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이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원유’로 불리는 데이터는 차고 넘친다. 갖고 있는 걸 써먹기만 하면 된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AI(인공지능)을 무려 세 번이나 외쳤는데, AI도 이 ‘데이터’가 있어야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롭게 열리는 부와 빈곤의 갈림길에서 데이터경제는 우리가 반드시 택해야 할 ‘부(富)의 길’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발목을 잡는 국회 때문에 ‘골든 타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지난 25일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해 규제체계를 정비하는 내용의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 문턱에서 주저 앉았다. 정확히는 단 1명 국회의원의 반대 때문이다. 법에도 없는 ‘만장일치 합의제’라는 국회 상임위의 관행적 문화가 한 몫했다. 1명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어떤 법도 통과가 어려운 모양새다. 신용정보법은 이번 기회를 놓치면 20대 국회에서는 통과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 의원의 반대 이유를 한 번 살펴보자. ‘가명정보가 기술적 문제로 식별가능한 정보가 될 수 있는 우려가 있기 때문’ 이라고 한다. 물론 개인정보가 유출돼 불쾌했던 경험은 이 땅에 사는 평범한 국민이면 한번 쯤 겪어봤을 일이다. 법이 개정돼도 내 정보가 유출되지 않고 잘 보호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모두 같다. 그렇다고 해서 정보를 꽁꽁 틀어막는 게 결코 답은 아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는 진부한 표현까지 갈 것도 없다. 자동차 사고가 발생하니 차를 없애자는 논리이고, 술 취하면 사고가 날 수 있으니 금주령을 내리자는 것과 같다. 누구나 ‘범죄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그건 꿈일 뿐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세계적 추세다. 지난 1월, 일본이 유럽연합 개인정보보호규제(GDPR) 적정성 평가를 마쳤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베라 요우로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해당 협정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큰 개인정보 안전지대가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우리 금융당국 관계자는 “뒷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현재 전세계에서 기업가치(시가총액)가 가장 높다는 기업들을 한 번 살펴보자.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 텐센트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더이상 제너럴모터스(GM)나 제너럴일렉트릭(GE)과 같은 전통적 제조기업들이 아니다.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매일같이 유튜브를 보고, 페이스북에서 사회적 교류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앞으로 5년, 10년의 선택이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부의 격차’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 데이터가 온 천지에 널려있는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과 일본의 기업들이 우리의 경쟁 상대다. 전세계에서 우리 스타트업과 기업들이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줘도 모자랄 판에 국내 상황에만 매몰돼서는 안된다. 좁디 좁은 시야로 이 작은 나라 안에서만 지지고 볶아서는 미래가 없다고 감히 단언한다.

이걸로도 설득이 안 된다면, 개인 차원의 긍정적 측면도 생각해보자. 모든 건 동전의 양면이 있는 법이다.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른바 ‘마이데이터(MyData)’ 시대가 열린다. 지금까지 각 기업과 금융기관이 쥐고 있던 ‘정보주권’이 나에게 돌아온다. 우리가 불러온 정보를 한 데 모은 마이데이터 사업자가 금융상품 금리나 혜택을 비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면 금융회사에 쏠렸던 ‘정보의 비대칭’은 자연스레 무너지고, 소비자에게 이로운 상황이 펼쳐진다.

법 통과를 막은 이 국회의원은 “국민적 합의와 동의가 부족하다”고도 지적했다. 국민들은 먹고 살기 바빠 잘 모를 수 있다. 내 민감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를 반길 사람은 없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 대한민국이 부와 빈곤의 갈림길에 서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오히려 국민들의 막연한 공포를 불식시키고, 합의와 동의를 끌어내는 것이 국회의원의 의무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가 대체 언제까지 골든 타임을 놓치고 따라잡기 급급한 정치 때문에 고생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