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고백하자면, 진짜 매니저인 줄 알았다. 카메라 앞에선 천사로 돌변하지만 알고보면 다양한 군상의 모습을 한 연예인들의 매니저로 ‘SNL코리아’(tvN)의 ‘극한직업’에 처음 등장했을 때였다. “제가 연기를 잘 했나봐요?” 웃으며 말하는데 웃는 것 같지가 않다. TV 속 그의 얼굴이 고스란히 나온다. 프로그램의 작가로 방송을 시작해 연기까지 겸하고 있는 유병재(26)가 그 주인공이다.
‘극한직업’ 속 유병재의 삶은 ‘수난의 연속’이다. 연예인의 수족이 돼 그들의 만행을 감내할 땐 ‘노예12년’ 못지 않은 생(生) 고생담이 펼쳐진다. ‘연기 연습’ 명목으로 뺨을 맞기 일쑤고, 다짜고짜 소리부터 지르는 연예인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끙끙대는 삶이다. 심지어 월급으론 PC방 쿠폰을 받는다. 내내 당하지만은 않는다. 물 한 잔을 마셔도 특정 브랜드만 따지는 스타에겐 수돗물을 떠다주고, 철저한 몸매관리에 한창인 스타에겐 “몸짱 아줌마”라고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그러다 꼭 한 대 얻어맞는다. 고행이 끝나는 퇴근길엔 어김없이 스타를 향한 육두문자가 튀어나온다. 유병재의 얼굴은 이미 눈물 범벅이 돼있다.
윤병찬기자/yoon4698@heraldcorp.com 방송작가 유병재 인터뷰 윤병찬기자/yoon4698@heraldcorp.com
그의 얼굴이 울고 있을 때 이상하게도 시청자는 웃음이 터진다. 매니저들의 삶을 다룬 ‘극한직업’의 아이디어는 모두 유병재의 머리에서 나왔다. ‘페이크 다큐’에 안성맞춤인 실사 같은 캐릭터 덕에 조롱과 과장의 미학은 시청자에게도 통했다.
“EBS 다큐 ‘극한직업’에서 제목을 가져와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아이디어를 냈어요. 고생하고 수난 당하는 코드를 좋아해서 아이템을 생각해봤는데 주인공도 하게 됐죠. 연예인들의 이미지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떠올리는 편이에요.”
조성모 편에서 끊임없이 ‘매실’이 등장하고, 신해철 편에서 ‘돼지새끼’라는 대사가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휴학 중인 유병재는 애초엔 개그맨 지망생이었다. 2011년엔 개그맨 공채 시험에 응시한 경험도 있다.
“어릴 때부터 웃기고 까부는 걸 좋아했어요. 주성치 영화를 워낙에 좋아했고요. 일부러 의도하진 않지만 ‘극한직업’도 주성치 톤으로 구성할 때가 있고요. 옹달샘한테 질질 끌려가는 장면들이 그렇죠.”
윤병찬기자/yoon4698@heraldcorp.com 방송작가 유병재 인터뷰 윤병찬기자/yoon4698@heraldcorp.com
개그맨 시험을 준비하다 고배를 마신 후 미련을 두지 않은 것은 “연기를 많이 가미해야하는 공채 개그맨의 길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잘 할 수 있는 걸 해보자”는 생각에 젊은 세대답게 새로운 플랫폼을 공략했다. 사실 유병재의 인생을 바꾼 작품은 이 때 나왔다.
몇몇의 친구들과 스마트폰으로 찍은 UCC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게 반응이 좋았다. 직접 가사를 쓴 노래 ‘니 여자친구’의 뮤직비디오도 대표적이다. 친구의 여자친구를 만나 일종의 ‘품평’을 하며 ‘사실 니 여자친구 못생겼어’라고 말하는 가사를 담은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유튜브 조회수만 무려 160만 건을 기록한 화제작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B급 정서의 출발점인 셈이다.
이게 계기가 돼 2012년 엠넷 ‘유세윤의 아트비디오’에서 ‘유세윤 감독’의 조수 역으로 출연하며 유병재는 ‘SNL코리아’로까지 입성하게 됐다. 지금은 SNS 팔로워만 30만 명에 달하고, CF를 6개나 찍은 ‘핫한 스타’이자, 대학을 비롯한 각종 행사의 강연자로 초청되는 ‘멘토’다. 20대 중반에 이미 많은 경험을 했왔지만 유병재에게 ‘최고’는 자신의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웃기는 일이다.
윤병찬기자/yoon4698@heraldcorp.com 방송작가 유병재 인터뷰 윤병찬기자/yoon4698@heraldcorp.com
“작가의 입장에서 보면 웬만한 코미디는 지금 방송가에 다 나왔다고 볼 수 있어요. 안 하는 것을 찾아가는 탐험하는 느낌이 들어요. 박장대소하는 웃음이 터지는 것도 좋지만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건 사람들로 하여금 신기한 감정을 불러오게 하는 거에요.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저렇게 행동하지? 쟤 왜 저래?’싶은 거 있잖아요. 일상적인 공감을 기반으로 한 신기한 공감이라면 좋겠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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