해야 대출심사가 가능하다”면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 대출 상품만 있다”고 말했다.
여전히 대출에 앞서 직장, 소득 정보 등을 우선 따지는 건 아직까지 당국의 정책이 각 은행별로 준비되지 않아서다. 은행들 쪽에 공식 입장을 묻자 “본점 차원에서 비금융정보를 활용한 대출상품을 개발하는 중”이라며 “하반기 중엔 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시중은행들에 어떤 상품을 준비하고 있는지 등 진행상황에 관한 자료 제출을 요청한 상태”라며 “파악한 뒤에 미진한 부분들이 있으면 은행권과 회의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박준규 기자, 박자연·김용재 인턴기자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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