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은 미리 준비하지만, 토론은 즉흥적으로 공방 이뤄지는 한계

토론회 발언 사후에 문제 삼아 고소·고발…“자유로운 토론 위축”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한 허위사실 공표 혐의 사건에 대한 대법원 선고일인 16일 오전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한 허위사실 공표 혐의 사건에 대한 대법원 선고일인 16일 오전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진원 기자] “토론은 연설과 다르다. 후보자 사이에 제한된 시간에서 즉흥적으로 공방이 이뤄져 표현의 명확성에 한계가 있다. 일부 부정확한 표현 모두를 사후에 법적 처벌한다면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를 표현하는 선거 제도와 민주주의 이념이 훼손될 수 있다.”

대법원이 16일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결론냈다. 지사직 상실 위기에 몰렸던 이 지사는 이번 판결로 정치생명을 이어가며 기사회생했다. 토론 과정에서 일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발언이 나온다 하더라도, 모두를 처벌한다면 선거 과정에서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염려가 있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6일 직권남용,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기소된 이 지사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당선은 무효로 된다.

재판부는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활발한 토론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없다. 특히 공적・정치적 관심사에 대한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설령 후보자가 일부 허위 표현을 했어도 토론 이후 후속 검증을 거친다고 봤다. 처벌할 실익이 크지 않다는 판단이다. 후보자가 토론회에 참여해 질문・답변하거나 주장・반론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허위사실을 표명하는 행위와 구별해야 한다는 기준도 제시했다. 재판부는 “이 지사가 토론회에서 한 발언은 상대 후보자의 질문이나 의혹 제기에 대해 답변하거나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일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드러내 알리려는 의도에서 적극적으로 반대사실을 공표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 공직선거 토론회에서 나온 발언을 사후에 사법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도 했다. 선거 전후로 토론회 발언을 문제 삼아 고소·고발이 이어지고, 수사권의 개입이 이어지면 선거 결과가 최종적으로 사법적 판단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민주주의 이념이 훼손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박상옥, 이기택, 안철상, 이동원, 노태악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밝혔다. 통상 공직선거 토론회에서 논의 주제는 대부분 알려진 내용이며, 이번 사건에서도 토론 상대방의 질문은 즉흥적이거나 돌발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봤다. 이 지사 역시 답변을 미리 준비해 왔는데, 질문에 대해 단순히 부인하는 답변만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은 숨기고 유리한 사실은 덧붙였다고 했다. 반대의견을 밝힌 대법관들은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해 선거인의 공정하고 정확한 판단을 그르칠 정도로 허위사실을 공표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했다.

이 지사는 친형이 성남시청에 악성민원을 반복해서 제기하자 2012년 4월 당시 보건소장과 정신과 전문의를 시켜 강제입원 조치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 지사가 성남시장의 직위를 이용해 강제입원을 위한 공문서 작성 등 의무없는 일을 하도록 시킨 것으로 파악했다.

검찰은 이런 사실을 전제로 2018년 5월 경기도지사 후보자 토론회에서 ‘친형을 강제입원 시키려고 한 적이 없다’고 발언한 게 허위라고 판단해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1심은 무죄를 선고했지만, 항소심은 당선무효형인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지사가 형의 정신병원 입원을 주도적으로 지시했는데도 ‘강제입원에 전혀 관여한 적이 없다’고 발언한 부분이 허위 사실 공표가 맞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해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받은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판결했다. 이로써 당선 무효 위기에 놓였던 이 지사는 경기도 지사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이재명 지사 지지자들이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이 내려진 직후 환호하고 있다. [연합]
대법원이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해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받은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판결했다. 이로써 당선 무효 위기에 놓였던 이 지사는 경기도 지사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이재명 지사 지지자들이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이 내려진 직후 환호하고 있다. [연합]

이 지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로 차기 대선 ‘잠룡’으로 입지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지난해 9월 상고심 사건을 접수한 대법원은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사건을 심리하다 지난 6월 전원합의체로 회부했다. 소부에서 대법관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거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 선례를 변경해야 하는 사건 등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판결을 내린다.

이 지사는 상고심에 대비해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렸다. 이상훈 전 대법관과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 이홍훈 전 대법관이 상고심 변호에 가세했다. 상고심 이전부터 사건을 맡은 이 전 대법관의 친동생 이광범 변호사가 설립한 로펌 엘케이비앤파트너스도 변호인에 이름을 올렸고, 결국 항소심 판결을 뒤집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