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재’ 양딩신에 LG배 2국도 승리

한-중 자존심 걸린 대회서 우승컵 들어

1국 때의 기적의 대역전승이 우승발판

양딩신 단한번 살착으로 통한의 패배

다 이긴 줄 알았던 중국팬들은 허탈감

서울 한국기원과 베이징 중국기원에서 9일 온라인으로 열린 제26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결승3번기 2국에서 승리한 신진서 9단이 우승 후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국기원]
서울 한국기원과 베이징 중국기원에서 9일 온라인으로 열린 제26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결승3번기 2국에서 승리한 신진서 9단이 우승 후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국기원]

[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 베이징올림픽에서 중국 편파판정 의혹이 계속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텃세 설움을 한방에 날려버린 이가 있다. 바로 바둑 프로기사 신진서 9단이다. 올림픽은 아니지만, 바둑에서 그런 쾌거를 일궜다.

현존하는 바둑 기사 중 인공지능(AI)급 기력에 가장 근접했다며 ‘신공지능’이라 불리는 신 9단이 올해 첫 세계 타이틀인 LG배 챔피언에 등극했다. 바둑 메이저대회이긴 하지만, 승부야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것이니 거기에 승부이상의 의미를 굳이 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공정 올림픽’의 양상과 맞물려 기고만장인 중국의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준 대국이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커 보인다. 신 9단의 상대는 중국 천재형 기사로 쏜꼽히는 양딩신 9단이었고, 이번 대회 전에는 5:5 호각지세를 이루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는 게 중론이다. 그만큼 이번 LG배는 양국 바둑팬의 시선이 한꺼번에 몰린 양국 자존심을 건 대회였다.

신 9단은 9일 서울 한국기원과 베이징 중국기원에서 온라인으로 열린 제26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결승3번기 2국에서 양딩신 9단에게 이겼다. 대회는 3번기로 진행했는데, 앞서 7일 신 9단이 1국에서 승리했고 2국도 이겼기에 종합전적 2-0으로 우승컵을 차지한 것이다. 2국은 6시간 30분이 넘는 피말리는 싸움으로 전개됐으며, 결국 양딩신 9단이 247수 만에 패배를 인정하고 돌을 거뒀다.

어려운 경기였다. 중반이후 좌상단에서 사생을 건 패싸움이 벌어졌고, 양딩신 9단은 패를 양보하는 대신 중앙 대마를 포획하는 꿈을 꿨으나 신 9단이 2집을 내는 기발한 수를 두자 깨끗이 기권했다.

LG배 우승으로 신 9단은 지난해 우승한 춘란배에 이어 메이저 세계기전 2관왕에 올랐다. 2020년 24회 LG배 우승에 이어 2년 만에 두 번째 우승컵을 거머쥔 신 9단의 활약으로 한국은 대회 3연패를 달성하는 성과도 올렸다.

사실 1국 이후 신 9단의 우승은 예정돼 있었다는 게 중론이다. 신 9단이 양딩신 9단에 비해 실력이 월등하다는 뜻이 아니라, 1국 자체가 양딩신 9단에게는 엄청난 충격의 대국이었기 때문이다. 1국에서 양딩신 9단은 종반 직전까지 완벽한 수를 뒀고, 신 9단을 내내 코너로 몰아부쳤다. 하지만 다 잡은 승리 분위기를 결정적인 패착 한수로 망쳤고, 대역전을 당한 것이다. 그 충격은 2국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래서 신 9단의 손쉬운 우승을 전문가들은 예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승컵 향방이 가려진 1국은 어떤 내용으로 진행됐을까. 그걸 복기해보면 신 9단의 우승은 예고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과 중국 베이징 중국기원 현장. 대국시간 3시간을 다 소비하고 초읽기 40초 다섯번의 시간이 남아있을때까지 10집 이상 불리했던 신 9단. 종반전 직전까지 단 한번의 우세도 잡지 못하고 시종일관 끌려다니기만 했다. 그때 인공지능(AI) 카타고가 예측한 신진서가 이길 확률은 겨우 1%. 신 9단의 얼굴은 어두웠다. 바둑 프로세계에서의 종반전 10집 불리는 패배나 다름없었다. 돌을 던져도 이상할게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회심의 칼은 하나 숨기고 있었다. 그렇지만 상대가 중국 천재 기사로 손꼽히는 양딩신 9단이라는게 문제였다. 이날만큼은 신진서의 대마사냥을 요리저리 피하면서 날렵한 행마를 보여준 양딩신이기에 그가 실수할 확률은 제로에 가까워 보였다.

서울 한국기원과 베이징 중국기원에서 9일 온라인으로 열린 제26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결승3번기 2국에서 신진서 9단이 대국에 임하고 있다. [한국기원]
서울 한국기원과 베이징 중국기원에서 9일 온라인으로 열린 제26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결승3번기 2국에서 신진서 9단이 대국에 임하고 있다. [한국기원]

유일한 희망은 중앙하단이었다. 막판 불꽃의 끄트러미를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카드로 혹시나 하며 186수로 들여다봤다. 양딩신이 그 수 오른쪽으로 돌을 이었으면 게임은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무심코 187수로 이은 양딩신. 이게 3시간 내내 양딩신이 둔 유일한 실수였다. 그리고 그것은 통한의 패착이었다. 두어수를 더 둔 양딩신은 그제야 회복불능의 실착 임을 깨달은 듯 허둥지둥댔다. 온라인대국 현장 중계 해설자는 그때부터 들떴다. “양딩신이 어떻게 된 것 아닙니까? 중국에서 난리가 났어요. 떡수를 뒀다고….” 그러면서 “신진서가 게임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아, 역전 가능성이 보입니다”라고 흥분했다.

바둑에서 한번의 중대착오는 평정심에 파도를 일으키는 법. 이날 대국에서 완벽했던 양딩신은 이후 무너졌고, 종반 직전까지 위력적으로 포진했던 중앙대마는 몰살을 당했다. 패착의 수 이후 서로 10수 정도를 두었을때 유튜브 중계를 하던 김성룡 해설자는 “중국팬들이 많이 들어와 시청하고 있었는데, 다 방을 나가고 있어요. 충격적입니다”라고 했다. 카타고가 예측한 이때의 신진서 승률은 99%. 패착의 수 이전의 1:99에서 99:1로 판세를 정반대로 뒤집은 것이다.  

현존하는 프로기사 중 인공지능급 실력을 갖췄다는 신진서와 중국이 자랑하는 기재로 꼽히는 양딩신의 대결은 한국과 중국의 자존심 싸움을 상징하는 것이어서 중국팬들의 관심 역시 매우 컸다. 신진서와 양딩신의 그동안 역대전적도 5:5로, 호각지세였기에 중국팬으로선 양딩신이 신진서를 꺾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초반과 중반의 기세도 유리했으니 승리에 대한 확신도 그만큼 강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 이긴 줄 알았던 시합에서 단한번의 막판 실수로 역전을 당하자 중국팬들이 충격을 받곤 중계 시청자 방에서 썰물같이 빠져나간 것이다. 잘 알려지다시피 중국은 바둑사랑에 관해선 지구촌에서 최고의 나라. 중국 바둑인구는 통상 2500만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바둑광인 나라의 수많은 중국팬이 일시에 패닉에 빠진 것이다.  

김 해설자가 “계속 신진서가 10집 이상 불리했는데, 반대로 이젠 15집 이상 우세하네요. 승리 확정적입니다”라고 했을때, 양딩신은 돌을 거뒀고 허탈감이 심한 듯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이겼어도 멋쩍어 하는 신진서의 표정. 밝지않은 얼굴로 자리를 떴다.

서울 한국기원과 베이징 중국기원에서 9일 온라인으로 열린 제26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결승3번기 2국에서 양딩신 9단이 대국에 임하고 있다. [한국기원]
서울 한국기원과 베이징 중국기원에서 9일 온라인으로 열린 제26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결승3번기 2국에서 양딩신 9단이 대국에 임하고 있다. [한국기원]

국내랭킹 1위인 신 9단은 LG배 결승1국에서 양딩신 9단을 상대로 이같은 기적의 역전승을 연출했다. LG배는 올해 첫 세계 타이틀로, 한국과 중국의 2022년 기세 싸움으로도 평가 받는 대회였다. 그렇기에 이날 1국의 승패는 양국 바둑팬들 사이에서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이날 대결을 본 이들은 한결같이 ‘기적의 대역전극’이 벌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바둑TV 송태곤 해설자는 “신진서가 이기기 도저히 불가능한 구도였는데, 메이저대회 역사상 최고의 뒤집기가 아니었나 한다.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신 9단 역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결승1국 직후 인터뷰에서 “오늘 바둑은 어디에서 확실히 좋지 않았는지 판단이 안될 정도로 시종일관 끌려 다녔다. 마지막에 원래 노리던 걸 결행해봤는데 운이 따랐던 것 같다”고 했다.

운도 실력이긴 하지만, 신 9단의 이날 승리는 양딩신 9단으로부터 헌납받은 것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양딩신이 질래야 질 수 없는 구도였기에, ‘신의 점지’가 아니었으면 신 9단의 승리는 없었을 것이란 얘기까지 나왔을정도로 양딩신 9단의 막판 대역전 허용은 더욱 뼈아파 보였다.


ysk@heraldcorp.com