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 환승통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오가는 인파를 바라봤다. 일사불란(一絲不亂). 단 한 가닥 실조차 형태를 어그러뜨리는 일 없이 질서정연한 흐름이 새삼 놀랍다. 에스컬레이터도 계단도 일사불란. 소리칠 일도, 고개 들 일도 없다. 누군가는 스마트폰을 보고, 누군가는 통화도 하지만 부딪치는 이조차 없다. 단 한 번의 고성, 단 한 명의 통제도 없이 말이다.

1990년대만 해도 ‘푸시맨(Push-man)’이 있었다. 내 힘만으론 어찌할 수 없어 짐짝 실듯 지하철로 인파를 밀어넣는 직업. 불과 20여년 전이다. 모든 시민이 질서정연한 지하철 문화를 각인하기까지 우린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을까.

시내버스에서 당당히 담배를 물던 시절도 있었다. 버스 좌석엔 아예 개인 재떨이가 있다. 비행기도 다를 바 없다. 이 역시 딴 나라 얘기가 아니다. 1980년대 대한민국이다. 환자 앞에서 의사가 담배를 피우고, 교실에선 교사가 담배를 물었다. 담배 심부름은 아이들의 몫, 아빠 담배를 몰래 물어보는 건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간접흡연’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고, 식당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말할라치면 오히려 “유난스럽다”고 역정 들었던 때였다.

2022년. 요즘도 “유난스럽다”고 역정 듣는 일들이 있다.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얘기다. 제로웨이스트는 말 그대로 쓰레기를 ‘제로’로 만들 때까지 최대한 재사용하고 최대한 쓰레기를 줄이는 운동이다. 불필요한 포장재를 사지 않고 비닐봉지를 거절한다. 음식물을 어떻게 퇴비화할지도 고민한다.

‘나는 쓰레기 없이 산다’의 저자 비 존슨은 이를 5R(Refuse, Reduce, Reuse, Recycle, Rot)로 표현한다. 불필요한 쓰레기를 거절하기(Refuse), 질적인 소비로 쓰레기 줄이기(Reduce), 일회용품이 아닌 재사용하기(Reuse), 나온 쓰레기들은 재활용하기(Recycle), 그리고 최대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게 썩히기(Rot)다.

피자 배달에 쓰이는 플라스틱 세이버는 필요할까? 페트병의 비닐 라벨이 있어야 하나? 왜 화장품은 리필해서 쓸 수 없나? 명절 선물세트 포장은 왜 하는 걸까? 이런 의문을 제시하고 해결책을 요구하는 게 제로웨이스트다.

그리고 이들이 가장 많이 듣는 평가가 바로 ‘불편러’다. 왜 그리 유난스럽냐는 역정이다. 페트병을 종량제 봉투에 버리는 일 등에 관여하다간 싸움으로 비화되기 일쑤다. 버리는 이들이 더 당당하다.

지하철도, 흡연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밀지 말라는, 막지 말라는 요구가 ‘오지랖’이던 때가 있었다. 집에서, 버스에서 금연하라는 요구에 오히려 역정 듣던 때가 있었다. 지금의 당연함은 오랜 불편함을 인고해왔다.

결국 가야 할 길은 간다. 지옥철은 지하철이 돼야 했고, ‘흡연은 노답·우린 노담’을 외쳐야 했다. 그리고 세상은 가야 할 길로 결국 변해왔다.

제로웨이스트도 마찬가지다. ‘길빵’하는 흡연자에 망설임 없이 레이저를 쏘아대듯, 함부로 재활용품을 버리는 이들에게 눈총 주는 일이 당연한 날은 올 것이다. 결국 가야 할 길은 간다. 제로웨이스트여, 지치지 말기를….


dlc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