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러 수교 30주년이다. 사람으로 치면 성년인 셈이다.

얼마 전 한국과 러시아 간 교역은 구소련 시절인 1990년 8억9000만달러에서 지난해 223억5000만달러로 증가했다. 25배나 늘었다니 작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성장에도 한국과 러시아의 경제관계는 질적으로는 제자리걸음이다. 수출입을 넘어 제조생산 현지화 등으로 양국 경제의 탄탄한 가치사슬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우리나라의 대러 투자액은 2019년까지 누적 28억달러로, 한국 전체 해외 투자 중 0.5%에 불과하다.

이렇게 고착됐던 한·러 경제관계가 최근 변화의 가능성을 보인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이유로 미국과 유럽이 가한 경제 제재가 계기가 됐다. 러시아 경제는 체질 변화가 필요했다. 그동안 방향성 없이 지지부진했던 제조업 육성을 수입 대체 산업으로 명확히 했다. 가장 눈에 띄게 현지 생산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자동차산업이다. 2020년까지 자동차부품 현지 조달비율을 60%로 확대한다는 조건으로 그동안 자동차 조립공장들이 누렸던 부품 수입관세 혜택이 곧 끝나기 때문이다.

현대위아가 2021년 양산을 목표로 2019년 러시아에 엔진 생산법인을 세운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최근에는 수산업과 조선업에서 현지화 움직임이 활발하다. 2019년 러시아 정부가 투자쿼터제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전체 어획쿼터 중 20%는 어선 신조나 수산물 가공시설에 투자계획을 제출한 기업에만 배분한다는 계획이다. 몇몇 러시아 조선소가 한국과 어선 신조 협력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러시아 내 제조업 개발 움직임이 활발해지자 양국 간 새로운 형태의 경제협력 가능성도 열렸다. 러시아의 원천 기술과 우리의 상용화 기술을 결합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기초과학 강국이다. 우리는 외국의 원천기술을 응용해 빠르게 성장한 경험이 있다. 한국과 러시아가 양 방향으로 산업기술협력을 활성화한다면 ‘윈윈(Win-Win)’이 가능하다. 2018년 한·러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기술협력 아이디어는 양국 정부 부처와 KOTRA 등 관련기관으로 이뤄진 한·러 혁신 플랫폼이 구체화하고 있다. 성공 사례도 나왔다. 한국 C사는 러시아의 비정질 금속 마이크로와이어 기술을 활용해 보안문서용지 국산화에 성공했다. 또한 의료기기 제조기업인 M사는 러시아에서 우주인 근력운동을 위해 개발된 중주파 자극요법 기술을 도입해 휴대용 전기자극 근육치료기를 개발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전 세계 공급 가치사슬에 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다변화다. 중국 등 특정 지역에 쏠렸던 공급처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자각 때문이다. 러시아의 제조업 육성 노력과 우리를 둘러싼 글로벌 가치사슬 변화 움직임으로 러시아와의 경협 패러다임은 변화의 모멘텀이 생겼다. 러시아를 상품판매시장으로만 바라보는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30년의 나이에 맞게 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발전해야 할 때다.

우상민 코트라 블라디보스토크무역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