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공연
동명 영화 무대로…영리한 무대ㆍ쫄깃한 전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띠링’
눈치 없이 벨소리가 울리면 ‘파국’이다. 재미 삼아 시작한 게임은 ‘판도라의 상자’가 연다. 시도 때도 없이 눈에서 ‘하트’가 그려지는 신혼부부도, 한 집에서 부대끼는 부모 자식도, 둘도 없다 자신하는 친구들도 각자의 비밀을 안고 있다. 때론 감추고 싶은 감정의 밑바닥이며, 끝내 붙잡고 싶던 자존심이자, 사회성의 탈 안에 감춰진 편견이기도 하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린 결국 ‘완벽한 타인’이다.
지난 5월 막을 올린 연극 ‘완벽한 타인’(8월 1일까지. 세종문화회관)은 서로에게 감추는 것이 없다고 ‘자신하는’ 오랜 친구들이 한 집에서 파티를 열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무심코 열게 된 ‘판도라의 상자’. 연극에선 “우리 삶의 블랙박스”라고 정의하는 휴대전화를 통해 누구에게나 안고 있는 비밀 한 가지씩을 꺼낸다.
연극은 이미 전 세계 18개국으로 리메이크돼 기네스북까지 오른 이탈리아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국내에선 유해진 이서진 염정아 김지수 등이 출연한 영화로 개봉, 500만 관객과 만났다. 연극엔 TV를 오가는 인기 배우들과 무대에서 활약한 배우들이 호흡을 맞췄다. 이시언 장희진을 비롯해 걸스데이 리더 박소진, tvN 드라마 ‘빈센조’에서 활약한 양경원 김설진 임철수가 함께 했다.
무대로 옮겨간 ‘완벽한 타인’은 관객과 마주보고 저녁 만찬을 시작한다. 일자형 테이블에 앉은 7명의 주인공. 이들은 서로의 핸드폰을 ‘공유’하는 게임으로 각자만 알고 있던 일상의 욕망을 ‘본의 아닌게’ 꺼내든다. “이거 최후의 만찬이야?”
‘최후의 만찬’이 맞다. 익히 알고 있는 명작을 떠올리게 하는 긴 테이블이 무대 전면에 놓인 점, 곧이어 찾아올 7명의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의 연속이라는 점이 그렇다.
연극은 110분 동안 숨쉴 틈 없이 이어지는 ‘티키타카’는 관객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단조롭게 꾸민 무대 연출은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배우들의 대사에 집중하게 한다. 상당량의 대사를 막힘없이 쏟아내고, 그 사이사이 벨소리가 울리면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배우들의 표정이 관객과 마주한다. 이 과정에서 작은 무대 뒤 스크린을 통해 문자와 전화 알림을 전해준 방식도 흥미로웠다. 관객 역시 7명과 한 자리에 있는 친구인 것처럼 같은 상황 속에 놓이게 해 몰입도를 높였다. 감춰왔던 가면이 하나씩 벗겨질 때마다 현관, 거실, 부엌, 화장실 등 저마다 다른 공간으로 흩어져 각자의 감정을 쏟아내도록 연출한 것도 영리한 무대 활용법이었다.
쉴 틈 없이 쏟아내는 대사와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110분은 순식간에 흘러간다. 대단하지 않아도 누구나 안고 있는 사소한 비밀, 끝내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아 혹은 정체성, 가치관의 둑이 완전히 무너지면 무대는 막을 내린다. 긴장감 넘치는 전개에 휘말려 롤러코스터를 타듯 스릴을 만끽하고 나면 문득 돌아보게 된다. 민준호 연출가는 “이 극에는 메시지나 교훈이 담겨있지 않다”고 선언하듯 이야기했지만, 연극은 어느 한 순간 걸음을 멈추게 한다. 내가 감추고 있는 또 다른 얼굴의 정체, 내 안에 숨어있어 미처 알지 못한 편견의 흔적을 잠시나마 찾아본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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