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동해-태백-울진-영덕 ‘실직국’의 도읍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관동제1루 죽서루 등으로 유명한 강원도 삼척은 6세기 까지 경북 중남부 세력과 양립하던 실직국의 도읍지였다.

실직국왕이 신라 중심세력의 기습에 피신했던 왕피천의 울진(옛 강원도)과 삼척, 동해, 태백시가 실직국의 중심지였고, 봉화, 영덕 일부지역도 실직국에 포함돼 있었다.

삼척도호부 관아터 영역으로 볼수 있는 죽서루
삼척도호부 관아터 영역으로 볼수 있는 죽서루

삼척은 고려,조선 때에도 광역단체인 9주 중 하나(척주)로서 중요한 지방거점이었고, 도호부가 있던 행정중심지였다.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삼척도호부 관아지(三陟都護府 官衙址)」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했다.

동해시는 삼척 북쪽의 평야라는 뜻에서 북평 등으로 불리고 있으며, 최근 삼척-동해간 기능별 공조나 통합, 총체적인 통합이 논의되고 있는데, 원래 실직국이라는 이름의 한 몸이었다는 점이 근저에 깔려 있다.

삼척을 사이에 둔 울진과 동해가 상경 관광설명회 등 때 공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척도호부 일대 현재 모습
삼척도호부 일대 현재 모습
삼척도호부 객사 1915년 사진
삼척도호부 객사 1915년 사진

20일 국가문화재로 지정 고시된 삼척도호부 관아지는 삼척이 1393년(태조 2년) 삼척부로 승격되고 1413년(태종 13년) 삼척도호부로 지명이 변경된 후 1895년(고종 32년) 삼척군으로 개명될 때까지 조선 시대 삼척 지역 통치의 중심지였던 삼척도호부의 관아가 있던 터로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부분의 건물은 소실되고 오십천과 함께 죽서루만 전해 왔다. 고대국가, 고려시대에도 강원남동부-경북북동부 지역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757년(영조 33년)~1765년(영조 41년)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삼척도호부 공해조(公廨條)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에는 객사(客舍) 50칸, 아사(衙舍) 91칸, 향청(鄕廳) 10칸, 훈련청(訓練廳) 6칸, 군기고(軍器庫) 20칸 등이 있었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총 4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객사, 동헌, 내아 등 관아의 중요 건물 유적과 삼척읍성의 남문지와 체성부를 확인하였고 더불어 많은 고문헌 기록(김홍도의 금강사군첩 죽서루 그림 등)이 실체를 뒷받침하였다. 이를 통해 삼척도호부가 조선 시대 삼척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도호부 관아 유적으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1915년경 삼척 죽서루와 도호부 객사 및 내삼문(국립중앙박물관 유리건판사진)
1915년경 삼척 죽서루와 도호부 객사 및 내삼문(국립중앙박물관 유리건판사진)

관아 주변에 관동제1루로 불리는 삼척 죽서루는 일찍이 1963년, 관동팔경 중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됐고, 삼척 죽서루와 오십천은 2007년 명승으로 지정됐다.

관동팔경의 작가 송강 정철이 연심을 품었던 인물이 죽서루 동쪽에 살아서 이 여인의 거처 서쪽에 있다는 뜻으로 죽서루라 이름 붙였다는 속설도 전해진다.

발굴조사에서 조선뿐 아니라 신라와 고려 시대 유적과 유물도 함께 확인되었는데 이러한 유적과 유물을 통해 ‘삼척도호부 관아지’와 그 일대가 조선뿐만 아니라 고려와 신라를 거슬러 까지 삼척 지역의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해온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

5∼8세기 유물로는 수혈주거지, 투장, 고배편, 각종 토기 등이, 고려 유물로는 토성, 각종 기와류와 도자기류가 있다. 인근엔 실직군왕릉도 있다.

참고로, 지금의 경남·북 지역 중 상당 부분을 기원전부터 ‘신라’라고 통칭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왜 그랬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실직국은 가야 패망시점 이상으로 오래 건재했고, 경북 북서부엔 의성을 중심으로 별도의 국가 조문국이, 강릉 일대를 중심으로 하슬라국이 오래도록 존재했다. 이들 국가는 경주 세력들의 속국이었다는 증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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